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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an 01. 2018

나를, 넘다. 넘었냐? 넘었다. 2017년은 넘었다.

나를 넘다 / 마티유 리카르, 볼프 싱어 대담 / 임영신 옮김 / 쌤앤파커스 / 2017년 12월 26일 ~ 12월 30일 완독 (5일 풀은 아니고 띄엄띄엄 읽음)


어떤 채널 구독하세요?


새로 사람을 만나면 항상 묻는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사고, 무엇을 읽는지 말이다. 그 사람의 취향이야말로 그 사람을 나타내는 최고의 지표다. 어떤 유튜브 채널을 구독하고, 누구를 팔로우하고, 주말에 어디에 가는지를 코치코치 캐묻는다. 숟가락 살인마도 아니고 오지게 묻는다. 직업도 중요하지만 시간이 날 때 무엇을 보는지가 더 중요하다. 본인의 얼마 없는 여가를 쪼갤 정도로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궁금증이 생겼다. "디지털 콘텐츠 취향이 그 사람을 나타내는 지표라면, 그 사람은 무엇일까?” 어려운 말로 하면 실존에 대한 고민이고 쉽게 말하면 대체 ‘나’는 누구인가라는 촌스러운 질문이다. “‘나’다운 게 뭔데?”라고 소리치며 지인에게 징징대는 드라마 주인공이 생각나는 건 나만 그런가? 여하튼, ‘나’를 구성하는 것이 무엇이며 ‘나’는 어떤 존재이며 ‘나’는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역사와 함께 했다. 


누군가 죽으면 우린 “그분이 돌아가셨어”라고 말한다. 이 말부터 의문이다. 대체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돌아간다라면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론가 간다는 뜻인데, 대체 어딘가. 또 하나 묻자면, 여기 말고 대체 어디로? 난 이 세계가 좋은걸? 


이런 고민이 들면 감정이 울렁거린다. 죽기 싫고, 무섭다. 손에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다. 노트북을 칠 수 없고 책을 펼 수 없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 다시 고요해지려 노력한다. 고요해야만 많은 것을 침착하게 보고 평온하게 행동할 수 있다. 이렇게 침착해지려는 노력이 명상이 아닐까 내심 생각했다. 



최고수의 합이라 독보적이다


책은 꽤 두껍다.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뇌와 명상의 관계, 무의식의 본질, 감정을 추스리는 법, 좀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과정 등 거대한 이야기부터 주취감경과 관련된 범죄자에 대한 정상참작이란 구체적이고 자세한 이야기까지 다루는 거대한 책이다. 알고보니 이 책은 무려 8년 간의 대화를 묶었다. 아니 미친.... 월드컵과 올림픽이 2번씩 돌아가는 그 긴 시간을 묶은 책이라니! 대체 녹취자는 얼마나 고생했을까!!!


책은 더럽게 써야 제맛. 


책은 독보적이다. 승려가 된 유명 세포유전학 박사와 현존 최고 권위의 신경 생물학자의 대담집이다.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작가다. 생명과 인간 존재 그리고 온갖 과학 기술의 정수가 담긴 세포 유전학 박사를 따고 불교에 입문한 승려. 여전히 종교와 명상에 대해 의심하며 모든 것을 신경학으로 해석하는 신경생물학자라니. 이거 마치 락과 힙합, 아이돌과 발라드 아닌가. 독보적이다. 다른 나와바리의 최고수가 운동장에 와서 합을 겨룬다. 입에 발린 말만 하는 인터뷰가 아니다. 신경생물학 관점으로 승려에게 캐묻는다. 의심이 되는 부분은 다시 묻는다. 승려는 방어하고, 다시 한 발짝 나아간다. 끊임없는 합의 연속이다. 


소재도 독보적이다.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 대해 고민한다. 가끔씩 자기 전에 “나는 어떻게 잠이 들까?”고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궁금하거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고, 인지하고, 느끼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고민하지만 너무 어려워서 잠시 꺼둔다. 이 책은 그 고민 묶음집이다. 정답을 주지 않지만 정답을 찾는 과정을 공유한다. 


너무 거대한 소재 아니냐고? 심플하다. 책에서 승려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지, 어떻게 해야 감정의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신경생물학자는 승려의 답변에 신경생물학적 해석을 덧붙인다. 다시 한 번 묻는다. 내가 왜 애인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왜 나는 욱할까, 왜 나는 항상 이런 감정에 빠져있는 걸까, 어떻게 해야 유재석처럼 평온해질까, 어떻게 해야 순수노력빌런이 될까 등등 수많은 고민에 빠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하지만, 불친절하다. 최고수의 합으로만 이루어진 책이라 나와 같은 초심자는 정말 읽기 두려워진다. 두께도 두껍다. 하지만 우리에겐 발췌독이라는 무기가 있다. 읽고 싶은 부분만 읽고, 덮고, 다시 읽고 덮는다. 그러면 된다. 우리 삶과 관련된 명상부분과 우리 사회와 관련된 주취감경 부분 등이 있다. 재밌는 것부터 읽고 나머지는 하나씩 읽자. 어느 정도 이해력이 뒷받침된 사람이라면 훨씬 재밌게 읽을테다. 



