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현모 Sep 27. 2018

[돌아보기] 미스핏츠 0.xxxx 알파버젼 이야기

옛날 옛적에

종북이라고? 시발! 아니야 병신들아!시발! 시발~! 시발~!!!!!!!!!!


https://www.youtube.com/watch?v=YHjC26NgomQ&t=2s


소파에 앉아 세월호 기사에 달린 악플에 몇번 욕했더니만, 졸지에 욕하는 중딩이 됐다. 일베 형들한테 조롱당하고, 중딩이 말도 잘한다고 칭찬받은 예비군 학생은 기분이 묘했다.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 영상으로 날 알게 된 사람들은 나를 개인 제작자 내지 운동가로 착각했다. 하지만 난 당시 미스핏츠 소속 에디터 (이자 초기 멤버 중 1인) 였고, 그 영상은 정말 우연찮게 아다리가 맞아 출연했을 뿐이다.


미스핏츠가 뭐하는 곳이었냐면... 뭐, 그래 뉴미디어 매체였다. 2014년은 뉴미디어들이 주목받게 된 원년이기도 했다. 세월호 이후 기레기 담론이 첫 번째 원인이었다. 다양한 오보와 삽질로 인해 기존 언론사에 대한 신뢰는 지하를 뚫고 맨틀로 향했고, 청년 담론과 안티 언론사 담론이 만나니 새로운 청년 언론에 대한 갈증이 딱하고 나타났다. 


두 번째는 페이스북이었다. 트위터의 시대는 저물고, 페이스북의 시대가 시원하게 왔다. 무리뉴 2년차만큼이나 페이스북의 당시 기세는 파죽지세였다. 페북의 파죽지세로 인해 기존 언론사는 페북으로 이동하고, 기레기 담론으로 인해 비-기성언론에 대한 수요가 커지니 미스핏츠를 비롯한 다양한 청년언론 + 뉴미디어 매체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다.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21161


미스핏츠의 슬로건은 'fit하지 않은 모든 목소리'였다. 기존 제도가 담지 못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우리가 담고, 사회의 분위기를 바꿔보자 이런 가치를 담았다.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여전히 답답한 소리만 해댔고, 언론에 다양성 이슈는 더욱 적었기에 이런 슬로건은 적합했다. 이런 매체가 필요하기도 했고.


http://www.the-pr.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52


미스핏츠 같은 곳들이 생겼다면, 난 그걸 왜 했을까? 하자고 했으니, 했다. 2014년 여름 당시 미스핏츠를 시작하자고 한 사람은 내 고등학교 후배인 J였다(당시 대표). 난 당시 소위 3연벙 당한 시기였다. 시사인 인턴 떨어지고, 이중전공 바꾸려고 했는데 떨어졌다 (식자경 → 정외). 케스파 기자단 1기도 신청했다가 떨어졌다. 이 3연벙 상태에서 후배가 하자고 하니 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렇다면, 그 후배는 나한테 왜 하자고 했는가? 왜냐면 글을 오지게, 길게 쓰는 관종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때는 지금과 달리 온갖 정치 및 사회 뉴스를 소재로 글을 썼다. 진짜, 길고 자주 말이다. 거의 페북에 살다시피 하니까 당시 친구들이 나를 좋아요에 요정을 더해서 좋아요정이라고 했다. 하도 페북을 하다보니...


당시 내 1지망은 기자였다. 기자가 되고 싶었다. 내 고등학교 시절은 이명박 정부 초창기 다양한 사건과 함께 했다. 숭례문, 광우병, 그리고 대통령의 자살과 사망. 당시 나는 우리 고등학교 시사부에서 교지를 만들었는데, 여기에 다양한 시사글을 적었다. 뭐, 이러저러한 기질에다가 대학까지 미디어학부에 지원했으니 기자에 관심 갖는 건 당연했다. 아, 물론 미디어학부는 점수컷 때문에 쓴 거다. 이정도되면 그냥 어쩌다보니 기자가 되고 싶게 된 거다.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점수로 대학을 온 고등학교와 달리, 내가 배운 전공을 살려 직업을 갖고 싶었다. 사회 변화에 대한 부끄러운 의지까지 더하고, 전공을 섞으니 나오는 건 기자라는 직업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은 아~주 많이 바뀌었다. 전통적 언론인이나 사회 운동가만이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그럴싸한 직업이 아니다.


당시 웹페이지 중 하나



결국, 미스핏츠는 당시 사회에 있던 1) 청년 담론 2) 기레기 담론 3) 뉴미디어 (변화) 가 합쳐졌기 때문에 생겨났다. 나를 비롯해 당시 멤버들은 1) 성질머리가 독특했고 2) 언론인을 지망했고 스펙이든, 의미를 두든 뭘하든 미스핏츠를 해보고 싶었기에 했다. 뭐, 쉽게 말해 모난 돌이던 기자 지망생들이 만든 매체였다.


성질머리는 다들 독특했다. 관종에, 또라이에, 초면인데 자기 섹스 이야기를 쉬이 풀어놓는 좀 뻔뻔하고 독특하고 불만 많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는 아주 극-초기 멤버고 실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에 있어선 다른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를 미스핏츠 1.0이라 부르자. 그래서 1.0이 어떻게 진행됐냐면...


http://misfits.kr


매거진의 이전글 루프 페스티벌 기획 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