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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Dec 04. 2018

성장의 기울기를 높이는 법

본능과 싸워야 한다

어제도 본능과 싸웠다. 누구나 늘어지고 싶은 일요일 오후에 시체 같은 몸뚱이를 끌고 이태원으로 향했다. 야 무슨 요가를 한강진까지 가서 하냐? 고 물으면 그러게나 말이다고 심드렁하게 답하지만, 그럼에도 그냥 한다. 해야 하니까 하고, 재밌으니까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건 눈꺼풀이요, 침대 위 내 몸뚱이다. 이건 본능이다. 라면은 꼬들하게 먹어도, 몸은 푹 퍼지고 싶다. 추우면 추우니까 집에 있고, 더우면 더우니까 집에 있고 싶다. 이건 본능이다.


PRE요가만큼이나 요가ING도 본능과 싸움이다. N극과 N극이 서로를 밀어내듯이, 내 뱃살은 상체와 하체를 밀어낸다. 밀어내면 그냥 밀리고 싶은데, 어쨌거나 버텨낸다. 중력을 이겨내고 하체를 위로 끌어올리는 일도 어렵다. 그냥 편하게 중력에 맡기고 자빠지고 싶은데, 어떻게든 버텨낸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숨을 습습후후하면서 내쉰다. 지금 내 몸이 허락하는 수준은 3인데, 하다 보면 5까지 된다.


요가를 다 끝내면, 마무리로 송장 자세로 눕는다. 아, 정말 편하다. 1시간 30분의 요가 수업 중에, 가장 내 본능에 어울리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억만금처럼 소중하고, 부디 지나가지 않기를 속으로 빈다. 임정희의 사랑아 가지마와 다비치의 시간아 멈춰라로 내적 댄스를 춘다.


송장 자세에도 끝이 있다. 일어나야 한다. 참 사람이 간사하다. 불과 5분 누워 있었는데, 마치 평생을 누워서 산 와식 인생인 것처럼 너무나 편하다. 하지만 일어서야 한다. 적당히 땀 난 몸을 끌어올리고, 당신 안의 신성에 치얼쓰! 를 하고 나면, 그제야 정신이 차려진다. 그래, 오늘 하루도 해냈구나.


누워있기는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 누워있는 건 본능이요, 행동은 그 본능을 이겨내는 행위다. 본능은 따르기 쉽지만, 이겨내긴 어렵다. 눕고 싶고, 게을러지는 본능을 극복하고 성실히 무엇을 계속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시발, 대단하다'라고 감탄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내 경험에 갇히기 마련이다. 공부에도 때가 있고, 나이 먹으면 머리가 굳기 마련이라는 말엔 이런 행간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는 그동안 해왔던 경험, 그동안 해왔던 방식, 기존의 관심 분야에 갇히기 마련이다. 새로운 걸 배우기는 귀찮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는 건 굳이 그럴 이유가 없어 보인다. 내 일 하기에도 바쁜데, 새로운 분야를 보는 건 더더욱 귀찮다.


경험에 갇힐수록, 견문을 넓히긴 어렵다. 견문을 넓히기 어려우면, 내 발전은 더뎌진다. 발전이 더뎌지면, 반짝이던 주니어를 지나 같은 말만 반복하는 고인물이 되기 십상이다.


백지장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일은 쉽지만, 스케치가 되어 있는 그림을 수정하기는 어렵다. 나이가 어린 주니어들이 무언가를 빠르게 배우고, 새로운 문화에 쉽게 적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기존의 행동방식과 기존의 콘텐츠에 완벽하게 융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성장의 기울기를 높이는 건 인성론에 가깝다. 요가를 하면서, 본능과 싸우면서 얼마 전 읽은 초격차가 떠올랐다. 경영서적이라지만 초격차는 인성론에 가깝다. 격차를 만들어내는 태도, 초격차를 만들어내는 인성에 대해 말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성장의 기울기는 꺾인다. 기존 경험에 갇히고, 새로운 걸 배우기보다 지금 일을 더 잘하는 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1에서 10 가는 건 쉽지만, 10에서 1000가는 건 어렵다. 기울기를 유지하기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본능과 끊임없이 싸워야 성장할 수 있다. 편한 구역에서 벗어나고, 하던 대로만 하지 않고, 새로운 일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말고, 내일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상상력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이런 호기심을 바탕으로 배우고, 그 배움을 일로 만들어내는 지속력 (근성) 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걸 배워도, 그걸 지속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본능을 이기기 위해 모든 축을 내일에 두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성공 공식이 내일에도 먹히리란 보장은 없다. 지금 고점이라고 안심하지 말고, 지금 저점이라고 한숨 쉬지 말아야 한다. 지금 위치가 아니라 오늘부터 내일까지의 기울기가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은 공부에도 때가 있고, 나이 먹으면 머리가 굳기 마련이라고 한다. 호기심과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에겐 그렇다. 하지만, 우리가 호기심과 상상력을 유지하고 지속력을 더한다면, 배움에는 때가 없다. 성장에도 거침이 없을 테다.


호기심, 상상력, 지속력에 절제를 더 하자. 하고 싶다고 모두 다 했다간 패가망신...이 아니라 몸이 축난다. 지금 내 상태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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