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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pr 04. 2017

나이에 대하여.

읍읍. 

http://news.donga.com/3/01/20150411/70649328/1


"야, 너 몇살이었지?"


강동택시방에서 맨날 하는 이야기다. 건망증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어느 순간부터 같이 노는 사람들의 나이에 대하여 무감각해지기 시작했다. 나이가 노는 데에 중요한 변수가 아니며, 상대방에 따라 나이를 묻는 것을 불쾌하게 느낄 수도 있으며, 나이주의를 지양함에 따라 생각도 안하게 됐기 때문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최대한 존댓말을 쓰고 나이에 따라 불편함을 느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한국식 나이주의에 익숙해진 나로서는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주의를 지양하고 나이에 대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으려는 이유는 나이라는, 주민등록번호가 만든 족쇄가 우리 삶에 있어 하등 큰 영향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이가 부정적인 족쇄로 많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를 지앙하려 노력한다. 


나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족쇄 같은 존재다. 나라가 부여한 주민등록번호 13자리 숫자가 정의하는 나이는, 내 신체의 늙음을 숫자로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 청년 세대와 노년 세대 등 세대론이 허상에 가까운 것처럼 특정 나이대에 대한 선입견은 허상에 가깝다. 군대를 갔다와야 사람이 되는 게 아닌 것처럼,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작정 ~~하지도 않고, 어리다고 해서 ~~하지도 않다. 어느 정도의 경향성은 확보할 수 있으나, 그 경향성의 유의도가 얼마나 될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SBS 박진호의 시사전망대>에 설 특집 게스트로 출연했다. 주제는 청년실업과, 청년과 명절이었다. 몇 번 자소서를 써봤냐, 어른들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냐는 등의 질문이 오갔다. "취업준비를 할 때 모욕적인 질문을 들은 적이 있나?" 따위의 질문이 나왔다. 나를 섭외하신 피디님은 모니터에 "여자 나이 27이면 취업 끝났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ㅠㅠ" 라고 적으셨다. 


한국의 특이한 선입견 중 하나가, 신입사원은 나이가 꼭 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한 유교적 직장문화 때문이다. 자신보다 나이 많은 후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회사 문화 때문에 어린 신입 사원을 선호하게 되며 나아가 나이 많은 취업준비생에게 페널티를 준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조직 문화가 해쳐진다면 이는 취준생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문제다. 고작 신입사원의 나이라는 변수 때문에 팀의 문화와 기강이 해쳐지고 제대로 일까지 하지 못한다면 이는 상사와 팀 나아가 조직 전체가 얼마나 후진적이냐를 보여준다. 상사의 능력 부족과 후진적 조직 문화를 취업준비생에게 돌리는 태도는 얼마나 엿같은가. 


행정고시, 사법고시, 외무고시를 넘어 언론고시라는 말이 나오고, 나아가 대기업고시라는 말도 나온다. 스펙을 준비하라고, 어학연수를 다녀오라고, 청년들로 하여금 본인들의 청춘을 유예하게 만들어놓고서,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뭐했냐는 질문을 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 


공정한 노동시장의 첫번째 항목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여러 완장을 떼놓는 일이다. 개인의 능력과 관계 없는 수많은 완장 - 나이, 주량, 흡연여부, 부모의 직업, 부모의 재산 등 - 을 떼놓고 그 개인의 능력과 성취도 그리고 열정을 보는 것이 공정한 노동시장을 만드는 데에 첫번째 과제다. 


어림에 대한 선호는 늙음에 대한 혐오다. 젊은이에 대한 무한한 선호는 젊고 어리지 않은, 늙어가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불호로, 혐오로 이어진다. 늙음이 저주가 아닌 것처럼, 우리는 늙음을 혐오해서는 안된다. 마찬가지로 어림에 대한 무한한 추앙 역시 지양해야 한다. 젊음에 대한 추앙과 늙음에 대한 혐오는 곧 차별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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