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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23. 2018

정준하가 사라졌다


오랜 무도빠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푹으로 무한도전 채널을 켜뒀다. 13년 동안 변하지 않는 유재석의 방부제 미모와 점점 위로 올라가는 박명수의 이마선과 점점 펴지는 정형돈의 표정과 무한도전에 녹아들어가는 광희의 모습을 사랑했다. 


TV란 놈이 참 무섭다. TV로만 봤을 텐데 너무나 친근해졌다. 하하를 보면 서슴없이 형! 이라고 소리칠 거 같고, 노홍철을 보면 대체 왜 음주운전했냐고 타박할 거 같고, 정형돈을 보면 제발 다시 복귀해달라고 간청할 것 같았다. 


13년 동안 내 주말 저녁을 채워주고, 심지어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하는 무한도전이 종영되니 괜히 허했다. 더이상 커뮤니티에 “오늘 무도 평점 몇?”이라는 글도 안 올라오고, 페이스북에서 무한도전을 보고 깔깔대는 의성어 가득한 글도 보이지 않는다. 


정준하도 사라졌다. 박명수는 해피투게더에서, 하하는 런닝맨에서, 정형돈과 노홍철은 각기 다른 프로그램에서 보이는데 정준하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진짜 사라졌다. 10초 만에 우동을 먹고, 박명수와 ‘하와 수’ 콩트를 찰지게 보이고 바보 연기를 시원하게 한 그가 사라졌다. 런닝맨에서 “준하형, 그냥 꼬치만 굽고 있다구요”라는 하하의 외침을 보고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려보니 꼬치 장사를 하고 있다. 


참, 신기하다. 노브레인 서바이버에서 바보 캐릭터로 유명해지고, 무한도전와 하이킥에서 자신만의 모자란 캐릭터를 구축한 그가 어엿한 사장님이라니. 역시 TV와 현실은 다르다. TV 속 바보형은 현실 속 그럴듯한 사장님이었다. 


그래. 정준하의 캐릭터는 동네 바보형이었다. 동네 어디나에 있다는 바보형 말이다. 생각해보면 참 위험한 말이다. 저쪽에서 말하는 동네 바보형은 발달장애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덩치에 비해 발달이 뒤떨어지고 그래서 남들한테 바보로 불리는 그런 아이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그러니까 내가 아프다는 핑계로 태권도학원을 가지 않고 둔촌동 현대 3차 아파트 402호에 머무를 때 문득 초인종이 울렸다.


초인종은 잠깐 울리고, 복도를 향해 열린 내 방 창문을 누군가 쾅쾅쾅 두드렸다. 거실에서 하릴없이 배까고 티비를 보던 나는 너무나 무서웠고, 조심스레 내 방 문을 통해 그 창문을 두드린 사람이 누군지 봤다.

그 형은 몸이 컸고, 색깔이 알록달록한 모자를 썼고, 눈이 적당히 몰려있었고, 시선은 나를 바라보는듯, 바라보지 않았고 무언가 산만했다. "여기, XX네 집 아니에요?" 라고 크게 묻는 그의 모습이 나는 두려웠고 약간은 기괴한 듯한 그의 복장이 다시 한 번 무서웠다.


곧바로 아빠한테 전화했고, 근방에서 독서실을 운영하며 학생들을 봉고차로 태우던 아빠는 곧바로 집에 와 우는 나를 달랬다. 복도식 아파트고 엘리베이터뿐만 아니라 복도에 달린 계단으로도 올라올 수 있어서 그가 누군지 제대로 알지 못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는 우리 아파트 근처에 사는 그저 흔한 발달장애인 중 하나였다.


선린초등학교와 고일초등학교를 막론하고, 내 초등학교 시절엔 "주몽이냐?" 내지 "애몽이냐?"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강동구엔 주몽재활원이 있었고, 주몽이냐와 애몽이냐는 그냥 장애인 비하 발언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를 무서워한 내 모습이 좀 부끄럽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9살의 나는 나보다 덩치가 크지만 약간 나사가 헐거워보이는 그가 무서웠다.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나는 그 형보다 몸이 커졌고 머리도 굵어졌다. 나보다 덩치 큰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다만, 어떻게 그와 살 수 있을지 고민한다. 


동네 바보, 바보형 캐릭터로 유명해진 정준하는 꾸준히 사장님이었다. 술집도 운영하고, 이젠 꼬치 가게도 냈다. 근데 우리와 함께 살던, 우리집 초인종을 울리던 그 바보형은 어디에 있을까. 중학교와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와 군대와 카페와 PC방과 하다못해 편의점에서도 보이지 않는 그 바보형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어느 동네에나 있어서 동네 바보형이라더만, 지금 어딨는지 알 수 없다.  


장애인을 시설 바깥으로 내보내거나 시설을 사회 진출을 위해 바꾸어야 한다는 기사는 있지만 정작 우레에게 묻는 기사는 없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외치는 기사 말이다. 결국 우리에게 남는 거라곤 발달장애인을 동네 바보형이라고 희화화하는 예능들과 장애인 학교를 들이지 말라는 강서구 지역주민뿐이다.  


그를 보고 무서워던 아빠를 부르던 나는 어느덧 그를 걱정하고 TV 속 바보 캐릭터에 묘한 불편함을 느끼는 28살이 됐다. 그런데 그 형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정준하는 인스타그램에 있지만, 그 형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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