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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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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04. 2018

음식, 출발을 위한

그건 내게만 허락된 일.

음식. 음식. 음식. 내 인생과 뗄 수 없는 그 단어, 음식.


먹지 않으면 죽고, 잘못 먹으면 아프고, 맛없으면 화나고. 혓바닥을 거쳐 식도를 타고 내려와 내장을 한 바퀴 돌고 노폐물로 나오는 그 음식들. 부모, 자식, 연인 그 누구보다 내 평생 함께 하는 그 친구, 음식. 종을 가리지 않고 음식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중요하지만, 그 의미는 사뭇 다르다. 


내게 음식은 발판이었다.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가고, 점심 먹고 일하고, 저녁 먹고 집에 간다. 공부할 에너지를 위해 아침을 먹는다. 오후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점심을 먹는다. 바깥의 삶을 누리기 위해 저녁을 먹었다. 전진을 위한 후퇴도 아니었다. 그저 추진력을 얻기 위한 발판이었다. 


평소와 같은 토요일이었다. 아침 6시에 눈이 떠졌고, 옆에 놓여있던 노트북으로 무한도전을 보고 다시 잠에 들었다. 다시 눈을 뜨니 10시였다. 1시간을 더 뒤척이다 점심 때 잡은 친구와 약속을 위해 일어났다. 밥을 먹고 가겠다고 친구에게 연락하고, 짜파게티를 끓였다. 


짜파게티는 그 어떤 라면요리보다 어렵다. 너무 졸이면 이도저도 아닌 짜장볶음이 되고, 너무 물이 많으면 짜장물라면이 된다. 짜파게티를 처음 끓일 땐, 고추가루를 넣고 같이 볶아버려서 너무나 건조해졌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고 백종원 레시피대로 짜파게티를 끓이기 시작한 게 올해 여름이었다. 어릴 때 먹은 짜장면이 생각나서 달걀 후라이를 하나 구웠고, 짜장면 위에 올렸다. 


맛있었다. 주말 오전의 짜파게티를 좋아한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을 때의 그 안락함이란. 내 혀대로 적당히 조리하고, 내 원하는 대로 적당히 시간을 보내는 주말. 도시 속 작은 여행이었다. 아무런 사회적 제약 없이 내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행자의 삶처럼, 오늘 주말을 그렇게 보냈다. 


다 먹었다. 어차피 할 거면 후딱 하는 성격이라 설거지를 하려고 그릇을 들고 일어서는데, 엄마가 멈춰세웠다. 


"어차피 나랑 아빠랑 밥먹어야 하니까 싱크대에 넣고 내비둬." 


"그래? 알겠어"


-


그냥 불현듯 떠올랐다. 내게 음식은 발판인데, 엄마에게 음식은 빨간등이 아닐까. 모든 행동을 멈추게 하는. 난 짜파게티를 꿈꾸는데, 엄마는 설거지를 그리는 그런 거 아닐까.


버스를 타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내내 엄마에게 음식은 무엇일까 궁금했다. 


내게 음식은 먹고 출발하고 떠나는 발판인데 엄마에게 음식은 무엇일까.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장애물아닐까. 무엇을 차려주고, 내놓고, 정리해야하는 일련의 과정. 그 과정이 커리어우먼을 꿈꾸고, 시인을 꿈꾸고, 독한 승진을 꿈꾸던 비슷한듯 다른 우리네 엄마를 멈춘 게 아닐까. 당신의 휴식과 승진 모두 여기서 멈추고 일단 이 일부터 하라는 빨간 신호등. 


일 끝내고 왔을 때 소파에 편히 누워 원하는 중국드라마를 보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게 하는 그놈들. 밥먹고 바로 식탁을 떠나 방에 가고 싶지만, 식탁을 떠나 싱크대 앞에 서게 하는 그런 것들. 


음식에 대한 경험은 이렇게나 다르구나 싶었다. 내게 음식은 쉬이 먹고 떠날 수 있는 그런 즐거움이었는데, 엄마에겐 그러지 않을 수 있었구나. 가족과 함께 먹는 아침, 점심, 저녁이란 엄마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가부장제라는 거창한 단어보다, 설거지라는 너무나 흔한, 누구나의 집에서 발로 치일 정도로 흔한 그 단어가 우리 엄마의 빨간 신호등이었을테다. 


밥을 먹고 쉬이 떠나는 일. 아침을 먹고 오늘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는 일. 어쩌면 그건 모두 내게만 허락된 일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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