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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Nov 03. 2018

방향성.



술을 잘 먹지 않는다. 거의 안 먹으려 한다. 어차피 먹어야 하면 빨리 먹고, 빨리 취해서, 빨리 집에 가려고 한다. 수면 시간을 확보해야 숙취에서 극복할 수 있다. 이러다보니 가끔 사람 챙기는 일을 맡는다 (아주 가끔).


술에 취했을 때, 가장 짜증나는 건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친구 놈이다. 정신을 반쯤 잃은 사람을 짊어지는 일은 아침 8시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일만큼이나 어렵다. 우리가 가야하는 방향은 저쪽인데, 머리 속 나침반이 고장난 친구의 방향은 이리쿵 저리쿵이다. 정신을 잃고 방향마저 잃은 사람은 진짜 짐짝이다.


강서구 PC방 사건 관련 청원이 10만을 넘었다고 한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듯이, 평소 같으면 그냥 묻어두었을 강력사건이 연달아 크게 보도 되는 듯하다. 주취감경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댓글은 벌써 술취했다고 봐주면 안된다고, 정신병이란 무슨 상관이냐 말한다. 이에 질세라 언론은 이 반응을 '시민의 분노'라고 다시 받아쓴다. 분노의 선순환 구조.


'술 취해서 그랬어요'라는 범죄자들의 변명에 비해, 주취감형이 이뤄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낮은 비율이라고, 범죄자들이 저러는 건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에 비하는 흔한 레퍼토리라고 말한다.


주취 감형, 심신미약, 조선족 논란에 이어 사형까지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이 분노를 어떻게 해소할지로 귀결된다. 사형까지 이야기하는 글들을 보면 삐딱한 시선이지만, 과연 많은 사람이 피해자에 공감하는지 혹은 그저 분노 해소를 핑계로 그냥 소리치고 싶은지 헷갈린다.


방향키를 잡은 사람은 없고, 모두가 파도에 휩쓸린다. 언론은 파도를 중계하고, 댓글은 너나 할 것 없이 거친 파도를 만드는 데에 일조한다. 누가누가 더 세게 욕하고, 누가누가 더 잔인한 형벌을 만들 수 있는지 가열차게 토론한다.


술을 먹고 취해 비틀대는 친구가 있으면, 술 안 먹는 애가 도와주면 된다. 그렇다면, 사건에 대한 분노배설구가 된 담론장은 누가 도울 수 있을까. 굳이 언론이라는 글자를 꺼내지 않더라도 모두가 떠올릴 거다. 다만, 그들 역시 '술이 문제다' 혹은 '이런 잔혹한 사건이 있다'거나 '시민들은 이렇게 분노한다'고 말할 뿐이다. 책임주의라든지, 이 비율이 그렇게 낮고 사회에 대한 인식은 약간 오바다라든지, 이런 분노에 대한 해소를 위한 기사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굳이 언론만을 탓할 이유는 없다. 원래 사람은 부정적인 뉴스에 크게 반응하는 법이다. 언론의 자극적인 장사가 팔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걸 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공영방송을 생각하지만, 공영방송은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대에 토론을 배치해 '공영방송 기능을 수행합니다'라며 자위하겠지.


네이버와 관련된 토론에서 언론사들은 네이버를 언론과 비슷한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즉, 스스로를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곳이라 말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얼마나 건실하게 기능을 수행하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트래픽과 조회수와 댓글 등 '장사'에 민감한 곳이 그곳 아닌가.


일희일비하는 언론사보다, 시의성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되는, 영상 플랫폼 속 채널들이 오히려 이런 기능을 더 적극적으로 열심히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KBS가 불러주면 충성충성충성^^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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