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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ul 17. 2018

미디어의 적은?

대화, 외로움, 고양이, 강아지

명일역 3번 출구에서 불현듯 떠올랐다. 미디어의 적은 대화다. TV의 프레너미는 외로움이다.  


오랫동안 궁금했다. 사람들은 왜 콘텐츠를 볼까? 왜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 통칭) 를 볼까? 왜 우리는 페이스북을 하고, 인스타그램을 보고, 글을 읽을까?  


사실 시작점은 단순했다. 내 오랜 궁금증은 "왜 사람들은 IPTV에서 VOD를 볼까?”였다. 첫 번째는 IPTV였고, 두 번째는 VOD였다. TV에서 지상파를 볼 수도 있는데 왜 기꺼이 돈을 내고 VOD를 사보는 걸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결국 왜 미디어를 볼까에 도착했다. 내 대답은 ‘대화’였다. 콘텐츠로 교감하고 소통한다는 위인전식 문장은 갖다치우겠다. 둘이 있을 때가 아니라, 혼자 있을 때 사람들은 외롭고, 슬프고, 심심하고, 할 게 없어서 미디어를 본다. 구글과 네이버에 “외로울 때 볼 영화”로 치면 결과가 수두룩 빽빽하게 나온다. 


사람들은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티비를 본다. 심심해서 무한도전을 보고, 집에 혼자 있는 꼴이 서글퍼 왁자지껄한 런닝맨을 본다. 혼자 밥 먹을 때 티비를 켜두는 이유도 매한가지다. 나와 누군가 대화해주길 바란다. 우리는 혼자 있기 싫어한다. 혼자 있는 게 서글퍼 노래를 켜두고 불을 켜두지 않는가.  


누군가와 말하고 싶거나 누군가의 대화를 엿듣고 싶어 미디어를 본다. 전자는 개인방송이고 후자는 팟캐스트다. 그네들이 낄낄거리는 걸 훔쳐 듣는 즐거움. 대화를 엿듣고 그 대화에 참여한다는 기분이 오디오 콘텐츠의 핵심이다.  


대화하고 싶어 미디어를 소비하는데, 왜 미디어의 적을 대화라고 했을까? 왜 외로움을 프레너미로 했을까? 바로 그 대화의 주체가 쉽게 대체되기 때문이다. 고양이, 강아지, 가족, 아이, 애인, 친구 그리고 이제는 스마트 스피커까지 말이다. 특히나 높은 수준의 집중도와 관여도를 요하는 TV는 더욱 쉽게 대체된다. 이제 주어를 IPTV로 바꿔보자. 


고양이가 있으면 고양이랑 논다. 강아지랑 있으면 강아지랑 논다. 애가 있으면 TV 볼 엄두는 내지도 못한다. 시간이 흘러 방 안에 스마트 스피커가 들어온다면, 스마트 스피커가 들려줄 라디오와 음원은 서서히 TV를 좀먹을 테다. 사람들은 고양이, 강아지, 애인, 스피커와 대화하기 때문에. 외로워서 TV를 보는데 외로워서 TV의 대체재를 찾는다.  


말벗은 TV의 적이다. 이전의 말벗이 TV였다면, 이제 TV는 수많은 말벗의 후보 중 하나일뿐이다. 어떻게 해야 가장 독보적인 말벗이 될까? 


사람은 언제 말하고 언제 말벗을 찾을까? 그 원동력은 마음이다. 기분이 꿀꿀해서 혹은 기분이 너무 좋아서 혹은 너무 외롭고 심심해서. 결국 마음 때문이다. 외로워서 고양이를 키우고 화분을 기르고 취미를 만들고 그들과 대화한다. 키워드는 기분, 마음, 심리 등등. 이제 TV는 그 마음을, 심리를 훔쳐야 한다. 


안타깝게도 TV는 일방향 수신이었다. 실시간으로 대화 가능한 아프리카, 트위치, 하다못해 인터랙션이 빠른 넷플릭스에 비해 IPTV는 너무나 느렸다. 하지만, 인공지능 셋탑박스가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집 안에 들어왔을 때 셋톱박스가 말벗이 된다면 TV는 아직 경쟁력이 있다.  


셋톱박스, 그러니까 IPTV의 수신기가 말벗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들어주는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 영화 <그녀>의 사만다가 IPTV의 미래다. 내 결론은 그러하다. 결국 셋톱박스는 사용자와 대화하고 그들의 대화에서 감정을 추출해 그 사람이 좋아할 만한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 대화를 뺏기 위해 마음을 뺏어야 하고 마음을 뺏기 위해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 상담. 심리. 고해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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