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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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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ul 30. 2018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미션 임파서블 보다가 운 사람의 글입니다. 


여기는 나무가 많아서 좋을 거 같아. 

2002년 월드컵 직전. 난 상일동으로 이사왔다. 아빠의 사업 실패로 (대체 왜 우리 세대 아버지들은 사업을 하고 실패하는지 알 수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산 집을 팔고 주공 아파트로 왔다. ‘몰락 귀족인가’고 아무도 모르게 읊조렸다. 낙향하는 마음으로 온 상일동역은 녹음이 푸르렀다. 문자 그대로 나무밖에 없었다. 거주 지역으로 구성된 동네라 있는 거라곤 초등학교와 초등학생을 수용할 아파트 그게 전부였다.  


저게 다 돈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초록색 나뭇잎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내게 가족사진은 곧 부의 증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그 친구의 얼굴이 기억 속에서 사라졌듯, 나무들도 사라졌다. 재개발. 타워팰리스에 비하면 설국열차 같은, 그 성냥갑 같은 주공 아파트를 집 안에 복도가 생길 정도로 우람찬 아파트로 바꾸겠단다. 가끔 술에 취해 명일역을 놓치고 상일동역에 내릴 때마다 그 이질감을 느낀다. 마치 구토한 뒤에 입에 남는 이물감처럼. 


하루는 짧고, 일주일도 짧은데, 한 달은 길다. 한 달이 참 길다 했는데, 3달도 금방이다. 금방이다. 나무 위 벌집에 축구공을 던진 목숨 건 장난을 치던 상일동 주공 아파트는 철판으로 가려졌다. 그때 생각없이 뛰놀던, 아니 땀을 뻘뻘 흘리던 내 어린 모습도 와이셔츠와 그럴싸한 로퍼로 가려졌듯이.  


앰비션의 팬이었다. 그 앰비션을 무너뜨린 페이커가 너무나 극악무도해보였다.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한 그의 패기가 좋았다. 그 페이커가 지난 롤드컵 결승전에서 눈물을 흘렸다. 팬들은 그가 다시 날아오르길 기대했다. 하지만 금세 팬들은 그를 패배의 원흉이라 부르고, 그는 후배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온게임넷 다큐에서 그는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극악무도하던, 너무나 강해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페이커도 무너지고 눈물을 흘리는구나. 그렇게 세상이 변하는구나. 시간이 흘러가는구나.  


많이 변했다. 


그새 많이 변했다. ‘갓’이라 불리던 이영호는 스타크래프트 2에서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그라운드를 뛰던 박지성은 해설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교복을 입고, 벗었고, 잠바를 입고, 벗었다. 학사모는 2번 오며갔고, 수많은 사람이 내 옆을 스쳐지났다. 지금 내게 남아있는 건 흰 와이셔츠와 반쯤 구겨진 로퍼와 까인 발뒤꿈치를 가려주는 양말.  


변했구나. 많이 변했어. 오랜만에 인스타에 내 얼굴이 나온 사진을 올렸다. 부끄러워 올리지 않았는데, 사실 별로 보고 싶지 않던 얼굴을 대충 웃긴 제목으로 올렸다. 친구는 살이 많이 빠졌다고 했다. 그랬나? 며칠 전 친구는 내가 많이 변했다고 했다. 그동안 보지 못한 모습이라고. 자기가 알던 나와 달라서 어색하다 그랬다.  


사실 많이 보냈다. 교환학생 때 만난 친구들, 그 시절의 나. 그리고 그 시절에 내가 느낀 감정과 꾸던 꿈들. 이제는 사진에서만 간혹 느낄 수 있는 그 마니토바의 햇빛. 한 여름 한영외고 운동장에서 구경하던 다른 과의 축구하는 모습과 한영동산과 농구장에서 떠들던 추억. 어디든 내가 알고 있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어 난 정처없이 걸을 수밖에 없다. 


세상 모든 사라지는 것들. 점심을 먹고 털썩 의자에 앉고 이를 닦으러 갔다. 거울 속 모습이 너무나 어색했다. 가끔 친구들이 알트와 청춘씨의 영상을 보여주면 부끄럽다고 하는데, 사실 부끄럽진 않다. 다만, 그때의 그러니까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조금은 자신만만하고 패기롭던 그랬던, 당당하게 꿈꾸고 있다고 말하던, 복스는 내 것이고 난 에즈라 클라인이라고 말하던 그 모습이 사라졌을까 무섭다.  


내가 알던 모습이 사라지는구나. 그렇게 다들 멀어지는구나. 변했다는 건, 내가 알던 모습이 사라진다는 것, 내가 알던 그 사람의 모습이 조금씩 바뀌고,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것. 그렇게 멀어지는 것.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갑자기 모골이 송연했고 숨이 가빠졌다. 여느 때처럼 난 왼쪽 가슴팍을 치며 현모야, 정신 차리자라고 했다.  


마냥 우울하진 않다. 리쌍은 모든 게 변해간다고 했다. 어차피 모든 게 변할 거면, 변한다는 사실마저 기억하자고 했다. 다만 내가 사랑한 모든 것들이 변해간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들을 내가 가질 수 없고 어쩌면 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슬플뿐이다. 너무나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졌다는 사실은 그 사람을 추억하게 하고, 그 추억은 다시 그 사실을 - 그러니까 멀어져서 쉬이 연락할 수 없다는, 생각하며 명치에 차가운 멍울이 생기는 그런 - 상기시킨다.  


하지만 무섭다. 난 무엇을 잊을까. 이 감정마저 잊을까. 잊혀지는 건, 곧 잊는 거고, 나 역시 무언가를 잊을텐데 그게 무섭다. 잊지 않으려고 더욱 매달린다. 


세상 모든 사라지는 것들, 나는 이전 모습을 기억하는데 이제 너무나 변한 나머지 내가 알던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세상 모든 변하는 것들. 사라지는 것들을 담을 수 없어서, 쉬이 다가갈 수 없어서 슬프다.  


당신 덕분에, 당신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너무나 행복했다고. 어제의 그 대사가 생각난다.  


-


이 글을 쓰고, 무한도전이 부른 <그래, 우리 함께>를 들었다. 하필, 푹에서 무한도전 2015 가요제를 틀어줘서 그냥 생각나서. 눈물이 났다. 


"너에게 나 하고 싶었던 말 고마워 미안해. 함께 있어서 할 수 있었어 웃을 수 있어"


"그래, 괜찮아 잘해온 거야 그 힘겨운 하루 버티며 살아낸 거야. 지지마 지켜왔던 꿈들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 웃는 날 꼭 올 거야."


"괜찮아 잘해온 거야 길 떠나 헤매는 오늘은 흔적이 될 거야. 시원한 바람 불어오면 우리 좋은 얘길 나누자 시간을 함께 걷자"


"그게 너여서 좋아. 그래, 우리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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