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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05. 2018

그녀가 떡볶이를 먹고 싶던 이유

좋아해서요


“현모야, 이거 때문에 움츠려들지 말고 더 운동해야돼. 더 돌아다니고. 알겠지?”


“이게, 사실 젊은 사람한테 터지긴 터지는데, 그리 발견하기 쉬운 병은 아니라서. 그래서 좀 우울할 수도 있어요. 근데 그러지 말고 더 돌아다니고 우울하면 말하고 그래야 돼. 약을 계속 먹으면 약먹는 상태 때문에, 그리고 이 약 때문에 좀 나른해져서 몸에 무리도 오고 퍼질 수도 있는데 그런 거 있으면 꼭 말하고. 알겠지?"




주치의 선생님이 말했고, 난 멍하니 들었다. 3분 진료라기엔 길었고, 20분 진료라기엔 짧은 그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들이다. 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먹는 약으로 염증이 내려가지 않아 개량된 주사약 (휴미라) 을 맞아야 할 때 선생님은 말했다. 한 번 맞으면 아마 평생 맞아야 할 거고, 그 평생 맞으면서 병원에 다니는 상태를 비관해서 우울할 수도 있는데 그럴 때면 꼭 말하라고.  


이제 하도 자주 말해서 입아픈데, 작년 이 맘 때에 (2학기) 진짜 많이 아팠다. 갑자기 몸이 터져버렸다. 진짜 하릴없이 요양한다는 마음으로 여유롭게 살았다. 적당히 희희덕대고, 많이 게을렀다. 낮잠 자다가 지각도 하고, 주말에 하루 종일 크라임씬 틀어놓고 잠만 잤다. 적당히 운동했다. 적당히 살았다.  


배때기에 주사를 놓기 위해선 주사 종이 상자를 까고, 플라스틱 상자를 까야 한다. 다 까고 나면 3~4cm의 주사 바늘이 보인다. 주사기에 쓰여져있는 매뉴얼에 따라 1번 뚜껑을 까고, 돌려서 2번 뚜껑을 깐다. 침대에 누워 내 배에 수직으로 주사바늘을 놓고 그대로 투입한다. 영화 브레이킹 배드처럼 쾌락이라도 맛보면 좋으련만, 휴미라는 그저 그렇다. 침대 위에 누워 알콜솜으로 배를 닦고 배에 주사를 꽂으면 왠지 힘이 빠졌다. 아 시발, 이 귀찮은 일을 2주에 한 번씩 왼쪽 오른쪽 배를 번갈아가면서 평생 하라고? 이 썩은 몸둥이 진짜. 욕지거리가 튀어나온다. 채용가산점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시발!  


적당히 무기력했으면 좋았으련만. 갑자기 우울이 찾아왔다. 같이 일하던 친구들은 날아오르는데, 나는 아무 것도 아닌 느낌. 무언가에 갇혀있고 똑같은 내용을 토하고, 다시 정리하고, 다시 토하는 느낌이었다. 디지몬 극장판 : 디아블로몬의 역습에서 오메가몬은 양팔다리가 잘린 상태로 무너지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애니메이션 다간에서 세븐체인저가 심장에 검은 번개를 맞고 터진 상태였고 마징가제트가 그레이트 마징가에게 구조당하기 직전의 상태 말이다. 쓰고 보니 나도 엥간히 덕후다.  


하필 대학원도 가장 평화로웠다. 작업량이 줄었고, 같이 다니던 친구는 졸업했고, 수업도 여유로웠다. 하나는 전공수업이었고, 나머지 2개는 글쓰기 수업이라 논문 읽을 부담이 덜했고, 서로 적당히 섞을 수 있어서 수월했다. 좋게 말하면 수월했는데 남는 시간에 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다. 술도 안 먹고, 사람을 자주 만나거나 클럽을 가지도 않았다. 게임? 적당히 봤다. 대체 나 뭐했냐..
 


아무 일도 없을 때 평화로움을 느꼈으면 좋으련만, 그러지 못했다. 일은 일대로 할 일이 없었고, 남들은 저 멀리 날아오르니 내게 찾아온 건 무기력과 우울. “난 이렇게 빛을 잃는 건가”라는 걱정과 “심심하다”라는 말이 머리에 머물렀다.  


이 우울은 올해 1월까지 이어졌다. 생각해보니 그때는 좀 심했다. 이대로 죽는 게 낫지 않나. 난 다 끝난 게 아닐까. 하얗게 불태운 거 같은데. 페이커도 저렇게 힘들어하는 걸. 앞으로 힘들 거면 뭐....  


