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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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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01. 2018

동네 친구가 있으면 좋겠어

강동구에 오래 살았다고 말하면 가끔 친구들은 "동네 친구 있어서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별로 없다. 연락이 닿는 중학교 친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예전보다 멀리 살기도 해서 쉬이 만나기 어렵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른 배경으로 살아왔으니 만나기도 쉽지 않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에 동네 친구는 더더욱 없었다. 강동과 송파로 범위를 넓혀야 하는데, 이제보니 각자 사는 게 바빠서인지 쉬이 만나지 못한다. 


교사는 떠나 보내는 사람이다. 매년 학생들을 떠나 보내고, 매년 졸업시키는 그런 직업. 동네에 오래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허전함을 기억하는 사람. 내 기억은 그대로인데, 내 기억이라는 도화지는 그대로인데 그 안에 그려졌던 친구들은 어디론가 사라진 게 보이는 그런. 


3단지 운동장에서 월드컵을 응원하던 2002년을 기억하고, 동방신기 허그를 흥얼대며 등교하던 중학교, 아침 8시에 8단지 뒷문에서 친구를 기다려 같이 등교하던 기억. 시험이 끝나면 동네 피씨방에 같이 가고, 기분 내려고 국수나무 가던 기억. 다 기억하지만 그 기억 속 친구들과 잘 연락이 닿지 앟는 그런 지금. 난 지금을 살고 있는데, 가끔 '그날'에 젖어들 때가 있다. 


한 동네에 오래 산다는 것은 그렇다. 내겐 똑같은 지금이고 매일인데, 그 매일이 매일 '그날'과 연결된다. 걔는 이 가게에서 알바를 했고, 저 가게 사장님은 어땠고, 난 저기서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했고. 소소한 일화를 잘 기억하는 내겐 더욱 그렇다.  


동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명일역 3번 출구에 내려서 도로시에서 보자고 하면 나올 수 있는, 월급 받은 날에 도로시가 질리면 나뚜루 가서 좀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그런 관계. 그 와중에 집은 적당히 거리가 있어서 카페에 나와서 각자 정리하며 각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사이. 메이트로 말하자면, 집을 자주 비우지만 좋은 말동무가 되는 하우스메이트. 룸메이트 말고.


서로를 적당히 소비한다. 적당히 기대면서, 적당히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너무 자주 만나면 뭐하니까 1주일에 1번 아니면 매일 보더라도 2시간 정도 카페에서 각자 일을 하는 그런 사이. 일상을 새로고쳐주는 그런 친구. 각자 지쳤지만, 지친 삶마저 타인에게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 활기가 될 수 있는. 그런. 각자 아이스크림을 시키고 나는 음악을 듣고 걔는 책을 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침묵마저 자연스럽고 진공도 익숙한. 그런. 


내게 말을 걸어주는, 내가 말 걸 수 있는 인형을 바라는 건가? 이기적이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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