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현모 Dec 07. 2018

루프 페스티벌 기획 후기

모더레이터 후기. 

오늘은 좀 특별한 후기를 써보려고 한다. 콘텐츠 실무진의 이야기를 담은 루프이니만큼, 루프를 진행한 실무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시니어는 새가슴 주니어가 짱인데요 


루프 페스티벌은 여타 페스티벌과 다르게 ‘실무자’라는 단어를 가져간다. 콘텐츠에 대한 비전과 로드맵이 아니라 프리미어로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고 한다). 시니어의 이야기 대신에, 주니어의 고민과 생각을 담은 자리여야 했다. 고생 레터다. 내가 왜 여기에 들어갔는지는 선재님에게 물으셔야 한다.  


루프 페스티벌은 1) 브랜디드 2) 취향 - 콘텐츠 3) 유료 콘텐츠 4)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로 나뉘었다. 나는 여기서 ‘독자가 돈을 내는 콘텐츠’ 세션을 맡았다. 무려 방점이 3개나 찍혀 있다. 1) 독자가 2) 돈을 내는 3) 콘텐츠다. 매스가 아니라 돈을 내는 독자에 대해 말해야 하고, 심지어 유료에 대해 말한다. 물성이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라는 것도 특징이다. 나는 위 3개의 방점에 하나를 더하고 싶었다. 바로 ‘제작자’다. 유료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인풋과 프로세스 그리고 제작자의 고민도 패널 토의에서 담고 싶었다.  


악당 출현이다 XXX들아 (넉살 노래 가사입니다)


패널 구성은 이러했다. Here I am, 세탁소의 여자들 프로젝트 펀딩을 성공시킨 닷페이스유료화 전환에 성공한 아웃스탠딩, 마지막으로 개인이 운영하는 유료 뉴스레터인 고생레터. 닷페이스에겐 펀딩 성공 경험을, 아웃스탠딩에겐 유료 전문 콘텐츠 제작 경험을 묻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고생레터는 개인이 운영하는 뉴스레터라는 게 특징이었다. 대체 혼자 어떤 프로세스로 작업하고 반응은 어떠한지 궁금했다. 그래서 강력하게 추천했다.  

난관이 하나 있었다. 직접 뵐 수가 없었다. 오프라인에서 한 번 만나지 못했다. 내가 구글 닥스로 각 매체에게 맞는 질문지를 작성하면, 선재가 이를 각 팀에게 메일로 뿌렸다. 답장은 구글 독스로 받았다. 선재와 토론자분들의 의견을 담아 질문을 수정하거나 더하고 뺐다.  


질문살인마 구현모


네가 진짜로 궁금한 게 뭐야 


초기 질문은 크게 이런 생김새였다.  


1) 수요자에 대한 이해 : 어떤 분들이 돈을 내고, 피드백은 어떠하고 등등 

ex) 펀딩 후원자분들은 왜 후원하셨다고 하나요? 


2) 공급자 관점 질문 : 프라이싱 등 

ex) 아웃스탠딩 프라이싱은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3) 콘텐츠 : 돈을 만드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ex) 레터를 만드실 때, 독자에 중심을 두셨는지 혹은 본인에게 초점을 맞추셨는지 


4) 제작자와 지속가능성 : 제작 프로세스 + 들어가는 인풋 규모 등등 

ex) 닷페이스는 프로젝트 팀이 따로 있나요? 


내가 너무 인-싸였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세 매체 모두 내가 주의 깊게 팔로잉했다는 사실이 함정이었다. 그래. 내가 너무 인싸였다. 질문을 작성하고 보니 너무나 전문적이었고, ‘유료화’ 자체에 대해 의뭉스러운 혹은 비판적 시선이 담겼다. 소담 누나에 말을 빌리면 ‘위 토론을 듣고 다른 분들이 벤치마킹하기엔 도움이 되기 힘든 문답들’이었다. 구체적이지 않고 두루뭉술한 질문도 많았다. 유료 뉴스레터의 확장성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1) 유료 뉴스레터 자체에 대한 질문인지 혹은 2) 개인이 운영하는 뉴스레터에 대한 질문인지 모호했다.  


