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좋은 후배란 뭐예요?"
"음. 저도 제 선배한테 그 질문을 진짜 많이 해서 제 나름의 답은 있어요. 그 전에 하나 물을게요. 현모씨가 답이 있어서 확인하려는 거예요, 아니면 진짜 모르겠어서 그런 거예요, 아니면 답을 만드는 과정이에요? "
"그냥 선배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어요"
"음. 알겠어요. 일단, 제가 그냥 지켜본 결과 좋은 후배가 좋은 선배가 되고, 좋은 선배였던 사람은 좋은 후배였더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좋은 선배와 후배보다는 그냥 좋은 사람만 있는 거 같아요. 아무래도 여기가 학교가 아니다보니까 일 잘하는 건 기본이겠지만, 그 이외에도 후배를 가르쳐주려는 선배가 있고 중간에서 조율을 잘해주는 선배가 있고 하다못해 밥 잘사주는 선배가 있잖아요. 이거 그냥 좋은 선배예요. 근데 회사 생활하다가 보면 후배들을 기꺼이 챙기고 가르쳐주려는 선배가 별로 없어요. 근데 그런 분들이 승진도 잘하고 그렇더라고요. 근데 좋은 선배가 되려면 좋은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하는 거죠"
"반대로 보면 좋은 후배예요. 가르쳐주려고 할 때 잘 배우고, 배우고 싶다고 잘 신호보내고, 선배가 조율하려고 할 때 적당히 코드를 맞추면서 커뮤니케이션하고, 밥 사주면 적당히 잘 먹고 그런 사람이요"
"음. 사실 취업은 언제나 힘들었는데 요즘 느끼는 변화는 '자격'에 대한 강박이에요. 나는 이런 자격이 없으니까 저런 걸 못하겠지 이런 생각보다 난 저 포지션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걸까? 고민하면 되는 거 같아요. 저 일을 하려면 어떤 스킬이 필요할지보다 난 어떤 일을 하고 싶냐를 고민하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저도 베이스는 A였지만 지금은 B 일을 하잖아요. 물론 열심히 배우면서요. 사실 하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본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회사는 어떻게든 지원을 해줘서 옮길 수 있어요. 재능보다 대단한 탤런트가 의지예요. 의지를 뽐내는 사람도 얼마 없거든요"
계속 배우는 사람이었다. 여튼 뭐라도 배우는 척이라도 해야 살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그러다보니 보고 배울 사람이 필요했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선배들. 멋진 형 내지 누나 혹은 아저씨 혹은 아줌마.
깊게는 아니지만 좋은 후배란 무엇일까 고민했다. 대학원을 들어가며 박사 선배들에게 물었고, 회사 생활 눈팅하면서 회사 선배들한테 물었다. 좋은 후배를 물은 이유는 그만큼 좋은 선배에게 많은 걸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는 건 있기 마련이고, 운좋게도 좋은 선배가 날 좋게 본다면 난 그 바이브를 잘 느낄 수 있고 많이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열려 있는 태도, 배우려는 자세, 적당한 커뮤니케이션 등 다양한 단어가 머리 속에 떠올랐고 이를 하나로 묶으면 좋은 사람이었다. 아무래도 일을 하는 자리다보니까 퍼포먼스의 중요성은 당연하지만, 어쨌거나 좋은 사람이어야지만 좋은 후배 그리고 선배가 될 수 있다는 간단한 진리.
자격에 대한 강박. 난 이런 걸 공부했으니까 저런 걸 해야 하고, 난 저 일을 하기 위해서 이런 걸 공부하겠고, 난 이런 게 없으니까 저런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보다 그 분야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냐를 먼저 물으라는 선배의 말. 7월부터 난 동료와 선배를 가리지 않고 "현모씨, (나중에) 뭐하고 싶어요?"라는 질문을 받았고 어떤 선배는 "하긴 난 20년 일해도 모르겠더라"고 혀를 찼다.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는 말야. 적당히 성취지향적이라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고, 적당히 관종이라 나를 뽐내고 싶기도 하고, 적당히 트렌디해서 세상의 흐름과 반대로 가거나 너무 구식 난로는 아니길 바라는 마음.
아이디어를 구현하고 이를 직접 무언가로 끌어내는 메커니즘은 PM(내지 서비스 기획자) 혹은 디자이너 혹은 개발자 등 여러 직업에 통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내 포지션을 하나 꼽자면 기획자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결국, 멋져지고 잘나고 대단하고 위대한 동료들과 함께 무슨 일이라도 잘 해내야지.
잠실 카페에서 하릴없이 끄적끄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