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현모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현모 Sep 09. 2018

오빠가~ 경상도식 소고기국.


관계와 대화.




번식 과정에서 자연 도태된 어투지만 아직도 몇몇은 "오빠가" 내지 "형이"로 대화를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누나가" 혹은 "언니가"는 듣도보도 못했는데, 오빠 내지 형은 꽤나 자주 들린다. 카페에서도. 




오빠와 형은 본인이 아니다. 정확히 본인이 바라는, 상대방이 봐줬으면하는 내 모습이다. 혹은 "애는 날 오빠로 생각하겠지"라며 오빠 내지 형으로 말을 시작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참으로 상대방 중심적인 문장이지만, 함정은 오빠와 형은 한국 사회에서 권위의 상징이라는 사실이다. 




참. 권위와 위계의 상징인 머기업이나 대학원에서도 '교수님이' 혹은 '박사 선배가' 로 말을 시작하지 않는다. 관계가 가져다주는 명함으로 말을 시작하는 경우는 저놈의 오빠와 형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고, 넌 나보다 아래고, 난 경험이 많고 어쩌고저쩌고블라블라 내가 살아봐서 아는데 응 그래서 님 100살?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데.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게 신기하다. 




본인의 지위와 권위를 드러내는 대화 모두가 불편하다. 아니, 그 형태가 전부. 아까 올린 내 때는 말이야, 요즘은 말이야 글도 싫고 스스로를 오빠와 형으로밖에 상정하지 못하는, 상대방을 자신의 아래 동생으로밖에 생각하지 않고 유별난 개체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고. 




아, 근데 왜 세상 많은 아저씨는 "오빠라고 불러"라고 하면서 "형이라고 불러"는 덜 할까? 내가 너무 싹퉁 바가지라 그런가. 




-




내 안의 경상도. 




외할머니는 소고기무국을 항상 벌겋게 끓였다. 짜장면을 시키면 항상 달걀을 굽거나 삶아주셨다. 시장에서 순대를 사오시면 주방에서 뚝딱뚝딱 장을 만들어 오셨다. 투명하고 허연 소고기국이 있다는 사실은 친가쪽 큰집에 가서 제사 지낼 때야 알았다. 순대와 장의 조합이 흔치 않다는 사실은 상일동 시장에서 배웠다. 더이상 짜장면과 달걀 후라이는 쉬이 볼 수 없다. 




항상 강동구의 아들이라고 말하지만, 경상도의 영향을 적잖이 받았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경북 영주 농촌 출신이다. 소띠인 우리 엄마는 어릴 적 소를 키웠다고, 그 눈망울이 아직까지 선명하다고 말한다. 어릴 때 외할머니와 살던 나는 추석과 설날 때 친가에 가지 않고 경북 영주 어느 시골에 있는 농촌 마을에 가서 제사를 지냈다. 무식하게 큰 델몬트 유리병에 담긴 복숭아 쥬스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도 이름을 외우지 못했던 사촌 누나는 이제 뭐라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억의 저편에 가있다. 




내가 그동안 만나온 경상도 여자들은 경상도 남자들에 대한 묘한 분노와 증오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본인들이 살아올 시대에 맞지 않는 가부장적 가치관에 찌든 남성을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 우리 엄마도 비슷했다. 첫째 딸이었던 엄마는, 여자라는 이유로 대학에 가지 못할 뻔했다. 문인이라는 본인의 꿈은 이미 접힌 지 오래였고. 가장이라는 종이호랑이라서 바깥에 나가선 치이고 사고치고, 집안에서만 큰소리를 지르는 사람이었다. 지금에야 패기와 총기를 다 잃고 뻐끔뻐끔 담배만 피는 할아버지지만, 엄마에겐 애증의 대상이자 분노의 활화산이었다. 




결혼은 그런 엄마에게 일종의 도피처였다. 지긋지긋한 빚과 답답한 아버지 (외할아버지) 와 집구석에서의 도피말이다. 경상도로 대표되는 한국식 가부장 질서를 탈출하고자 한 결혼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친할머니는 그 질서의 충실한 복무자였다. 친할머니는 아빠보다 가방끈이 길고, 며느리 중에서 유난히 모난 돌이었던 엄마를 고까와했다. 남편 기를 죽이는 잘난 여자였던 엄마는 친할머니와 특정 큰아빠에게 미움을 받았고, 그 서러움을 조용히 레고를 쌓고 무너뜨리는 내게 말했다. 그놈의 집구석에서 레고를 쌓던 나는 그놈의 집을 무너뜨리고 싶었다. 레고성을 무너뜨리듯. 




추석과 설이 싫었다. 얼마나 싫었냐면, 남들이 다 싫어하는 시험기간을 큰집을 가지 않아도 되는 핑계라며 적잖이 즐겼을 정도다. 왜 1년에 한두 번 보는 먼 친척이 나한테 반말을 하는지. 내 이름보다 내 대학을 먼저 기억하는 그 사람들을 왜 친척이라 불러야 하는지. 조상 덕 본 사람은 지금 바깥에서 떵떵거리는데 왜 얼굴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절을 올리는지, 왜 큰아빠들은 항상 밥을 먹고 바로 과일을 찾고 바로 커피를 찾는지. 왜 며느리들은 따로 밥을 먹어야 하고 외가는 다음 날에 가야 하는지. 왜 우리 아빠는 아무 말도 못하는지 (막내다). 




경상도로 시작했지만, 결국은 이 묘한 관습과 적폐를 굴러가게 하는 질서가 밉다. 경상도로 대표되는 그 가부장 질서를 너무나 당연히 여길까, 나도 어느 순간 귀찮아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을까 스스로 경계하고 있다. 경상도식 음식은 좋지만, 경상도식 질서는 싫다. 지역 혐오냐고? 정확히 말하면 서울주의자다. 욕하지 말긔. 

매거진의 이전글 필터 버블에 갇히지 말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