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현모 Aug 30. 2017

욕망을 욕망하기

모두 욕정! 아니아니 욕망 

뭐지, 이건 진짜 똥싸다가 든 생각이라 개헛소리일 거 같은데, 생각해보면 어릴 때 내 나이 또래 남자애들은 대부분 여자애한테 틱틱대면서 호감을 표시한 거 같다. 나만의 경험이고 느낌적 느낌이라 그런데, 그 나이대에 허용되는 틱틱대는 장난질로 여자애한테 나름의 추파를 던진 거 같다. 중-고등학교 때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거의 와이들링 시절이었던 초등학교에 비하면 양반이었던 거 같고. 화이트데이나 빼빼로 데이 챙기는 거 얼마나 긔엽긔. 


가끔 애스크드를 열면 사람들이 그런 걸 질문하다. 그렇게 본인의 생각이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데에 겁이 나지 않냐고 말이다. 되게 남의 눈치를 안 보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겁나 신경쓰는 헤지나 나나 진영이나 결국은 남의 시선을 신경쓸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건데 역으로 스스로를 기꺼이 표현하는 것도 존나 당연한 일인 거 같다. 


어디서 보았는지 모르겠는데, 무언가를 보고 좋다는 감상을 남길 때 쓰이는 표현이 한 가지인 세태가 안타깝다는 글을 보았다. 글인지 짤방인지 모르겠는데 둘 다 보았다라는 표현을 쓸 수 있으니 넘어가자. 교복이라는 제도가 경제적 비용을 낮춰주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이지만, 우리네의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 때는 ‘나’보다 ‘그들’ 혹은 ‘우리’로 지칭받는 걸 기꺼이 감사했던 것 같다. ‘원’보다는 ‘원 오브 them’으로 표현되는 것이 전혀 싫지도 않고 불쾌하지 않았던 시절이라고 해야 할까. 


디퍼에서 본 기사 중에 기억남는 것은 스스로 밥해먹는 게 자신을 사랑하는 과정의 시작이라고 말하는 기사였다. 비슷한 지점에서 난 사람이 스스로를 꾸미는 것이 가장 원초적으로 스스로를 아끼고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내가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 나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지, 하다못해 어떤 옷과 화장품이 내게 어울리는지 아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다. 화정에서 운동할 때마다 느끼는 것도 이건데, 얼마나 운동이 부족했는지, 얼마나 생각없이 쳐먹은 건지, 얼마나 체력이 구린지 알게 되어 인생에 현타가 온다. 형완아 얼른 여행에서 돌아오렴, 같이 올라가자. 혼자 쓸쓸해.


물론 여기서 말할 때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코르셋 아닌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지만, 난 본인이 이쁘다고 판단하면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본인이 표현하고 싶은 대로 스스로를 나타내고,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것에 있어서 그 뿌리가 어디서 왔는지는 내게 큰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어제 논란이 된 사진이 좀 이상했다. 작가님이 너무 안타깝더라. 


한 영화를 천만 명이 보는 게 이상한가? 싶으면 뭐 그럴 만 하지 싶지만 어떤 아이템 하나가 유행하면 그거 많이 사는 건 좀 신기하더라. 스스로에 대해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으니, 자기 마음을 남에게 표현하는 것도 미숙한 듯하다. 이글 초반부에 말했듯이, 어릴 때 남자애들은 본인의 마음을 틱틱대는 것으로 표현하는 와이들링에 가까운데, 여기서 사회화가 안되어서 소위 말하는 남중-남고-이공계 테크를 밟으면 까딱했다간 흑화할 수도 있는 거고. ‘건강한 추파’가 많아진다는 명제에 매우 많이 동의하는데, 서로에게 인간적 예의를 지키면서 본인의 마음을 표현한다거나 접근하는 건 매우 좋은 일이다. 막말로 나쁜 접근이 많다고 해서 아예 접근 하지 말라는 건 뭐, 지금이 종교사회도 아니고. 


부모세대는 그렇다. 자식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세대다. 무뚝뚝한 아버지라는 그림이 TV속만의 그건 아니니까. 아내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남편이 동세대에겐 이상하게, 아래 세대에겐 되게 멋있게 그려지는 걸 보면, 우리 세대 - 지금 세대겠지 - 사람들은 보다 본인의 마음을 젠틀하게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나. 가끔씩 여자사람친구에게서 들리는 그 이상한 추파들을 듣고, 나쁜 사람 혹은 범죄자는 탄생하기보다는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하면 결국 본인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은 사람의 흑화된 말로가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내 마음을 표현하는 것에 익숙한 건 아니다. 맨날 박진영이나 김헤지한테 물어보고, 동윤이한테도 물어볼 때도 있는걸. 다만 일련의 스스로를 발현하는 과정을 미리 겪었으면 어땠을까 싶은 아쉬움이 드는 거다. 스스로를 표현하기는커녕 마음을 나타내는 것에도 어려운 나란 놈,,,후후,,,,댓글로 헤지찌찌 쓰는 것밖에 모르는 바보,,,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하고, 본인이 원하는 방향대로 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삶만큼 행복한 삶이 없다. 욕망을 인정하고 긍정하고 그걸 건강하게 표현하는 사람은 그래서 멋진데, 본인을 설명할 때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로 설명하는 사람이 멋지게 보였던 이유는 적당한 낭만주의적 치기가 아닐까 싶다. 


덕후문화도 좋고, SNS에 본인이 사고 입고 먹은 걸 올리는 것도 난 그래서 좋다. 뭐, 맨날 보면 지겹기도 하고 누구는 그게 재수없는 자존감의 발현이라고도 하고 좋은 것만 올리는 공간이라고 하는데 본인의 자아를 본인 스스로 표현하는 것만큼 스스로에게 솔직한 게 어디 있겠냐. 


뭐, 물론 하고 싶은 대로 나타내고 표현하는 것도 결국은 돈이 있어야 하는 거긴 하다. 그럴수록 박탈감이 들 수도 있고, 팔자 좋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 근데 이건 사람과 욕망에 대한 일반론적인 이야기니까. 


이 점에서 자기계발콘텐츠에 대한 호불호가 나온다. 자기계발콘텐츠를 보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거나 깎아내리게끔 만드는 거랑 스스로에 대한 어떤 욕심을 갖게 하는 콘텐츠가 있다. 전자는 믿고 거른다. 근데, 저런 게 대부분이다. 내가 무언가 되고 싶다기보단 날 끊임없이 계량하고 깎아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들. 후자는 스스로에 대해 허슬링하게 만드는데 매일 보면 지겹고 가끔 보면 무언가 스스로에 대한 욕심이 부글부글 끓는다. 


미생을 보면 그런 대사가 있다. 욕심내는 것도 허락받아야 하냐고 말이다. 무언가를 바라는 것도 눈치를 보는 건 너무 슬프지 않나. 여튼, 좀 더 욕심내고 욕망하고 욕정…아니아니 여튼 행복합시다 호호. 

작가의 이전글 뷔뷔아피! 노! 뷔아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