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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Nov 05. 2018

합격이라는 이름의 전차

<당선, 합격, 계급>

생각해보면, 내 삶의 절반가량이 합격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타기 위해 노력한 시기였다. 특정한 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보다 합격을 위한 노력이 전부였다. 그 시험을 합격하기 위한 공부가 내 사고력과 사회인으로서 역량을 키우기 위한 공부였다면 참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 시험은 대부분 ‘시험꾼’을 만드는 과정이다. 그 역시 쓸 일이 있지만 이 역시 합격한 사람의 결과론적 해석이다. 


작금의 시험 제도는 수많은 폐인과 낭인을 만든다. 사회 차원에서 너무나 큰 비용이다. 그 시험 제도 바깥에선 전혀 쓸 수 없는 공부에 수 년을 쏟아붓는 건 너무나 위험하다. 사회는 빨리 변하고, 개인도 피벗을 쉽게 해야 하는데 고시란 놈은 그걸 막는다. 고시가 폐지된 이유다. 


아이러니한 점은 합격한다고 해서 그게 곧바로 업무 능력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디서든 재교육 과정은 필수다. 사람을 매몰시키고 하나만 바라보게 하는 시험 및 공채 제도가 사회적으로도, 해당 조직에게도 비용인 이유다.  






기수라는 이름의 스노우볼




시험에 올인하다보니 합격한 곳과 나를 동일화하는 오류가 잦다. 합격 끗발이 인생의 마지막 끗발인 것처럼 으스대는 친구들의 이야기는 우리와 그리 동떨어져있지 않다. 스카이, 삼성맨 등 다양한 간판의 사회다. 그러다보니 의리를 강조하는 기수 문화도 생긴다. 


조직의 케미를 증진시키는 작용도 있지만, 기수 바깥의 사람을 승진에서 제외하고 차별하는 부작용도 있다. 공채가 아닌 경력직은 무조건 ‘용병’으로 보고, 융화시키기는커녕 배제시키는 문화는 한국 고인물 기업의 고질병이다.




공채, 이제는 안녕을 부를 시간




공채는 고도 성장이 예측되던 시기에만 가능한 제도다. 많은 이가 채용문의를 넣고, 이를 받을 수 있으니 공개 채용을 진행한다. 수시 채용으로 생기는 비용을 줄이고, 최대한 많은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기 때문에 효율적인 동시에 성장을 전제로 해야 한다. 


또한 누구나, 아무 데나 가도 1인분할 수 있게 만드는 컨베이어 벨트와 같은 구산업에 어울리는 제도다. 개인의 세세한 역량을 보지 않고 그냥 성실한 사람을 갖다두면 어떻게든 결과물이 나오는 분야에 어울리는 제도다. 산업이 고도화될수록 개별 노동자의 세세한 역량이 중요해진다. 공정 라인을 돌려야 하는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공개 채용 제도로 인재를 쓸어모으고 랜덤하게 뿌리는 현재의 제도에서는 인사팀도, 현업 부서도, 심지어 합격자도 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삼성 등 대기업 계열사는 공개 채용 제도를 폐지하고, 현업 부서에 인사 권한을 주고자 했다. 공채 제도의 해체는 전세 제도의 해체와 닮았다. 


대기업은 공채를 해체하고, 경력 있는 신입을 바란다. 재교육 비용도 덜하고, 갖고 있는 네트워킹을 통해 무언가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사 연수는 업무 역량과 관계없이 무용하고, 제대로 된 교육도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은 신입은 어디에서 역량을 쌓는가이다.


간판을 바라는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는 한국의 끗발 문화 때문이다. 첫 끗발이 개끗발이라는 건 한국 어르신들의 가르침이다. 간판을 보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어디에서 첫 직장을 시작하냐로 판단하고, 어디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하기에 그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큰 곳에서 시작하려고 한다. 


저자는 미국의 기자는 로컬에서 시작해 뉴욕타임즈와 같은 유명 기업으로 이직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불가한 이유는 그런 사다리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공채 제도로 인해 성골 문화가 강하고, 그러다보니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깔아보는 문화가 있다.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올라가는 경우를 개천에서 용난다라고 묘사하는 이유는 그만큼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있다는 신뢰를 만들어야 한다. 채용 과정은 투명하고 공정하게 돌아가게끔 제도를 고쳐야겠지만, 동시에 아래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신화와 같은 믿음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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