다행히 학생이다보니 학교심리상담센터에 갔고, 결과는 괜찮았다. 올해 초에 시기 좋게 좋은 사람을 만나 따뜻하게 위로받았고, 여러모로 잘 풀렸다. 내가 그만큼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는 작가의 정신과 상담기록이다. 처음에 텀블벅으로 자가 출판했으나, 반향이 있어 출판사를 통해 무려 4쇄나 발행했다. 책의 3/4는 당시 상담 기록 녹취록이고, 나머지 1/4는 작가가 일기식으로 기록한 부분이다. 누군가의 대화를 평가한다는 일이 얼마나 무례하고 쓰잘 데 없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두 사람의 대화보다 작가 개인의 일기가 더 좋았다.  


그냥 찾아봤다. 오마르 책, 푸, 도라에몽, 그 강아지 책 등 별의 별 힐링 책이 나왔고 혹시나 이것도 해서 찾아봤는데 결이 많이 다르다. 힐링과 공감을 가장한 자기계발과 독설이 아니라 그냥 자기 일기였다.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 딱 그정도였다.  


왜 나를 좋아해, 이래도 나를 좋아해, 자존감, 어떻게 해야 나를 알까요, 제가 예쁘지 않아요 등 책 목차도 매력적이다. 우리가 살면서 한번쯤 할 고민거리를 목차로 짜놨다.  


작가가 느끼는 여러 문제는 지금 시대를 살아갈 사람이라면, 아니 어느 시대의 사람이든 한두 번은 느낄 만한 지점들이다. 내게 이 책을 읽는 과정은 저자와의 대화가 아니었다. 이 사람의 일기를 통해 나를 보고, 나와 얼마나 닮았는지, 나는 어떤지 확인하는 거울이었다.  


거울. 우리에겐 거울이 필요하다. 지금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만져볼 수 있는,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이고 어떻게 생겼고 얼마나 모났고 얼마나 동그란지 만져봐야 한다. 마음과 나를 방치할 수밖에 없던, 그럴수록 너무나 약해빠진 사람이라는 손가락질이 뉴스에 보이는 우울, 강박, 심리 사회면 기사를 만들지 않았을까.  



페이스북과 브런치 그리고 인스타에 무언가를 남길 때마다 너무 솔직하게, 가감없이 글을 쓰고 대화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단체 생활에 맞지 않을 거란 걱정도 들었고, 너무 튄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쩌다보니 내 상사 - 내지 선배 - 로 있던 분들은 대게 나를 ‘모 아니면 도’로 말했다.  


우울감에 대해 남기는 글은 그 어느 글보다 솔직하고, 그 어디보다 깊다. 깊고 솔직하지만 어두운 글을 쓴다는 일 자체가 짐이 될 수 있지만, 그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아야만 할까. 개성을 중시하고, 마음을 (예의바르고) 솔직하게 표현하라는 말이 ‘집단이 허용하는 수준에서만’ 으로 들리는 건 왜일까. 실명을 걸고, 얼굴을 걸고, 자신의 우울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던 이 사람의 용기에 반응하는 사람들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목소리가 더 필요하고, 그 목소리는 악다구니가 아니라 잔잔한 대화다. 더 많은 기록과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나는 무엇이 다른지 찾는 과정.


나를 찾으라는 책이 많다. 개인화와 관련된 키워드가 떠오른다. 독립책방, 퇴사, 나, 자기계발, 취미, 취향 등. 집단으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무언가를 키우라는 이야기가 더욱 많아졌다. 예전엔 구호였으나, 주 52시간과 '세대 갈등' 등 여러 키워드가 번잡하게 떠오르니 구호가 아니라 구체적인 현상으로 잡혀들어간다.


홈트레이닝, 필라테스, 요가, 마인드풀니스, 명상, 대화형 콘텐츠 (팟캐스트, 1인 브이로그) 의 시대. 대화, 개인화, '나'의 시대. 외로움과 공감의 시대.


집단으로부터 벗어나 내게 집중하는 시대. 조직은 개인이 벗어나지 않기 위해 더 좋은 문화를 꿈꾸고, 개인은 더더욱 유연해진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지, 흥미로운 개인이 되고 내 삶을 꾸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찾는다. 우울, 힐링 역시 결국 집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개인과 개인의 문제에 대한 공감의 일환이다.


개인화. 유튜브를 비롯해 수많은 서비스가 개인화를 지향하고, 네이버는 개인화 플레이리스트를 메인으로 내세웠다. MASS 추천이 대세였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변화가 진행되는 순간 난 변화를 진행할까, 변화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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