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현모 Sep 07. 2017

Self 메모.

뭐, 근본 없는 추론이긴 하지만 결국 최근 몇 년 동안 유행하고 천조국에서 유행하고 있는 소비문화는 결국 자존감 챙기기의 일환이 아닐까 싶다.


다양한 결이 있긴 하지만, 공장에서 나오는 떡에마저 '수제'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을 보면 그만큼 내가 '사람'에게서 대접 받고 있고, 그만큼 존귀한 사람이라는 인지를 주는 제품을 사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나중엔 수제 스마트폰이라는 말도 나올 듯하다. 아닐까라고 하는 건 지극히 추측이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닐까. 아닐까는 아닐까.

메이커스 위드 카카오의 USP도 그렇고, 텀블벅의 뱃지들도 그렇고 결국 남과 다른 + 나만을 위한이라는 코드를 잘 섞은 것. 물론, 소비자를 우쭈쭈해주고 대접 받을 사람으로 착각(...)하게끔 만드는 건 예전부터 내려온 문화지만 요즘은 특히나 그런 듯하다. 수제라거나, 한정판이라거나, 초판본이 결국은 소수만이 가질 수 있고, 너는 그것을 가질 만한 좋은 사람이라는 위로의 메시지를 담은 듯하다.  


비슷한 지점에서 미국에서 나오는 메이커스 무브먼트와 D.I.Y 문화도 남이 아닌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내가 배워 해낼 수 있다는 -> 내!!!가!!! 했다!!!다!!!!!!! 는 감상을 제공하기 때문에 매력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콜드브루의 차이도 여기에 있는 듯한데, 완전히 튀는 것보단 남들보다 0.5발자국 정도 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코드를 이해하면 콜드브루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에서 0.5발자국 옆그레이드 한 음료기 때문에 인기 많은 게 당연하다. 요즘엔 질소 넣은 니트로 콜드브루가 인기라던데. 남들과 다른 일을 하기엔 좀 겁이 나고 (다 그렇겠지만). 적당히 다름을 내보내서 자존심도 챙기고 자존감도 챙기는 거 아니려나.


왜 지금이냐고 물으면 (여전히 생산의 매커니즘은 다수를 위한 대량 생산이지만) 제품을 만드는 매커니즘이 예전에 비해 많이 해체된 지금이라 그런 게 아닐까.


이게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조립식 제품인데, 조커가 배트맨한테 "융우ㅜㅇ우ㅜ웅 컴플ㄹㄹㄹㄹㄹ리이이이잇1 미!!!!!!" 하듯이 조립을 하면서 내가 이것의 완성에 기여를 하고 그만큼 얻는 성취감이 높고 그게 자존감으로 이어지고..


딩고에서 흥했던 그 연예인이 해준다면 시리즈도 결국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힐링이든 위로든 멘토든 결국 기본은 "넌 이대로 잘하고 있고 이대로 하면 잘 될 거야. 뭐 시발 힘들었지? 야 시발! 괜찮아! 너는 너로서 존나 잘했어! 좀만 더 화이팅하자! 호우! 흐콰!" 이러면서 자존감 챙겨주는 게 아닐까. 이 캐릭터가 잘 반영된 구도가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와 오상식 과장.


뭐 이런 말을 하면 요오오오오즘 것들은 맨날 징징대기만 하고! 라고 할텐데 솔직히 인터넷에서 징징대지 않은 인간이 어디 있겠습네까!!!! 느그 싸이월드 버디버디 프리챌 ㅇ니텔 다 뒤져봐?!!??!!


D.I.Y, 방꾸미기, 혼술+나만의 술, 혼족, 혼영,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광화문 광장에 휘날렸던 그 수많은 잡다구리한 깃발들 모두 Self-esteem이든 Self-reliance든 Self로서 의미있고 싶어하는 세대를 보여주는 몇 가지 경우라고 본다.


뭐, 자존감 지키기 어려운 건 예전이 더 어려웠겠지만 그때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 문제제기할 생각도 못할 시기였고 요즘은 그냥 문제제기하는 시기라고 생각하면 대충 이해할 수 있지 않으려나. 여튼 좀 더 진지한 이야기는.... 댓글에



좋든싫든 SELF의 시대다. Self 뒤에 esteem, reliance를 붙이든 Self 앞에 For, by, of를 붙이든 말이다. 스스로를 긍정해서 출발하는 Self면 좋으련만 아마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적 Self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에서 스스로를 보장해주는 건 스스로뿐이다.


세대별로 좀 더 자세히 뜯어보고 싶지만, 현 세대의 키워드를 자존감 회복 or 자존감 지키기라고 생각하면 당연히 뷰티도 '셀프'로 이어진다.


(잘은 모르지만) 뷰티와 패션 같은 경우, "현재 어떤 사람들이 많이 사는지"와 "나만의 무언가"가 동시에 작동하는 영역이다. 예를 들어, 멜론 같은 경우 TOP100 (누가누가 뭘 많이 보는지)의 영향력이 매우 크고,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뷰티는 개인의 피부 컨디션과 색에 따라 당연히 다르게 사야하며, 뷰티는 대형 플랫폼에서 사는 동시에 개인 블로그에서 개인화된 (표현이 맞을려나) 제품을 사는 경우도 빈번.


화장하는 과정이 사회적 페르소나를 만드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당연히 스스로 그 페르소나를 만드는 게 당연하다. 나보다 화장을 잘하는 뷰티 유튜버의 화장법을 적당히 베껴가며 나만의 화장법을 통해 나만의 얼굴을 만드는 것. 그 자체가 자존감 지키기 or 회복.


전문성 함양이 셀프 - 뷰티 & 패션의 도착점일진 모르겠다. 그것을 통해 화장전문가가 되기 보다는, 이 비루한 껍데기 하나 내가 계발하고 지키겠다는 일념이 더 크지 않으려나 싶다. 운동을 하면서 몸을 키우는 것과 뷰티 & 패션은 같은 맥락에 있는 듯하다.


스스로를 꾸미면서 자존감을 지키는 것. 그 시작은 의식주일 것이며 순서대로 요리하기, 꾸미기가 왔고 이제 남은 건 D.I.Y 리빙 정도.

작가의 이전글 @: 마광수 + 나는 길들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