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인가 8월인가. 롯데카드가 서태지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주최한다 말했고, 티켓을 오픈했다. 지인이랑, 여훈이랑, 지인이의 지인 분과 함께 총 4명이서 예매했다. 왜 선뜻 했냐고? 롯데카드 보유자에겐 1+1 이벤트를 해줬거든. 결과적으로 조-올라 싸게 간 셈.
롯데카드 무브는 현대카드의 국내 열화버젼으로 1회 때는 신승훈과 JYP가 나왔다. 서태지가 두번째인데, 이 기세를 보니 국내 레전드 가수 위주로 라인업을 꾸릴 모양이다.
80년대생 빨갱이(..)분들에게 큰 영향을 준 세 명을 꼽자면, 이승환-신해철-서태지가 아닐까 싶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서태지는 대중문화에 엄청나게 영향을 끼쳤고 그 티켓파워와 이름값은 여전하다.
장소는 잠실 주경기장이었다. 좀 찾아보니, 콜드플레이든 RHCP든 어떤 가수가 와도 사운드가 구릴 수밖에 없는 콘서트장이란다. 즉, 공연장으로서의 메리트는 없는 셈. 그래서 그런지 어반 자카파 때부터 음향이 좀 불안하더라. 후기를 좀 찾아보니, 좀 멀리있는 그라운드석과 좌석 쪽에선 음향 문제가 심각했다더라.
게스트는 국카스텐, 어반자카파, BTS였다. 난 국카스텐이 펄스를 부를 때에 콘서트장에 들어왔는데, 그 곡이 끝나자 복면가왕에서 리메이크한 하여가를 불렀다. 쩔었다. 뒤이어 어반 자카파가 나왔는데 실망이었다. 솔직히 리메이크한 모아이 부를 줄 알았는데 자기 곡만 부르고 갔다. 어반 자카파의 팬들도, 서태지의 팬들도 실망했을 거다.
정확히 말하면, 서태지 데뷔가 아니라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25주년이다. 서태지 솔로 1집은 추후에 나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없다. 이주노는 사회면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양현석은 경영인이 된 지 오래다.
방탄소년단이 서태지의 아이들이 됐다. 이번 콘서트의 주된 테마는 아이들부터 서태지 솔로까지 모든 노래를 편곡 없이 원곡 그대로 살려주는 데에 있다. 아이들 시절의 노래를 원곡으로 소화하면 필연적으로 아이들이 필요한데,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돌아가며 아이들이 됐다. 서태지로서는 방탄소년단에게 정말 중요한 역할을 맡긴 거고, 방탄소년단 입장에선 그만큼 영광스러운 자리가 없을 테다. 만약, 단순히 게스트로 리메이크 곡을 부르고 갔다면 BTS도 까였겠지. BTS를 보러 온 팬들에게도, BTS에게도, 서태지팬들에게도 모두 웃는 결과가 나왔다. 진짜 BTS 멋있더라. 형들 넘 멋져여. 저 팬됐음ㅋ
참 신기하게도, 방탄소년단이 나올 때마다 경기장 어딘가에서 돌고래 소리가 나왔는데 그분들은 서태지 노래도 모를텐데 어떻게 왔을까 싶더라. 심지어 중국팬들도 봤다. 서태지가 아무리 문화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대단해도 중국팬한테 먹힐까? 딱봐도 BTS 팬이다. 대단했다. 서태지 노래는커녕 서태지도 몰랐을텐데.
전체 셋리스트는 25곡 + @(앵콜곡) 이었다. 아이들부터 최근의 크리스말로윈까지 각 앨범마다 1 - 3곡을 뽑아 들려주었다.
브이앱에서 라이브도 하고, 공연 영상도 올리는 등 공연 전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런지 서태지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필승 원키 때 보여준 “내가 이거 원키 못한다고? 이거 쉬운 거야. 하하” 간지는 잊지 못할듯. 기타치면서 필승 원키로 때리는 거 멋지더라.
슬램존은 따로 없었고, 팬들인지 관계자인지 모르는 분들이 중간에 알아서 만들었다. 6집 노래 인터넷 전쟁 때만 했고.. 아, 대포분들이나 캠코더중년들이 꽤나 계셨다. 심지어 아이를 업고 열심히 뛰시는 어머니들도 계셨다. 난 멀었다. 팬커뮤에서 나눠준 부채에는 25년이면 아는 형이나 오빠가 될 줄 알았다고 하는데, 난 속으로 “헤헤 난 팬질 10년만에 승환형님이랑 아는 사이 됐는데 헤헤” 했다. 호호. 하이엔드 콘서트 예매 성공함 호호.
개인적인 베스트는 제로. 저번 크리스말로윈 때도 안했던터라 이번에 해주길 바랐는데 다행. 목이 터져라 불렀던 건 로보트. 어릴 때는 몰랐는데, 가사를 다시 곱씹으니 참 좋더라. Heffy end나 Victim이나 6집 노래 가사는 곱씹을만한 것이 많다. 아쉽게도, 라이브 와이어는 부르지 않았다.
앵콜 때 시대유감을 때려줬는데, 시대가 참 많이 바뀌긴 했더라. 유스케 때도 시대유감을 했는데, 그때는 지금 무상급식을 받고 계신 그분이 서슬퍼러셨을 때지. 정권 바뀌었으니 앨범도 내주길.
25년 동안 자신을 버리지 않는 팬들을 보면서 서태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25년 동안 끊임없이 음악을 내주는 (솔직히 많이 끊기긴 했다) 서태지를 보면서 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티스트로서 이룰 것을 모두 이룬 사람들 (이승환, 서태지, 신해철, 김건모, 신승훈, 박진영 등) 은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했다. 공장장은 후배를 양성하고 사회에 기여하기로, 대장은 가족과의 행복을, 마왕은 이름을 남겼지.
콘서트를 다니다 보면, 마치 광신도의 집회와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 가수 한 명만을 보는 수천-수만 명의 팬들, 그들과 함께 하는 퍼포먼스까지 말이다. 콘서트는 팬과 아티스트가 공유하는 집단기억을 만드는 현장이다. 광화문 광장에서 가수들이 노래를 부른 게 전혀 특이한 일이 아니다. 서태지 콘서트는 그랬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기보다 다양한 세대가 함께하는 공유기억을 만드는 그런 장소였다. 괜히 매체들이 커뮤니티를 만들고, 오프라인 이벤트를 시도하는 것이 아니다. 제작자에게 애착이 있는 사람들이 고관여도를 보여주는 장소.
내가 가수였다면 잘 팔리는 음악보다, 꾸준히 기억되는 음악을 만들고 싶겠더라.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먹히는 음악의 기본은 사람에 대한 고민과 관찰이 아닐까도 싶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