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케르크는 덩덩
덩케르크를 봤다. 어쩌면 놀란 작품 중 가장 재미 없는 영화고, 어쩌면 가장 문제적 작품이다. 총 세 가지의 시선으로 짜여진 덩케르크를 세 가지 관점으로 나누어보았다.
첫번째 시선 - 관객
크리스토퍼 놀란과 한스 짐머는 아이맥스 스크린 뿐만 아니라 극장의 음향시설을 가장 잘 사용하는 예술가다. CGV천호 아이맥스 E열 12번에서 보았는데, 화면과 음향에 압도된다. 총기의 소음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평받는 영화 <히트>의 총격전보다 더 타이트하고 더 현실적이다. 단순한 구현을 넘어섰다. 덩케르크는 전쟁영화라는 탈을 썼지만 총의 소음만으로 영화의 장르가 바뀐다. 총격전의 소음만으로 스릴러가 되기도, 생존영화가 되기도, 다큐멘터리가 되기도 한다. 혹자는 덩케르크가 담백하다고 하는데, 아니다. 시각효과가 덜할지언정 음향은 그 어떤 영화보다 화려하다. 이 점에서 아이맥스를 놓치면, 코엑스 메가박스 M2관을 추천한다. 거기 사운드 시설 좋다.
청각과 시각을 가장 잘 조리하는 요리사 놀란이다. 놀란이 만들어낸 요리는 요리를 넘어 체험이다. 덩케르크는 압도적인 체험이다. 체험형이라는 장르가 있진 않지만, 영화 <그래비티>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든다. 미디어의 본질이 시청자가 가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겪지 못한 걸 대리체험하게 해주는 것이라면 덩케르크는 본질에 가장 충실한 미디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2차 대전의 덩케르크로 관객을 데리고 간다.
사운드와 아이맥스를 이야기하지만, 배우들도 빼놓을 수 없다. 1960년에 나온 명작 <태양은 가득히>에 나올 법한, 약간 고전적으로 생긴 배우들이 많다. 시대 고증이랄까. 패전을 거듭한 젊은 군인이라는 캐릭터에 맞게 약간은 핼쓱하고 약간은 피곤해보인다. 그런데 잘 생겼다. 나 포함 남자 셋이 들어갔는데 셋 다 전복, 아니 오징어, 아니 굴이 되어 나왔다.
두번째 시선 - 편집자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시퀀스가 튄다. 오프닝 시퀀스는 아이맥스 카메라를 쓰지 않은 듯한데, 그 이후 본론 부분과 편집 리듬이 묘하게 다르다. 놀란은 <다크나이트>와 <다크나이트 라이즈> 그리고 <인셉션>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오프닝에 비하면 <덩케르크>의 그것은 다소 밋밋하다.
사실 밋밋한 건 문제가 아니다. 영화의 대본 자체가 그리 극적이지 않다. 다만, 영화의 본론 부분과 편집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는 게 문제다. 이 현상은 엔딩 시퀀스에서도 발견된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인터스텔라>의 엔딩과 구성이 유사하다. 문제는 앞서 말했다시피 본론 부분과 편집 스타일이 다르다는 거다. 다소 이질적이다. 거칠게 말하면, 앞뒤는 영화고 본론은 다큐다. 좋게 말하면 놀란류 오프닝과 엔딩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영화의 일관성이 부족하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덩케르크에서 탈출해 영국으로 가려는 군인들의 이야기다.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는 군인들을 통해 전쟁의 참상은 물론이요, 당시 덩케르크 탈출에 성공한 수많은 용사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하지만 플롯은 좀 복잡하다. 이 리뷰의 서두에 밝혔듯이 덩케르크의 플롯은 총 3명의 시선으로 구성된다. 각 시점은 덩케르크 해변에서 탈출하려는 군인과 도버 해협에서 연합군을 돕는 공군 그리고 덩케르크 탈출 작전을 돕는 민간인의 배다. 총 3명의 시선으로 영화가 뒤죽박죽 구성되어 있다. A의 이야기가 나왔다가 B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같은 시점이 아니다. 선형 구성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해가 잘 된다. 절대 어렵지 않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 한 가지. 영화 <덩케르크>는 대사가 적다. 대사가 적은 영화가 뒤죽박죽 복잡한 플롯을 갖고 있는데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니! 마치 3인분 같은 2인분 느낌이다. 근데 그걸 해냈다. 시각적 단서만으로 복잡한 플롯을 손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구성이 오밀조밀하고 탄탄하다. "어, 뭐지?"라는 말이 아니라 "아 아까 그거! 그래서!" 라는 말이 나온다.
스토리가 단순하다고 해서 메시지가 단순하진 않다. 물론, 실화 기반이라 완전히 새로운 메시지를 던지진 않는다. 다만, ‘위대한 영국’으로 끝날 법한 영화는 배우 킬리언 머피와 선장 할아버지의 대화를 통해 멋진 영화로 변한다. 킬리언 머피가 영화의 알파이자 오메가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만 더하면 남이 되듯이, 남다른 영화가 됐다.
세번째 시선 - 넷플릭스
몇몇은 영화 <덩케르크>가 넷플릭스를 비롯한 수많은 신흥사업자의 침공에 대한 영화계의 대답이라고 말한다. 넷플릭스 등 영화 유통을 파괴적으로 혁신하는 사업자에 대항하는 전통 영화계의 답변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덩케르크는 CG를 최대한 줄이고, 실사에 집중했다. 놀란이 사용한 아이맥스 카메라는 극장에서만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한스 짐머의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에서, 스마트폰 화면으론 즐길 수 없다. 덩케르크는 “왜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해?”, “왜 영화관이 필요해?”라는 회의적 질문에 가장 올바른 답변이다.
결국, 극장이 살아남으려면 최대한 시설을 업그레이드하는 수밖에 없다. TV가, 모니터가 줄 수 없는, 극장만이 줄 수 있는 콘텐츠는 시설이다. 신세계가 하남 스타필드를 통해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듯이, 극장도 경험과 체험을 주어야 한다.
문제는, 그런 시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영화가 얼마가 되냐는 거지.
넷플릭스가 자본력으로 유명한 감독과 배우를 데리고 오는데, 사실 여기에서 가장 장벽이 되는 건 아마 배우와 감독의 ‘영화관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캠코더까진 아니어도 극장용 카메라에 대한 애착과 영사기에 대한 애착 그리고 영화관에 대한 추억이 새로운 플랫폼을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 장벽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넷플릭스가 싸워야 하는 건 선입견이 아닌 향수다.
총평
덩케르크는 영화계를 둘러싼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이다. 관객의 기대에 대한 답이자, 편집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 답이자, 넷플릭스의 침공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다.
별점 :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