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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Sep 04. 2017

@: 언론 파업을 보며 든 두 가지 생각

으앙 화정갔다와따 운동힘드ㅓㄹ ㅠ

첫번째 시각


1. MBC-KBS 파업을 두고, 공영방송의 가치는 공익이기에 노조의 파업이 그르다는 분들이 계시더라. 그들의 논지는 대개 언론 노조의 파업은 정치적이며 좌파 (음, 한국에 좌파가 있던가? 현우야… 말 좀 해줘 ㅠ) 노조의 파업은 결국 공산주의, 하다못해 공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결국 노조 기득권 내지 좌파 언론인의 밥그릇 챙기기 아니냐는 말도 있다.


2. 자, 그분들에게 묻고 싶다. KBS 앵커가 곧바로 청와대 대변인이 되고, 이정현 의원이 보도 청탁을 하고 그네들이 말하는 그 위대한 공영방송 프라임 타임 뉴스에 소시지 빵 이지랄 할 때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응? 


3. 그래, 공영방송의 제 1의 가치가 공익이라고 치자. 그럼, KBS와 MBC는 지난 몇 년 동안 공익에 충실히 복무했는가? 아니다. 왜냐고? 언론 자유가 없었거든. 뭐,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이거 보고 와라. 적당히 못생긴 애가 쓴 글이다. 아니 시발 언론사 노조 파업이 공익 해친다는 분들 대체 지금까지 MBC-KBS bbs될 때까지 뭐하셨수? 응? 

https://brunch.co.kr/@jonnaalive/7


4. 자, 그래. 백 번 양보해서 KBS-MBC 언론인 노조가 그 개샹노무새끼에 정치적 노조라고 치자. 예전에도 말한 건데, 최근의 KBS-MBC 사태는 정치권이 개입해서 생긴 문제다. 정치권이 개입해서 생긴 문제를 정치적으로 푸는 게 잘못인가?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012 대선 기간 때 MBC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자한당, 당신들 말이야. 당신들이 그렇게 떠받들던 사람이 그랬다고. 


5. 공영방송이 사회를 위해 복무하기 위해선 자유라는 기반이 있어야 한다. 언론인에게 재갈을 물린 상태로 가나다라마바사 외우라는 건데 대체 어쩌라는 거냐. 그 최소한의 조건을 수복하려는 시도를 정치적이라고, 공익을 저해한다고 하는 그네들의 저의가 참 궁금하다. 


두번째 시각


1. 어쩌다보니까 지인들이 방송국에서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다양한 형태로 일한다. 뭐, 이름은 좋다. 피디, 에디터, 디지털 저널리스트, 개뿔. 니미, 염병하네. 이름만 그럴싸하면 뭐하냐? 그놈의 그럴싸한 이름 어차피 상 받을 때는커녕 뭐 포상 받을 때도 안 올려줄 거잖아요. 안그래요? 


2. 그런 쪽에서 일하는 지인의 대부분은 비정규직이고, 소수만 정규직이다. 언론자유를 외치고 사회정의를 말하고 부조리를 꼬집는 방송국이 부조리의 집합체라는 건 누구나 다 안다. 언론이 적폐라는 말은 사실 반은 맞는 말이다. 정규직 이기주의라 불리는 행태들, 비정규직 찬밥 대우, 일은 있고 돈은 없는 그런 개같은 것들도 많다. 뭐, 내가 직접 겪은 건 아닌데 (나는야 우추체고이ㅡ대학원생ㅇㅇㅇㅇ), 들리는 게 좀 많아야지. 연봉 얘기하지 말고, 선배라고 부르지도 말고, 호칭 조심하고, 끼리끼리 뭉쳐다닐 때도 조심하고. 뭐, 그래. 자세한 건 기사로 대체한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93558.html

http://www.redian.org/archive/91250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8311907491&code=940100


3. 비정규직 전환시키지 말라고, 자회사도 안된다고, 시발 어쩌라고? 뭐 그런 생각이 들더라. 니미 그렇게 비정규직 많이 뽑을 거면 차라리 공채를 없애든가. 공채 없애고 인턴 -> 전환 제도를 만들든가. 공채 내비두고 비정규직 존나게 뽑으면 시발 그게 신분제밖에 더 되냐. 


4. 알고 있다. 좀 비뚤어진 거 맞다. 공영방송의 이번 파업의 대마가 이게 아니라는 것도 알고, 이거 백번천번 말해도 풀리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묻지마 정규직화도 오래 가지 못할 거라는 거 안다. 


5. 그래도, 한 번만 더 신경써줬으면 한다. 1명의 100걸음보다, 100명의 1걸음이 의미 있다고, 다 같이 사는 사회라고 말하는 곳이 언론사 아닌가. 긴 말은 하지 않겠다.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는 동시에, 언론사 내부의 적폐에 대한 문제제기도 좀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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