You make me want to be a better man


책의 주 저자인 승려는 우리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선 감정의 진폭을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화났을 때 화내지 말고, 기뻤을 때 오버하지 말자라는 뜻이지. 우리는 한번쯤 너무 화가 나서 가족광 애인 그리고 친구에게 몹쓸 말을 했고, 너무 슬퍼서 쓸데없이 자학했다. 지드래곤처럼 기타를 부수고 싶고, 백아연처럼 ex에게 저주를 걸고 싶다. 페이스북과 인스타에 주워 담을 수 없는 감성 글을 남긴다. 이 모든 게 감정에 휘말려 생긴 일이다. 이라믄 안돼~


회사에서도 관심있을 부분이다. 마인드풀니스라고 해서 명상을 통한 생산성 증대 기법 기사를 읽었다. 이 역시 감정을 추스리고 목적을 뚜렷하게 해서 최대한의 효율성을 내기 위했다. 결국 모든 것은 덜어내는 과정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해야 쓸모없이 일시적 감정에 휘말리는 일을 덜어내고 잡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말한다. 


모든 감정이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일시적 감정에 매몰되어 뒤처리하기 힘든 일을 하면 나쁘다. 명상은 덜어냄과 멈춤이다. 불필요한 부분을 덜어내고, 좋은 부분을 취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한 브레이크를 만든다. 이 책은 그 브레이크에 대한 기초 서적이다. 


좀 더 침착해지고, 모든 상황에 초연해지고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나쁜 기분을 떨쳐보내야 한다. 그 방법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를 멀찌감치 떨어져 지켜보는 것이다.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 나를 마치 유체이탈하듯이 제3자 관점에서 보면 된다. 예를 들어, 화날 때 그 감정에 모든 걸 맡겨서 당장 페이스북을 키지 말고 1) 나는 왜 화가 났는지 2) 화가 난 나는 평소와 어떻게 다른지 3) 나는 어떻게 화를 내는지 4) 이 감정이 화가 맞는지 등등을 하나씩 보자. 그러면 나는 감정을 느끼는 과정에 대해 다시 한 번 공부하게 된다. 모르는 게 죄다. 알면 그러지 않는다. 이 화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다시 이런 화를 맞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 번 초탈한다. 


해-탈이라는 게 별 게 아니다. 내가 느끼는 사랑, 분노, 슬픔, 서러움, 억울함 등 여러 감정에 대해 생각하자. 나에 대해 다시 한 번 알게 되며 감정 과정을 알게 되어 기쁜 상태를 유지하고 나쁜 상태를 버릴 수 있다. 작게 보면 무엇을 먹을 때 나는 기쁜지, 크게 보면 어떤 조건이 나를 기쁘게 하는지 생각하면 된다. 어떤 감정이 유지기간이 길고, 어떨 때 확 사그라드는지 고민하자. 감정은 추스려지고 행동은 멈춘다. 화가, 기쁨이, 슬픔이, 분노가 우리를 잡아 먹지 않는다. 감정 상태에 대해 인지하기가 책의 메시지다. 




‘나’를 넘어야 한다. 감정에 매몰되어 당장의 내일을 고민하지 않는 ‘나’를 넘어야 한다. 후폭풍을 고민하지 않는 내가 가장 멍청하다. ㅠㅠ. 나도 그랬다. 감정에 휘말려 주워담을 수 없는 말을 던지고, 더 고민하지 않고 행동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말하지 못했고, 나를 분노케 하는 사람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좋아하는 이와 시간을 보내도 모자랄 판인데 말이지. 처음 그(그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고, 그 사람과 헤어져 정신없이 슬퍼 ‘흑역사’라 불리는 수많은 행동을 하고 말이다. 좋게 보면 젊은 날의 추억이지만, 나쁘게 보면 우린 수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흔들었다. 이걸 극복하기 위해선 우리의 일시적 감정이 우리를 잡아먹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 처음은 느끼는 과정에 대한 인지다




추천 : 새해엔 욱하지 않으려는 사람, 좀 더 나은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 뇌과학이 궁금한 사람, 감정을 느끼는 과정, 명상 자체가 궁금한 사람, 새해 시작과 함께 약간 진지해지고 싶은 사람, 자아에 대해 고민이 들게 된 사람, 여유 있고 깊은 독서를 하고 싶은 사람


비추천 : 구체적인 자기 계발 노하우를 바라는 사람, 당장 시간이 급해 빠른 독서가 필요한 사람


기타 흥미로운 점 :이 책을 읽으면서 풀무원 회장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 사람도 사람의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경영과 사회 모두 사람이 먼저고 전부다. 사람이 기본이다. 존재와 뇌 그리고 명상에 대한 공부는 당연지사다. 




눈 여겨볼만한 순간 & 기억할만한 순간


"감정과 나를 동일시 하지 말자"

"한발 물러나 실제로는 그 감정에 지속성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자"

"자신의 목표와 욕구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나를 벗어나 남을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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