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1년 전 글. 기록용으로 저장해둠.
지하철 정기권이 2번 남았다. 정기권은 30일마다 리셋된다. 난 8월 5일 즈음 충전했다. 1달도 안됐는데 정기권이 동났다. 이번 달엔 평균보다 많이 돌아다녔나보다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은 5호선, 신촌대학 가는 길은 2호선, 학교로 가는 지하철은 6호선, 가끔 가는 혜화는 4호선. 내가 타는 노선은 끽해야 이정도다.
가끔 2호선을 타고 구의역을 지나간다. 고등학교 남자 동기들이랑 <메트로 폴리스 서울의 탄생>을 읽었다. 술을 잘 먹는 애가 없어서 우린 만나면 오버워치를 하거나 고등학교 때의 흑역사를 읊는다. 난 세세한 기억력이 좋아서 누구누구가 싸울 때 어떤 표정으로 화를 내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누가 이명박의 747과 대운하를 빨았는지 기억한다.
지난주 토요일이다. 신촌에서 다이아TV페스티벌이 열린 강남에 갔다가 건대입구로 갔다. 22개의 지하철역을 지나 다시 7개의 지하철역을 통과해 건대입구에 갔다.
구의역을 지날 때 아무 생각이 없다가, "아 여기가 거기였구나" 싶었다. 5초 동안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건입 카페베네에서 밀린 일을 하다가 스터디를 하고 집에 갔다.
바쁘게 산다는 건 그만큼 많은 생각을 잘라내는 거다. 아니 생각은 많은데 상념의 주변부에 머무는 상태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라 나 이외의 모든 사람은 주변부에 머문다. 내 먹고사니즘이 걸리지 않은 모든 문제와 사람은 주변부다. 내 머리에선 내가 기득권이니까.
며칠 전엔 위니픽에서 만난 앤디를 봤다. 앤디는 여자친구를 보기 위해 한국에 왔다. 시간이 진짜 빠르다. 작년 8월 25일에 일본을 경유하는 밴쿠버행 비행기를 탔는데 올해엔 꿈청에 있었다. 같이 교환을 간 친구 중 몇명은 인턴을 하고 쿠바를 한다. 닐리리맘보였던 우리가 참 많이도 바뀌었다.
과외학생의 성적이 미세하게나마 올랐다. 운동하다가 공부를 하는 앤데, 곧잘 해낸다. 특정 부분에선 쌓는 지식이 없을지언정 전체적으로 똑똑한 애다. 무식과 멍청은 다르다.
친한 중학교 때 친구와 카톡을 했다. 한 명은 디자인업체에서 일하고, 한 명은 자동차 관련한 공부를 하고 있다. 시간이 진짜 빠르다. 중학교 때 같이 낄낄대면서 나랑 놀아주던 애들인데
진짜 빨리 바뀐다. 분노와 슬픔의 포스트잇이 붙던 구의역은 햇살 좋은 날의 지하철역이었고, 중학교 때 낄낄대던 우리는 각자 제 갈 길을 찾아 열심히 발악하고 있다. 과외학생의 점수가 조금 오르고 난 살이 약간 빠졌다가 다시 쪘다. 피곤해서 그런지 인상은 죽을 상이다.
우리는 그들 각자의 중심부다. 사람이 먹고 사는 데에 필요한 위장과 번식하기 위한 성기와 그곳에 힘을 주는 심장과 의사결정을 하는 뇌가 중심부인데, 남과 공유하는 부분은 결합 시의 성기뿐이다. 본질적으로 이기적이고 중심부 지향적인 우리가 가장 비인간적일 때가 바로 주변부를 기억할 때다.
우리의 일이 아닌 일을 기억할 때가 가장 인간적이라면 난 얼마나 인간적이었을까. 장삼이사 필부의 삶이 주변부를 향하는 게 가능하겠냐만 내 지향점은 내 중심적인 위장이 아닌 모두에게 있다. 군대에 있는 내 사촌동생이, 초등학교에 있는 사촌동생들이 사회에 올 때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면 한다. 내 앞가림도 못 하는 게 웬 걱정이겠냐만은 원래 남 얘기가 가장 재밌는 법이다.
행동하는 양심이든 뭐든 거추장스러운 수사보다 가끔 남들을 기억했으면 한다. 오늘은 가습기 살균제 참사 5주기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 전부터 사건이 있었으나 문제가 공론화된 2011년을 기준으로 삼나보다. 세월호 유가족 중 한 분은 단식을 하다가 병원에 실려갔고 백남기씨는 아직 누워있다. 300일 즈음 됐나보다. 구의역은 김군을 빨아들인 채 잘도 돌아간다.
벌써 가을이다. 올해도 가고 있다. 난 어딜 향해서 얼마나 나아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