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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Sep 15. 2017

@: 김보통 작가와의 만남 + 북바이북 + 언론 잡상

ㄷㄱㄷㄱ대면서 작가와의 만남을 신청했다. 약간 일찍 와 자리를 잡았다. 작가님의 탈이 있었다. 7시 반 즈음에 흰 셔츠를 입으신 분이 마이크를 잡고 “김보통 작가와의 만남에 참여하신” 이란 말을 하셨다. 진짜 당연하게 북 바이 북 직원이신 줄 알았는데, 작가님이었다. 


오늘 작가와의 만남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Don’t try였다. 찰스 부코스키의 묘비명인데, ‘노력하지 마라’ 내지 ‘애쓰지 마라’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하다와 노력하다 내지 애쓰다의 차이는 뭘까 생각했다. 무엇을 찾으려 애쓰거나 노력하는 것과 찾는 것은 무슨 차이일까. 


전자는 자발적이지 않다. 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무엇을 위해 하는 행위다. 왠지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하는 거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들어갈 수 없는 곳에 낑겨 들어가는 일이다. 남에게 떠밀려서, 사회에 떠밀려서 하기 싫은 공부를 하고, 원치 않는 일을 한다. 처음엔 떠밀려서 하다가 그것에 무감각해진다. 행복과 불행을 논하기 이전에, 옳은 일과 그른 일을 논하기 전에 종속된다. 


작가님은 노력하지 말고 그냥 해보라고 했다. 퇴사 이후 도서관을 운영하고 싶어서 책을 사고, 브라우니를 먹고 싶어 브라우니를 구웠던 작가님이다. 그냥 하는 건 뭘까 싶었는데, 그냥 하는 건 그냥 하는 거다. 한 번 뿐인 삶, 빛나게 살자던 그의 인터뷰처럼 욕망에 충실해볼까 싶었다. 애기처럼 사는 거다. 먹고 싶으면 먹고, 싸고 싶으면 싸고, 자고 싶으면 자고 말이다. 남한테 피해주지 말고, 그냥 적당히 살고 싶은 대로 사는 삶. 문제는 적당히다. 


그의 말에서 느낄 수 있던 것은, 그의 말이 현학적이지도 않고 낭만적이지도 않고 실존적이었다는 점이다. 땅바닥에 발딛고 사는 사람으로서 느끼는 고민과 트라우마로 남은 수많은 악습을 멈추고 싶지만 경영자로서 느끼는 딜레마까지 어떻게 보면 사소하지만 해결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말했다. 파업 중인 방송국에서 일하는 선배가 카톡을 주셨다. 참여하고 싶지만 일 때문에 참여하고 있지 못하다는 선배한테, 난 선배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공영방송의 문제는 거버넌스고, 거버넌스를 정하는 건 정부인데 일개 피지배자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빼는 글쓰기가 좋은 글쓰기란다. 더이상 뺄 것이 없다고 느끼는 글이 좋은 글이라는데, 작가님의 글과 말을 보면 그렇더라. 지방 적은 보디빌더 느낌. 그리고 작가님 되게 쎄보이심.  운동 잘하시고 팔뚝 굵으실듯. 아, 손이 이쁘시더라 (…). 



작가님은 본인이 운빨이라고 했다. 거창한 일이 아니고, 운이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작가님의 책을 다시 생각해보면 그게 기억났다. 밑줄치고, 질문도 남겼던 구절이다. 작가님은 책에 본인의 보잘 것 없는 그림을 많은 사람들이 봐주었다고 말했다. 


세상엔 운 좋은 사람도 있고, 운 나쁜 사람도 있다. 운이 좋아 따봉을 많이 받고, 운이 나빠 조리돌림을 당한다. 아프리카에서 굶주리는 아이들은 그저 운이 나빠 거기에 태어났고, 난 운이 좋아 여기에 태어났다. 운빨 ㅈ망겜이다. 세상에 개연성이 없는 악인이 많다던 권성민 피디님의 인터뷰처럼, 세상은 개연성 없는 행운과 불운 투성이다. 


작가님이 운이 좋았던 건, 결국 많은 트위터 이용자가 작가님의 그림을 봐주었기 때문일 거다. 봐준다는 단어는 왠지 동정을 주는 거 같기도 하고, 행운을 나눠주는 거 같기도 하다. 내가 누리고 있는 작은 행운을 사회와 나누기 위해선, 우린 누군가를 끊임없이 봐주어야 한다. 봐준다는 단어가 기분 나쁘다면, 그냥 본다고 하자. 타인에게 관심을 주고, 그에게 말을 건네는 것 자체가 행운을 나누는 좋은 일이다. 작가님은 요즘 학생들에 대해 관심 깊게 보고 있다는데, 난 무엇을 봐야 할까. 행운을 나누고, 빛나는 무엇 혹은 빛나는 누군가를 발굴하는 일을 하고 싶다. 


영광스럽게도 작가님이 날 기억해주셨는데, 너무 긴장하고 얼어붙어서 어버버하다가 나왔다. 게다가 자정까지 마무리해야할 보고서도 있어서 ....ㅠㅠ 작가님 진짜 영광스러웠습니다 ㅠㅠㅠㅠ 술은 안 하신다니 (저도 안합니다!!!) 콜드브루 한 잔 하면서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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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바이북은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내 눈 길을 사로잡은 건 아래의 사진들이다. 최근 교보문고의 매대가 큐레이션이 아닌 광고로서 기능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미디어 혹은 플랫폼으로서 포기할 수 없는 기능이 바로 추천과 큐레이션이다. 그걸 포기한 미디어가 존재할 수 있을까?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대사에 착안하자면, 추천과 큐레이션은 미디어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가오다. 사용자의 신뢰를 잃은 미디어는 존재할 수 없다. 




북바이북은 몇몇 책에 책갈피를 꽂아놨다. 아, 책갈피가 아니라 그걸 읽은 사람이 손글씨로 적은 독후감을 코팅한 종이였다. 북바이북에서 일하시는 분이 적으신 건지, 독자가 적은 건지는 알 수 없다. 서점이 의미 있는 서점이기 위해선 저래야 하는 게 아닐까. 민성님 알려주세요! 오늘 먼저 말 걸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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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사실이라는 희한한 단어가 생겨났다. 트럼프는 본인의 거짓말과 헛소리를 대안적 사실이라며 사실의 범주에 낑겨넣었다. 적지 않은 지지자가 그 단어를 믿는다. 오늘 종이 매체에 대한 장강명 작가의 글을 읽었다. 언론사의 죽음을 논하는 글이었다. 


기성 매체라는 모호한 단어에 들어가는 많은 언론사들은 기존 사회경제적 구조 위에 세워져있다. 사회 - 경제적 환경이 양극화로 치닫고, 무너지면서 기존 구조도 흔들린다. 신뢰 관계의 바탕이 되는 구조가 흔들리는데, 신문사가 무너지지 않는 게 더 신기하다. 


독자는 항상 뉴스의 뒷배경을 궁금해 한다. 썰전이 인기 많은 이유도, 정치인과 경제인의 뒷담화를 궁금해 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런지 조선일보니까 이런 기사를 썼을 거고, 한겨레니까 저런 기사를 썼을 거라는 편견도 강하다. 


독자는 신문을 믿지 않고, 신문이 쌓아둔 신뢰 관계는 무너져내린다. 신문이 발딛고 서있는 경제 기반도 흔들린다. 뭐, 그렇다고. 그래도 대형은 안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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