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현모 Sep 03. 2017

여자의 가난함

과외하러 가는 지하철에서 생각난 거 급히 메모한 거라 매우 조악함. 


여자의 가난함은 TV에서 볼 수 없다. TV 앞에 앉아 무엇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나지만 TV라고 적겠다. 뉴스를 제외한 미디어에서 가난한 여성 혹은 여성이 때때로 느끼는 빈곤함이 얼마나 보여졌는지 모르겠다. 애매모호하게 적었지만, 마치 세상에 알려지면 안된다는듯이 가난한 여성은 보이질 않는다. 


10대 여성의 가난함은 생리대, 학교 등으로 나타난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빈곤한 학생이 느끼는 초라함과 외로움 그리고 쓸쓸함을 그린 건 꽤 많이 보였다. 하다못해 뮤직비디오라도 말이야. 


20대 여성의 가난함은 성녀 아니면 창녀인 듯하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원비를 버는 치즈인더트랩의 김고은이나, 그걸 극복하기 위해 스폰을 받는 청춘시대의 그 화영인가 효영인가 그분. 가난한 여성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성실한 캔디가 되거나 발라까진 김치 or 된장녀 or 한국여자(...)가 되는 수밖에 없다. 가난한 여성이 토로하는 삶에 대한 피로는 대사 한두 마디로 퉁쳐진다. 무슨 일이 있던 그녀들 앞엔 백마 탄 기사라든가 개썅년에서 성실하고 착한 여자로의 회복 둘 중 하나다.


의외로 노년의 가난은 꽤 많이 비춰진다. 윤여정이 나온 죽여주는 여자라든지, 폐지 줍는 할머니 등등의 캐릭터는 많이 보인다. 하다못해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도 보이지 않았는가. 재벌가에서 살인을 사주하는 할머니가 되거나 빈궁해서 폐지를 줍거나 늙어서 성매매를 하는 할머니가 되거나다. 


중년여성. 어디서부터 중년이라고 퉁쳐야할지 모르겠지만 대략 30대 중반부터 50대 중후반까지 여성의 가난은 더욱 실종됐다. 일하는 여성은 대개 대기업 화이트칼라 워킹맘이거나 아니면 망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별의 별 짓을 하는 아줌마다. 실직 이후 집을 이끌기 위해 다시 (다시라고는 하지만 항상 엄마들은 생활전선에 뛰어든 상태다) 돈을 벌기 시작한다. 혹은 아이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노래방을 가거나. 


뭐, 잘된 케이스도 있다. 남편 등에 빨대 꼽고 팔을 넣고 입어야하는 자켓을 걸치기만 하거나 아니면 부동산 투기하거나. 후, 시발. 부럽다. 내 꿈이 셔터맨이었는데. 


최근 82년생 김지영이 화제가 되면서 다큐멘터리 등으로 조명이 됐지만, 여전히 부족한 듯하다. 


일하는 여성도 빈곤한 여성도 많다. 하지만 그들이 가난을 드러내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 듯하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억척스럽게' 변신했거나 그것을 극복하기 모든 일을 하는 여자는 있지만, 그것에 지쳐 찌질함을 드러내는 여자는 없다. 10cm가 가난한 청춘을 말하고, 3040 남성들이 실직한 이후 알콜에 절어 폐인이 되거나, 잘린 다음에 놀이터에서 하릴없이 시간을 때우는 건 있어도 가난에 지쳐 삶을 토로하는 여성이 없다. 그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게 있나? 하다못해 일에 지쳐 술먹고 지랄하는 여자도 안보인다. 


뭐랄까. 여러 생각이 든다. 지금 미디어에서 그릴 중년여성은 대개 가족이 있을테고, 그 가족 속에서 여자는 가족을 위해 성실히 복무해야 하는 의무가 당연히 있는 엄마다. 그 엄마들에게 1g의 감정적 여유도 허락이 안 된 걸까. 뭐, 지금이야 좀 달라졌지만 여성들의 찌질함은, 특히 엄마는 찌질해서도 안되고 무너져서도 안 될 존재라라는 그런 게 좀 있다. 


가난을 토로하는 여성이 적을 수밖에 없기도 하다. 왜냐면 그때도 일하거든 (...). 중년여성의 일자리가 대부분 보이지 않는, 눈을 크게 뜨고 보아야만 존재가 인식되는 투명한 노동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의 휴게처는 대부분 화장실이나 쓰레기통 옆이다. 


여성과 가난 그리고 빈곤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물과 기름의 관계인 것처럼 묘사될 때가 많다. 화장, 옷 등 여러 여성을 타깃한 소비재들이 과대포장(....)되거나 되게 비싼 것처럼 보여서 "그런 걸 사는 애들이 뭔 가난이야 빼-액!" 하는데, 근데 생각보다 안 비싸던데 우리 또래가 쓰는 건. 


커피에 대한 논란도 그렇고. 우린 남성의 가난에 대한 토로엔 눈물을 흘리고 공감해도, 여성의 그것엔 "니가 커피 사서", "니가 옷 사서", "화장품" 등등의 변명을 많이 붙이는 거 같다. 그런 프레임은 결국 사회의 공론장에서 여성의 입을 막고, 손을 자르기 때문에 나쁘다. 틀린 것이다. 


아 몰라 머리 아프다 두통약먹어야지..

작가의 이전글 제목은 뭐였더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