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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사계'의 일부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불렀고, 거북이도 불렀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우리에겐 거북이가 부른 게 더 친숙할 거다.
1989년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 2집에 실린 노래로 민중가요였다. '공순이' 여공들의 삶을 담은 노래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라는 후렴구가 중독적이다. 아프리카에서 '미싱방송'을 하던 중년 여성이 있었는데, 공순이였을까?
광화문에 갔다. 날씨가 싸이코패쓰라 더웠다. 온도가 귀신 같이 내려가더니, 악마처럼 올라갔다. 이런 날씨를 가진 나라에 총기까지 허용됐다간 안된다. 싸이코패쓰 만드는 날씨에, 총-펜싱-양궁에서 금메달을 딴 전투민족성까지 갖고 있는데 총기소유가 허용되면 사고난다.
아 며칠 전에 중학교 친구랑 연락했는데, 한국을 떠나려는 게 확실해 대세이긴 한가보다. 공고를 나온 친구들도 대기업 생산직에서 일하다가 영어 공부를 하고 해외 기업 기술이민을 꿈꾼다고. 아니 뭐 그렇다고. 왜 떠올랐지? 여튼. 아마 난 한국에 살텐데(아니어도 어디든 잘 살 놈이긴 하다), 계속 누군가 떠나고 싶은 곳에 산다는 게 괜히 좀 거시기했다.
세종대왕 동상 근처에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추석맞이 가족대잔치였던가. 5~6살짜리 혹은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가족들이 그네를 타기 위해 줄서있었다. 무한도전 춘향전 특집에 나왔을법한 그네가 있었다. 그거 한 번 타기 위해 그 더운 날씨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있었다. 그 옆에는 추석특집 ~~한마당이라는 제목이 어울릴 법한 풍물놀이 비스무레한 판이 있었다. 사람이 버글버글했는데, 이 날씨에 버글버글하고 옹기종기 모여있다는 것 자체가 특집이었다. 장터도 있었다. 팔찌도 팔고, 디퓨저도 팔고, 캔들도 팔고, 중고 상품도 팔았다. 아파트 장터같았다. 떡볶이도 팔고 슬러시도 팔고.
이순신 동상 앞에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있었다. 주말에는 세월호 카페였나 무슨 카페가 문을 열지 않는 모양이다. 임시 거처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고, 저 멀리 청와대로 고개를 돌렸다. 아무 이유는 없다. 유가족과 시민들이 사건의 해결이 조속하게 이뤄지길 바라며 단식을 하고 있었다. 이 더운 날씨에도 봉사자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세월호 고리를 만들고 있었다. 옆쪽에는 다른 봉사자분들이 서명을 받고 있었다. 몇명의 서명이 더 필요할까. 서명이 필요한 문제였으면 진즉에 해결되지 않았을까.
기괴한 풍경이었다. 내 짧은 어휘력으로는 기괴하다는 표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추석맞이 대잔치와 세월호 유가족의 단식이 같은 공간에 있었다. 이토준지 만화책, 베르세르크의 월식에나 붙을 법한 '기괴하다'라는 수식어가 너무나 어울렸다. 한쪽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원을 풀기 위해, 한쪽은 가족들이 주말의 여흥을 즐기기 위해 모였다. 근데, 같은 공간에 있었다. 같은 곳에서 두 가족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들의 서사는 매우, 너무나, 참으로 달랐다.
며칠 전 장안철교에서 사고가 났다. 20대 인부가 작업 중 추락해 사망했다. 아마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듯하다. 임형찬님의 말씀에 따르면 사람 키만큼만 올라가도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게 FM이라고 한다. 공사를 발주한 회사는 서울메트로였다. 그렇다 지난 구의역 사고와 마찬가지다. 아닌가? 책임자들은 다르다고 말하겠지만, 내겐 그렇게 보인다.
