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님 글쓰기워크샵
집에서 명일역 3번 출구까지 마을버스로 5분, 걸으면 12분이 걸린다. 집에서 나와 미디어관까지 가는 아침에는 버스를 타지만, 명일역에서 집으로 올 때는 백이면 백, 걷는다. 걷는 행위는 오롯이 내 일이다. 어깨를 부딪칠까 노심초사하는 뛰기와 다르다. 복작대는 지하철과 버스와 달리 걸을 때의 나는 나만 신경쓴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만큼 혼자 걷기를 사랑한다. 고작해야 12부밖에 되지 않는 지하철에서 집까지의 걷기지만 무엇보다 소중하다. 집에서는 아들로, 학교에선 누구의 제자와 누구의 선-후배로 불리는 수많은 이름이 없어지고 무명이 된다. 아무 것도 없이 두 발로 걷는 일만 남은 무명에게 세상은 참 걱정없는 곳이다. 신문에 나오는 실업률과 메일로 받는 자기소개서 합격 여부와 엄마의 주름과 아빠의 흰머리가 보이지 않는 진공에서의 걷기란 참으로 혼자 지랄하고 자빠지는 우주무중력유영이다.
운동 때문에 적당히 요산이 찬 근육을 이끌고 오른발과 왼발을 내딛다보면 에어가 찢어진 운동화와 적당히 튀어나온 옆구리살과 벨트를 하지 않아 흘러내릴락말락하는 청바지가 느껴진다. 몇 개 되지 않은 계단을 오르자 헐떡거리는 내 못브에 반성하고 바지를 허리 위로 끌어올리고 다시 걷는다. 걷기 위해 옷 매무새를 정리했다면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걷는다. 자기 전에 내일의 스케쥴러를 적는 습관때문에 내게 수면이란 내일의 이른 시작이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뭘 그리 많이 먹고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골똘히 생각하며 걷는다. 설과 추석 때 지내는 차례보다 더 경건하고 엄숙하게 오늘 하루를 보낸다. 강동구라는 참으로 복작이고 사회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걷기지만, 너무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친다.
걷다보면 어제의 나, 엊그제의 나, 2013년 10월 26일의 나를 만난다. 누군가와 통화하며 걷던 나, 무언가에 슬퍼하던 나, 누가 있어주기를 바랬다가 금세 마음을 접은 나까지. 오늘 낮을 보내고 오늘 밤을 걷는 게 확실한데, 참 다양한 나를 만난다. 명일역 버거킹 앞 사거리를 건널 때마다 리어카에 폐지를 줍는 노인을 본다. 저렇게 늙고 싶지 않다라는 두려움과 지켜주지 않은 세상에 대한 분노와 생각만 하고 소내밀지 않는 나에 대한 염증이 느껴진다. 생각하고 느끼지만 그저 걸으며 지나친다. 걷기는 개인적인 걸 넘어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다. 이런 모습마저 오늘 하루에 묻기 위해 그렇게 혼자 걷고 싶어하나보다. 오늘 하루도 명일역 길거리에 묻어줄 생각에 적잖이 오늘 밤과 내일 밤이 기대된다. 좋은 하루를 보내기보다 좋게 보내고 싶어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