독자가 돈을 내는 콘텐츠였는데, 정작 독자를 배려하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걸 몽땅 다 질러버렸다. 루프 페스티벌과 같은 오픈 페스티벌은 가격이 유일한 장벽이다. 청중의 이해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위 온도를 맞춰야만 했다. 너무 난이도가 낮은 질문은 내가 싫고, 너무 어려운 질문은 청중이 지루해한다. 그 애매모호한 경계에 있어야 한다.  


그래서, 피드백을 받아서 이렇게 고쳤다. 같은 모더레이터인 챕스의 질문지 형식을 빌렸다. 전체 패널에게 공통 질문을 드리고, 각 패널에게 세부 질문을 드렸다.  


챕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그리고 현장에서 이렇게 고쳤다. 수정의 연속이었다. 현장에서도 어떤 질문이 나을지, 다른 모더레이터의 패널 토론은 어떻게 진행하는지 보면서 이리 고치고 저리 고쳤다. 디테일 그 자체 우창님의 피드백을 곧바로 반영해 소개 순서를 수정했다.  


암호 아닙니다
손도 못생겼습니다



자, 이제 질문은 끝났다. 남은 건 모더레이터로서 마음가짐이다.  


모더레이터의 역할은 무엇일까? 현장 MC는 따로 있다. 패널과 달리 내 이야기를 꺼내선 안된다. 경기의 심판은 아니고, 토론의 중재자도 아니다.  


근데, 무게감은 크다. 선재와의 사전 미팅에서 ‘성공한 세션은 모더레이터의 역할이 크다’라는 말을 들었다. 생각해보니, 발표는 둘째치고 토론이 재미가 없으면 그 콘퍼런스는 똥망하기 매우 쉽다. 발표를 들으며 한껏 텐션을 높여도, 개노잼 토론을 들으면 텐션이 저~기 지하로 꺼진다. 진짜 텐션이 저세상으로 가버린다. 첫 만남만큼이나 이별이 중요한 것처럼 토론 세션이 중요하다. 



내가 정리한 모더레이터의 역할은 3가지다. 첫 번째로, 모더레이터는 정리하는 사람이자 질문하는 사람이다. 절대 내 이야기로 토론을 이끌고 가면 안된다. 나는 달리는 토론이 잠시 쉬는 체크포인트다. 3~4 문장으로 이어지는 패널의 이야기를 1~2가지 키워드로 다시 한번 매듭지어야 한다. PPT 없이 현장에서 말로 진행하다 보니 이야기가 산으로, 바다로 가기 십상이다. 이걸 막아야 한다. 정리하고, 다시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아, 롯데리아 햄버거가 좋으시다고 하셨죠. 혹시 어둠의...?" 이렇게. 


두 번째 마음가짐은 가자미였다. 롤에서 미드가 가자미면 팀이 망하지만, 패널 토론에서 모더레이터는 무조건 가자미여야 한다. 진흙탕을 구르는 가자미여야 한다. 절대 메인 디쉬가 되려고, 감성돔이 되려고 나대지 말자. 너는 가자미다. 패널 사이 이야기를 조율하고, 그들에게서 빛나는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내가 발표자가 아닌 이상 빛나선 안된다. 그건 패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진흙 말고 살투성이가 된 건 안비밀


마지막으로 모더레이터는 맥락 제공자다. 앞서, 청중의 각기 다른 이해도가 오픈 콘퍼런스의 위기라고 말했다. 서로가 주제에 대해 이해하는 정도가 다르다 보니까 느끼는 만족도도 다르다. 누구에게 맞추냐가 중요하다. 카메라 색온도를 이영애한테 맞추거나, 문가비한테만 맞춰선 안되듯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이해의 맥락을 제공하고자 했다. 일종의 가이드북이다. 각기 다른 이해의 결과 온도를 가진 이에게 공통적인 맥락을 제공해야 한다. 온도를 맞춘다. 나는 에어컨인 동시에 전기장판이다. 어떻게 하면 독자가 패널 토의를 더 재밌게 들을 수 있을지, 패널 이야기 행간을 읽을 수 있게 할지 고민했다.  


