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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Sep 21. 2018

무경계의 시대

전문화

제네럴리스트냐, 스페셜리스트는 만년 떡밥이다. 이런 질문에 기업들은 흔히들 T자형 인재를 선호한다고 답한다. 제네럴한 관심사를 가지면서 스페셜한 관심사와 스킬까지 있는 그런 사기형 인재말이다. 사실, 다 할 줄 아는 게 베스트다. 마케팅 개념 있는 콘텐츠 제작자, 기획부터 제작까지 한 큐에 해결할 수 있는 크리에이터, 플랫폼 이해도가 높아 인게이지먼트까지 관리할 수 있는 기획 및 제작자까지.


이런 추세는 당연하다. 기업 입장에선 혼자 다 할 줄 알아야 더 값 싸게 부려먹기도 하고, 실제로 커뮤니케이션에도 도움이 된다. 개인 입장에서도 이것저것 다 할 줄 알면 몸값 높이기가 더 수월하다. 더군다나 조직이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선 자체적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일련의 대기업을 제외하면 이렇게 만능 가제트팔 같은 사람이 각광받기 마련이다.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다. 기존 방송국 PD는 작가주의에 빠져 있어도 괜찮았지만, tvn 개국 이후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시대에 PD는 작가주의에 플랫폼을 그리고 마케팅을 고민해야 한다. 쉽게 말해, 돈 버는 고민도 해야 한다. 이전까지 해왔지만, 앞으론 더 해야 한다.


무경계의 시대다. 디자이너가 마케팅과 기획도 하고, 기획자가 디자인도 할 줄 알고, PD가 저널리즘과 동시에 마케팅을 고민하고 실행한다. 코딩할 줄 아는 문돌이, 문돌이의 세계관을 이해할 줄 아는 개발자 등 서로의 경계를 기꺼이 침범하고 정복할수록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시대다.


이런 무경계의 시대는 곧 다양성과 연결된다. A부터 Z까지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각기 다른 직군에 들어가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직군 사이, 그리고 직종 사이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마당에 각기 다른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작은 기업만의 일은 아니다. 대기업에서도 순식간에 TF가 꾸려지고, 순식간에 일이 돌아간다.


최근 들어 나온 여러 조직 문화의 책들은 직원들이 1) 자발적으로 일에 참여하고 2) 직업 사이 경계를 무너뜨리고 모두가 참여하는 기획 방식을 선호한다. 이는 최근 다양한 조직들이 '작은 셀'로 분화되고 있는 추세와도 맞닿아 있다. 이는 대부분 IT 조직에서 나온 문화인데, 워낙 곳곳에 IT 출신 인재들이 뻗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닐까 싶다.


정말, 무경계의 시대다. 기존 제조업에선 '하이브리드'라고 불릴 거고, 사회학과 인문학 등에선 '통섭'의 시대다. 하지만 이를 가장 이해하기 쉽게 만들자면, 기존의 R/R이 무너지고 새롭게 쓰여지는 과정이다. 바로, 무경계.


사회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기존의 가부장제 질서를 무너뜨리고, 성별 질서가 무너지는 시대다. 더이상 A국가 콘텐츠와 서비스가 그 경계 내에서만 소비되지도 않는다. 우리가 쓰는 수많은 서비스는 글로벌이다. 로컬은 글로벌을 향하고, 글로벌 서비스는 로컬을 향한다.


이런 무경계의 시대에 요구되는 '스킬'은 역설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이다. 인공지능, 코딩,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포토샵, 영상 제작 등 다양한 '스킬'에 대한 필요성이 나오지만 역설적으로 잘 섞이기 위해선 사람과 대화가 중요하다. 디자이너가 코딩을 이해하고, 피디가 마케팅을 이해하면 좋은 일은 서로 간의 시너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시너지를 위해 우리는 레퍼런스를 공부하고, 약간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한다. 결국은 커뮤니케이션.


기획, 일, 제작, 콘텐츠, 프로세스 등등. 여튼 모든 일은 사람이 하는 거라, 결국은 커뮤니케이션 스킬만큼 중요한 게 없다. 어쩌면, '일'이라는 아트를, 커뮤니케이션을 만드는 데에 다양한 기술이 필요한 거지 기술을 위해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무경계의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선 서로가 기꺼이 열려 있어야 하고, 기꺼이 섞일 '준비'가 되어야 한다. 서로의 다양성에서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선 열린 사고방식과 대화방식이 필요하다. 성별, 인종, 나이, 공격적 대화어투를 지양하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대화방식과 '일이 굴러가게 만드는' 대화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대화 기술자. 라는 포지션을 생각한다. 기존의 프로덕트 매니저는 다양한 언어를 이해하고, 그 경계를 기꺼이 침범하여 새로운 가치를 복합적으로 창출하는 직업이 아닐까 싶었다. 전반적은 프로세스를 관리하고 시너지를 만드는 일은 결국 대화하는 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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