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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an 10. 2018

사람의 온도, 사랑의 온도

모종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위해 잡지를 샀다. 절대 사지 않았을 법한 하퍼스 바자르. 모델은 제니다. 잡지의 뒷부분에 <사랑의 온도> 주인공 양세종 인터뷰가 있었다. 불현듯 사랑 대신 사람을 넣으면 어떨까 했다.


절실히 사람의 온도를 느낀다. 불현듯 외롭고 우울해져 몇 명에게 카톡을 보냈다. 누군가가 머무를 만한 사람인가, 누군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인가 고민했다. 지구와 달의 관계처럼 나와 누군가는 가까워질 수 없는 위성이라 느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랑받을 수 있을까라는 차가운 감각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건 사람이다. 가끔 정말로, 절망적으로 깊게 외로워질 때마다 느끼는 검지손가락의 저림은 이 활자 곳곳에 새겨져있다. 


사람은 홀로 존재한다. 좋으나싫으나 너와 나는 남이다. 합쳐질 수 없다. 존재의 비극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비극의 활로는 어처구니 없이 또다른 존재에 기댐에 있다. 사람의 온도. 한 명으로 너무나 외로울 수밖에 없는 인간은 또다른 사람을 찾는다. 서로의 온도로 서로의 외로움과 홀로 있음을 지워주는 존재, 그게 바로 사람이다. 


다시 한 번 사람을 고민한다. I good, you & I better, we best를 되새긴다.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내가 자신에게 위로가 됐다고 말해주던 사람들.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본질적인 외로움을 담아 비명을 질렀지만, 그것마저 고맙다고 한 친구까지. 


떠나보내고 기다린다. 새삼 나는 버스 정류장이구나 싶었다. 내가 보낸 사람, 나를 지나친 사람, 내게 올 사람, 내게 온 사람까지. 그들에게 눈을 피할 수 있는 정류장이었을까. 기나긴 하루를 보내고 한숨과 함께 발을 내딛을 때 그들을 안아주는 정류장말이다. 


외롭고 고통스럽고 존재의 고독 때문에 발버둥칠 때 무너진다. 사람 때문에 무너진다. 사람 때문에 버틴다. 아이러니하다. 내게 들러준 사람이 내게 머물러주길 간절히 원하고 바라고 원망한다. 사람의 매커니즘이란, 아아. 


사랑하는 감각과 사랑받는 감각 그리고 사람을 향하는 감각까지 모두 중요하다. 사람 감각. 누군가 내 삶에 들어왔듯이 나 역시 누군가의 삶에 들어가있다. 잊지 말자. 내가 사랑받을, 사람받을 자격이 있는가는 중요치 않다. 그런 고민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날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집중하기. 그들을 향하기. 


모든 본질적인 외로움의 끝에 '나'는 없다. '너'와 '우리'만 있을뿐. 나로부터 출발한 고민은 항상 타인을 향한다. 타인을 향한 무수히 많은 감정. 그 감정엔 사랑, 동경, 분노, 질투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한 발짝 뒤로 떨어져 내 감정을 보고 그 사람을 바라보기. 


글을 어떻게 마무리 해야 할까. 다시 한 번 울음을 토해낸다. 진짜 눈물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의 24시간 중 16시간은 무표정이고, 8시간은 사람을 맞이하는 표정이다. 이 가슴 속에 찰랑이는 외로움과 분노 그리고 슬픔 그리고 적절한 자살충동과 우울은 목구멍까지 올라오고 다시 내려간다. 명치에 걸린 것은 외로움과 슬픔이 아니라 이것 하나 토해낼 수 없는 내 솔직하지 못함과 자기 혐오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것. 내가 해온 모든 것을 끌어안고, 과거를 인정하는 것. 그게 가장 어렵다. 난 항상 비겁하게 도망쳐왔다. 중요할 때 친구를 믿지 못했고, 사랑할 땐 항상 두려웠다. 친구와 함께 비를 맞지 않았고, 연인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어느덧 내 귓가와 입술에 머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봄날은 간다를 부른 김윤아와 존재의 고독을 담은 이소라 그리고 자우림만이 남았다. 


"내가 죽어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아"는 우울증의 전조 증상이라는 말이 있다. 잘은 모르겠다. 아주 가끔 이 넓은 세상과 복잡한 관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작은지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 내 존재를 증명하는 일은 타인의 세계에서 내 삶을 확인받는 일이다. 오롯이 서라고 하지만 그 누구도 오롯이 존재를 증명하지 못한다. 결국 내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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