중간에 산다 (1)

때(時)의 중간

by 고스무 도우치

아파트 8층 집은 우리 가족이 가장 길게 머문 역사의 장소다. 무려 22년의 세월이었다. 우리가 그 집으로 이사를 온 것은 바야흐로 세기말이었다. 오빠가 중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이제 곧 초등학교 학위를 받으려고 할 때였고, 나는 초등 2학년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이었다. 나는 인생 첫 전학을 겪게 되었다. 등교 마지막 날, 담임 선생님은 나를 데리고 동네의 'oo코아'에 가서 연한 핑크색 헬로 키티 지갑을 선물로 사주셨다. 나와 단짝 친구는 손을 잡고 운동장을 뱅글뱅글 걸어 다녔다. 우리 매일매일 전화하는 거야.


그 날, 오빠와 나는 문턱이 닳을 만큼 드나들던 익숙한 문방구 골목을 지나 등교를 했다. 하지만 수업을 마치고는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집으로 하교를 했다. 모든 게 하얗고 어수선한 집에 들어갔다. 나는 매우 신이 난 상태였다. 오빠에게 물려받는 것이지만, 나에게 첫 책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내 소중한 보물들을 책상 서랍에 가지런히 놓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직 책상 정리할 때가 아니라며 서랍을 다시 탈탈 털어버리셨다. 속이 상했던 것 같지만 나는 또 금방 잊고 놀았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아침에 이사되어 버렸다. 당시의 오빠와 나는 몰랐다. 부동산 계약의 어려움과 이사의 피로 따위는, 아파트 값을 모으기 전까지의 오랜 노고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작년, 내가 서른 살이 되던 해, 우리 집은 또 한 번 이사를 했다. 이미 나와 우리 오빠가 학업과 취업 때문에 여기저기로 떠나고 없던 우리 집이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고향을 늘 떠나 있었지만 나에게는 늘 그곳이 우리 집이었다. 이제는 다른 이의 집이 되었지만. 이제 그 정든 집은 우리 가족 역사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작년'이라는 말이라든지, '22년'이라는 말은 간단한데, 그 세월은 무척 길었다.


아파트 8층 집은 나뿐만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가장 '짙은' 장소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파트 8층 집에 대한 여기 이 공간에는 글로 풀어서 다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것들이 뒤엉켜 있다. 가족 모두가 공유하는 추억이, 또 각자 자신만이 아는 비밀이, 수많은 사건과 일화들이 뒤엉켜 있다. 말소리, 웃음소리, 고함소리, 울음소리, 속삭이는 소리와 적막까지. 자신만이 들을 수 있던 눈물소리까지. 우리 엄마가 준비해주신 수많은 끼니들과 기름때와 함께, 온 가족의 그 온갖 것들이 켜켜이 쌓여서는, 녹아내리고 또 녹아내려 진득해진 상태로 지낸 세월이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여기서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단지 우리의 중간을 살았다.


조금만 걸으면 호수공원이 나오고, 반대로 걸으면 수목원이 나오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인 호수공원과 수목원의 중간에 있던 집. 그래서 내가 끝까지, 끝까지 여기 살자고, 내가 할머니가 되어서도 여기서 함께 살자고 생각했던 우리 집이었다. 집안 사정 상 이사를 가게 되었다는 부모님의 말씀에는 그냥 괜찮다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다는 말에 부모님은 오랫동안 졸였던 마음을 그제야 풀어놓으셨다고 한다.


끝이 났다고 생각해야 쓸 수 있고, 쓰고 나서야 끝낼 수 있다.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는 데 나는 오랜 세월이 걸리고 있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그 집에 대해 쓰면서 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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