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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an 03. 2018

언론 및 과학 잡상

오랜만에 두뇌 가동. 


언론 잡상.


그냥 여러 가지 든 생각이다. 시사인의 <분노한 남자들>부터 한겨레 그리고 최근의 한국일보 사태까지, 한 가지 흐름이 있다. 바로 분노한 독자의 언론에 대한 조직적 행동이다. 


PR에서 언론사는 '채널'이었다. 그런데, 이제 언론사가 위기와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쟁점을 관리해야 한다. 한국만의 이슈일까? 그런 듯하다. 


물론, 과거에도 이러한 행동이 있었다. 하지만, 보수일간지가 그 타깃이었던 것에 비해 요즘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주간지와 일간지를 가리지 않는다. 팬덤만의 문제는 아니다. 시사인 사태는 팬덤이 아니었다. 


주류 언론이 안철수를 편들고 있다, 진보 언론은 페미니즘을 빨고 있다 등의 중심엔 "언론이 내 편이 아니다"라는 의식이 있다. 희한하다. 저널리즘과 뉴미디어에 관심있는 젊은이들이 항상 "우리 가치관을 대변하는 뉴미디어가 없다"라는데, 저들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 점에서 한국 언론은 결국 편싸움이다. 낱줄과 씨줄이 아니라 가로치기 세로치기 대각선치기다. 이 때문에 언론에 대한 묘한 음모론이 생긴다. 그 음모론이 언론에 대한 정밀한 비판으로 흘러지면 좋겠지만 기성 언론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변한다. 이 흐름은 한국의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에 대한 젊은이의 불신과 절망과 접점이 있지 않을까. 


제도권에 대한 불신은 '유사XX'에 대한 맹신으로 이어진다. 우리에겐 필터 버블보다 기존 제도권 언론에 대한 음모론과 불신으로 인해 유사 언론과 저질 정보 범람이 문제다. 


소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트럼프 이후 뉴욕타임즈와 WP가 일시적으로 버프받은 것에 비해 한국 언론은 오히려 위기다. 청와대는 직접 소통하고 기업은 움추린다. 독자는 불신한다. 언론이 갈 곳은 어디인가. 천천히 죽는다. 아니, 차라리 죽으면 모르겠지만 점점 사회의 뒷골방으로 쫓겨나는 느낌이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없다. 


-


과학 잡상.


보건경제학을 들었을 때, 한국의 의료 재원은 공공이며 시설은 시장에 맡겨져있다고 배웠다. 동시에 의료 수준이 매우 고퀄이라 배웠다.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시설과 재원이 모두 훌륭한 데에 비해 의료 정보는 조악하다. 


종편과 인터넷에선 A만 하면 암이 낫는단다. 현대 의학의 정수가 담긴 약보다 무슨 나무 수액과 나뭇가지 삶은 물이 낫다는데 믿을 수가 없다. 무안단물이 지나가니 수소수가 온다. 게르마늄 팔찌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듯한 카카오 메이커스에 올라온다. 척추 교정과 골반 교정에 대한 이야기도 분분하다. 정체불명의 다이어트 약이 소셜에 쏟아진다.


왜일까.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강과 생활정보에 대해 그 누구도 검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사 과학 혹은 사이비 과학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가짜들이 판친다. 환단고기보다 큰 문제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지점은 고학력 초고수일지라도 특정 나이대를 지나면 말도 안되는 유사과학에 빠진다는 점이다. 약보다 음료를 찾는다. 의사보다 무당을 찾는다. 완치가 불가한 질병의 완치를 말한다. 


두 가지 이야기를 억지로 끼워맞춰보자. 결국, 의료 - 건강 정보에 대한 독자의 과학적 검증 태도가 문제다. 그게 사실인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끽해야 몇 만 원밖에 쓰지 않는 2030이라면 그나마 낫다. 5060 때도 저런 태도를 버리지 못하면 결국 호구되는 거다. 


100세 시대라는 말이 와닿는다. 늙으면 뭐하지 라는 고민은 더이상 늙은이만의 고민이 아니다. 이에 발맞춰 정부는 노인 노동과 연금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노인들은 건강 정보에 대한 최소한의 비판적 해석 능력도 없다. 아직도 정체 불명의 환약이 카페에서 거래되며 나뭇잎 달인 물로 암을 치료한다는 이야기가 종편에 횡행한다. 


젊을 때부터 건강과 생활 그리고 과학 정보에 대한 비판적 해석 능력을 길러야 한다. 늙어서 호갱되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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