구의역 사고가 일어난 게 5월 말이고 이번 사건이 9월 초에 생겼으니 약 3달 정도 시간이 있었다. 3달동안 언론과 사건관계부처는 주구장창 안전과 비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정규직, 정규직 따위의 거대한 이야기와 안전 수칙 등 작은 이야기가 혼재됐으나 둘 다 의미있는,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3달이 지나가는 동안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어쨌거나 지난 3일 한 청년이 안전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사고. 사고. 사고. 세월호는 해상에서 일어난 사고였는데 전후맥락을 넣으니 사건이 됐다. 그 사건을 해결하자고 지정한 게 국민안전의 날이란다. 그게 4월 13일.
참나 웃긴다. 그렇게 건국절을 잊지 맙시다 어쩌고저쩌고하면서 건국절 인사들의 희생에 대해 감사하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정작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과 그날이 준 교훈은 다 잊었나보다. 구의역 김군이 안타깝다고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구의역에서 김군이 사망한 날이 5월 28일인데 누구 하나 기억하나? 다 뒤진 건국절 기억하면서 이념딸딸이 칠 바에야 5월 28일이나 4월 16일부터 기억했으면.
기억이 그렇게 무섭다. 힘이 없는 나로서는 기억하는 게 전부다. 그때 그런 사고가 있었는데, 알고보니 해결해야만 하는 사건이었고 근데 안됐고 이렇게 또 다시 좆됐다. 음. 봊됐다? 여튼. 비속어를 쓰지 않고 표현하기엔 너무 안타까운 사건이 아닌가? 안타까움과 슬픔과 화남이 섞이면 비속어가 나오는 게 사람의 심정이다. 너무 천박하다고 보지 말아주시라.
29살 노동자는 또 안전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안전안전안전하자고 국민안전처에서 안전하게 지랄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 돈은 한정되어있고, 예산을 줄이라고 하면 사람값부터 줄이는 게 이치아닌가. 안전도 비용이라고 하는데 뭐 할 말이 없다.
유가족들은 여전히 광화문에서 농성중이다. 알고보니 공기를 주입했다는 것도 구라였고, 로봇물고기 역시 허풍이었다. 전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고 한다.
아, 왜 기괴했는지 알았다.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하는 목소리가 2014년 4월 16일부터 있었는데 그럴 듯한 쇼만 하고 나타나지 않고, 외면하는 누군가의 사무실이 광화문이 보일 법한 자리에 있었다. 때때로 리더는 '너는 짖어라 나는 간다'는 자세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 때가 너무 많은 게 탈이다. 그 사람의 눈에는 추석대잔치를 즐기는 시민만이 보였을까?
20140416~
20160528~
아직 진행중이다. 바뀐 건 아마…. 있나? 뭐 국민안전처라는 이상꾸리한 집단이 생겼고 해경이라는 집단은 해체됐다고 한다. '한다'라는 표현을 쓰는 건 딱히 와닿지 않고 그렇게 언론에서 말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심정이다.
약자에 대한 동정이 '약한 사람'에 대한 증명이 되는, 동정이 개돼지나 할 법한 거짓부렁으로 치부받는 세상에, '쓸데 없는 일'로 치부되는 세상에 저런 날짜를 기억해봤자 뭐 도움이 되겠냐만은. 돈 없고 힘 없는 내가 할 게 저거밖에 더 있겠냐. 건국절로 지랄발광하는 거 보니까 얄밉게 더 기억해줘야 누구누구들이 싫어하겠더라.
"흰구름 솜구름 탐스러운 애기 구름 짧은 샤쓰 짧은 치마 뜨거운 여름 소금땀 비지땀 흐르고 또 흘러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온다. 빠르게 겨울이 올텐데, 초침은 돌고 바뀌는 건 없다. 사람들 옷차림이나 바뀌겠지. 훈계질도 아니고 선민의식도 아니고 아주 가끔 기억하는 게 전부인 찌질이의 푸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