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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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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Sep 09. 2018

요가일기 - 도전하는 엉덩이

불편함에서 편안함 찾기

16시간 금식하고 요가해야 제맛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토요일 저녁은 당당하게 스킵했다. 원래 일없으면 저녁 안 먹는 생활 패턴이라 큰 부담은 없었다. 오히려 저녁 먹으면 어색.


한강진은 참 힙한 동네다. 한강진역에서 내려 요가 교실까지 가는 길에 있는 수많은 카페 앞엔 인스타용 사진을, 프로필 사진을 건지기 위해 온갖 각도를 실험하는 커플이 있다. 카페 앞에서 모델용 포즈를 취하고 일요일 한낮의 여유를 담는 수많은 사람들. 그 골목엔 지금을 남기려는 사람들과 지금을 깨끗하게 지우려는 세탁소 특유의 기름내가 공존한다. 삶에 이야기거리를 조금 남겨보고, 비루한 몸뚱아리를 지우려는 나는 그 맞은 편 건물로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간 3층에서 열심히 요가를 했다. 아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이 내 몸대로 안 되니까 열심히라도 해야지. 홈과제는 열심히 했는데, 역시나 자세가 올바르진 않았던 거 같다. 선생님이 적당히 척추를 눌러주시고, 등을 펴주시니 자세가 잡힌다. 아, 팔이 떨린다. 이 비루한 몸뚱이에 있는 건 살과 탄수화물이요, 없는 건 근육과 단백질이다. 이 세상에 허락된 유일한 마약은 탄수화물이라 빵과 면을 쳐묵하고 운동을 멀리하니 요모양 요꼴. 요가는 반성하는 운동이다.


까마귀 자세에서 뭐 몸을 팔에 기대고 어찌저찌해서 붕 뜨는 자세가 있다. 와씨. 얄쌍한 팔뚝이 파르르 떨리니까 무언가 스스로 자존심이 상하고 오기가 생긴다. 속으로 욕지꺼리를 하고 얼굴로는 파업을 하고 죽창을 들었는데, 정작 엉덩이는 위로 안 뜬다. 제발. 제발.


저번에도 말했는데, 하타 요가는 유난히 몸을 고정하는 자세가 많다. 팔은 파르르 떨리고, 다리는 아둥바둥대고 허벅지는 당기는데 그 자세로 있어야 한다. 눈을 감고 생각을 관조하고, 마치 닥터스트레인지가 유체이탈하듯이 멍때리면 남는 건 선생님의 말씀뿐.


"요가하다보면 '그냥 해보면 되는구나' 싶은 게 있어요. 어려워보여도 해보면 되는 그런 순간이 있더라고요" 어려운 자세에 고전하는 비루한 몸뚱아리를 보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어려워보여도, 아무리 힘들어도 직접 도전해보면 생각보다 아무 것도 아니고, 해보면 되는 것을. 멀리서 겁먹고 천천히 하는 것보다 가까이 가서 빠르게 부대끼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불편함에서 편안한 공간을 찾아보세요. 편한 자세만 하면 안되어요" 컴포트존. 하루하루 살다보면 결국 내가 편안한 공간만 찾게 된다. 명일역 도로시, 안암 레스이즈모어, 대학원열람실, 꿈청 등등. 그렇게 편안한 공간에만 있으면 편하지만, 무언가 불편하다. 그 다음을 꿈꾸기 어렵고 이렇게 안락하게 죽는 '안락사'가 아닐까 하는 걱정. 조금은 불편하지만 새로운 공간에 가고, 계속 다녀야지만, 그 여정에서 새로운 편안한 공간을 찾고자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수많은 가능성을 발굴하고 그걸 테스트하기 위해.


여러 아사나를 하다보면 참 많은 신체 부분이 느껴진다. 발날도 잡아보고, 종아리 사이에 머리를 넣으며 츄리닝에 붙은 먼지도 본다. 부장가아사나를 하다가 머리를 뒤로 제끼면 접히는 목살이 느껴진다. 그리곤 머리의 묵직함이 느껴지고, 그걸 버티는 어깨에게 미안해진다. 오늘은 다리를 수직으로 뻗는 그 자세를 저번주보다 아주 조금 더 오래 했다. 저번주에는 그냥 자빠지던 자세도 오늘은 30초는 넘게 했다. 선생님이 눌러주셔서 척추가 펴지는 느낌도 받고, 틀린 자세도 교정됐다.


운동과 베를린 장벽을 쌓은 나는 이제 그 장벽을 허물고자 요가를 신청했다. 그래서 많이 허물었냐고? 모르겠네. 인생은 ING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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