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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Sep 10. 2017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작가님 뵙고 싶어용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 김보통 / 문학동네 / 20170910


완독 : 20170908~0909


1. 정말 술술 읽혔다. 작가님과 페친이라 글을 자주 읽어서 그런지, 정말 잘 읽혔다. 담담한 어투라 화려한 미사여구를 소화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고, 말하듯이 글을 쓰고 쉽게 이야기해 이해하는 데에도 시간이 들지 않았다. 페이스북에 가끔 남기시는 토막글과 책에서 느껴지는 작가님의 캐릭터는 동일했다. 그간 읽어온 페이스북 글을 통해 기대한 그것과 유사해 더욱 편했다. 그 점에서 작가님은 정말 세상과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이 단단하신 듯하다. 김영하라는 브랜드가 나왔단 말처럼, 김보통의 브랜드가 나왔다. 


2. 책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불행의 입구에서 자립한 사람이 불행해지지 않기 위한 노오오오력의 자서전 쯤이다. 작가는 한때 자신의 꿈이었던 곳에 들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성공했다. 좋은 회사원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살기 위해 버텼다. 버티다가, 살기 위해 나왔다.


3.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작가 직장선배의 말을 보고 물음표가 생겼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적인 삶이다. 그 어떤 것도 사적인 것보다 위에 있지 않다. 가족, 사랑, 친구, 연애 등 이렇게 사적인 것들은 위대하다. 일은 이 사적인 삶을 지탱하기 위한 도구일뿐이다. 일은 전혀 공적이지 않다. 공적인 것으로 프레이밍할뿐, 일은 전혀 공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팀을 위한 회식, 팀을 위한 희생 따위 없다. 사적인 삶을 지키기 위한 일에 왜 사적인 것들을 희생해야 하는가?


4. 일과 가정의 양립이 아니다. 일은 가정 밑에 있어야 한다. 가정이라는 단어는 개인의 삶과 사랑 등 다양한 단어로 대체할 수 있다. 직장에 잡아먹혀 괴물이 되어 남의 가족을 향해 폭언을 한 작가의 직장선배에게 되묻고 싶었다. 그 회식은 대체 어떤 ‘공’을 위했냐고 말이다. 


5. 작가님은 자신이 하고 싶던 여러가지를 시도하다, 실패했다. 그러다 브라우니를 구웠고 실패 끝에 행복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보는 과정도 그렇다. 브라우니라는 한 가지 음식을 만드는 데에 수십, 수백 가지의 레시피가 있다. 비슷비슷해보여도 우리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잘하는 것은 각기 다르다. 조직을 벗어나 보통의 생활인이 되기 위해선, 보통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선, 불행하지 않기 위해선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 과정은 어렵고, 재미 없을 거다. 그저 브라우니를 굽듯이 차근차근 알아보는 수밖에 없다. 얼른 뇌과학이 발전해서 대신 알아줬으면 좋겠다.


6. 우리는 왜 버텨야만 할까? 허지웅이 쓴 버티는 삶에 대하여라는 책을 보고, 제목 참 잘지었다 싶었지만 내심 왜 우리는 방어적으로 버티기만 해야 할까 싶었다. 좀 더 진취적으로 행복하자. 방어적으로 행복말고. 불행하지 않기 위해서 행복을 유예한다. 어, 말이 이상하다. 지금의 행복을 유예하면, 지금은 불행한 것 아닌가? 왜 우리는 지금의 행복을 쫓으면 바보가 되고, 세상을 모르고, 뭘 모르는 사람이 되는 걸까. 도망친 곳에 낙원이 없듯이, 유예한 행복은 행복이 아니다.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와 같다. 


7. 행복해지기 위해 나만의 선택을 할 때, 어른들은 그렇게 말한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어쩔 수 없는 거고, 때로는 싫은 일도 해야 하며 버텨야 한다고 말이다. 반은 공감하고, 반은 갸우뚱했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야 하는데, 왜 그걸 해야 할까? 라고 속으로 구시렁댔다. 남들이 다 버틴다고 해서 내가 버틸 이유는 없다. 아니, 남들이 버티는 것 자체가 옳은지도 모르겠다. 


8. 어떤 사회가 가장 행복할까? 물으면 “남들 다 그렇게 살아”에 나오는 남들이 행복한 사회다. 쌍따옴표 안에 있는 남들은 현재의 행복을 유예하고 살인적인 경쟁을 버텨낸다. 그런 평범러들의 삶을 감히 단정내릴 수 어렵지만, 행복을 유예한 삶에 과연 어떤 행복이 찾아올까. 다 그렇게 사는 다른 사람들의 삶이 본인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선택으로 가득하길 바란다. 다 그렇게 사는 남들이 모난 돌에 정을 때리지 않고, 전부 모난 돌로 살았으면 좋겠다. 행복한 가정은 대개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각자의 이유로 불행하다는데, 우린 각자 다른 이유로 행복해야 한다. 얼굴이 다르고, 몸이 다르고, 바라는 게 다른데 어떻게 같은 이유로 행복하겠는가. 그것이야말로 사회가 획일화된 가치로 개인을 매몰하고 있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닐까? 


9. 내가 제멋대로 지은 책의 또다른 제목은 어떻게 좋은 부모가 될 것인가 내지 어떻게 좋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가 정도다. 이 책을 총 세 종류의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데, 회사에서 시스템을 만드는 분과 이제 막 부모가 되는 분과 복학생이다. 조직에 대해 고민이 많고, 나쁜 상사가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꼭 읽어라. 내 자식이 행복하게 살기 바라거나 불행해지지 않기를 바란다면 이 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알콜에 절은 스무살에서 사회의 뜨뜻미지근함을 겪는 사회초년생 사이에 있는 복학생도 읽으면 좋다. 참전하기 이전의 유예기간에 읽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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