위 세 가지 마음가짐에서 난 이런 행동을 했다.  


1) 오프닝 하면서 각 매체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설명했다.  


세 패널이 운영하는 매체는 각기 성격이 다르다. 아웃스탠딩은 IT전문지고, 고생레터는 개인 뉴스레터다. 닷페이스는 영상 기반 언론사다. 모두 독자에게 돈을 받는 콘텐츠지만, 그 콘텐츠의 형태와 매체의 성격이 다르다. 이걸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먹으면 체하기 십상이다.  


2) 가능한 한 패널이 말씀하신 바를 키워드로 정리하고자 했다.  


패널이 힘주는 포인트를 청중이 꼭 가져갔으면 했다. 초반엔 그렇게 했는데, 중후반부엔 폰으로 큐엔에이랑 시간 체크하느라 실패했다.  


안 듣는 게 아니라 시간이랑 큐엔에이 체크하는 중입니다.


3) 청중 QnA에 살을 붙였다.  


청중 QnA가 가진 맥락을 제공하고자 했다. 그냥 툭 던져놓고 알려주세요!라고 하는 건 답이 아니라 생각했다. 좀 더 좋은 답변을 듣기 위해 질문의 맥락을 끄집어냈다.  


감독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죠


선재님이 각고의 노력을 펼친 결과 패널 토론은 잘 진행됐다. 일단, 토론의 리듬감이 좋았다. 한 분이 질질 끌지도 않았고, 포인트가 없는 답변이 나오지도 않았다(고 자평한다). 앞서 말한 네 가지 방점을 놓치지 않았다. 처음엔 독자, 뒤엔 프라이싱, 그 이후엔 콘텐츠를 물었다. 마지막엔 제작자에 대해 물었다. 패널 분들이 리듬감을 지켜주셔서, 청중 질문도 받을 수 있었다. 사전 질문지엔 있었지만 시간 부족으로 인해 빼버린 질문을 청중께서 해주셨다. 청중과 모더레이터의 호흡은 강약 중강 약.  


선재님이 보고 있다. 열심히 하자.


하지만 아쉬웠던 점도 있다. 한 번 더 만나서 이야기했으면 더 좋은 내용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큐앤에이를 더 길게 가져갈까 싶었다. 청중 질문을 더 많이 가져가는 게, 청중분들이 더 기분 좋게 느끼지 않으셨을까 싶다. 청중 참여도가 높을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 (커넥티드 랩 후기). 또 하나는 아예 내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발표를 진행한 소담 누나가 모더레이터도 겸임했으면 토론 시간을 더 효율적으로 가져갈 수 있었을까? 물론 누나에겐 힘들었겠지만, 청중이 궁금한 건 내 질문이 아니라 고생레터, 아웃스탠딩, 닷페이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기꺼이 빠져야 하지 않았을까?  


난, 지금입니다


루프는 큰 자산이다. 콘텐츠 제작 실무진이 모여 이야기 나눴고, 상승했다. 그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과 여러 기억은 유산이 됐다. 지난 2014년부터 진행한 실험, 프로젝트, 콘텐츠 스타트업의 엔딩은 해피였다. 위대한 여정의 끝은 행복 엔딩이었다. 플레이어에서 모더레이터로, 제작에서 기획으로 약간은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강박사님 어디 가세요? 내 턱선은 무너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뉴미디어돌아보기] 청춘씨:발아 2편 - 너, 내 동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