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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Nov 11. 2018

'막내'들은 어떻게 '의지'를 만들고 있을까?

사실, 우리 모두는 지망생이다

오늘은 참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과 함께 곤지암 근처 화담숲을 갔다. 미세먼지 하늘을 뚫고 보이는 단풍잎은 오랜만에 교외로 나갈 핑계를 줬고, 막걸리 한 잔은 적당히 빨개진 얼굴로 애들에게 부비댈 핑계를 줬다. 삶은 핑계덩어리다.  


모든 비생산적 시간은 생산을 위한 재료다. 겐지스강에서 멍때린 시간들도 여행 썰 풀 재료가 되고, 눈물나게 슬펐던 이별과 너무나 소중해 하루하루 기록했던 시간들도 좋은 재료다.  


지망생은 그 자체가 재료다. 무언가를 지망해 걷고 있다. 완성품이 아니다. 최종 생산품을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태우는 나무다.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은 세상 모든 지망생의 이야기다.  


세상 모든 사람은 ING다. 우리는 모두 도착점을 향해 열심히 갈 뿐이지, 도착한 사람은 극히 소수다. 완성형 인생이란 없다. 사실 우리 모두 지망생이다.  


지망생은 특히 그렇다. 취업준비생, 영화감독 지망생, 아이돌 연습생 등 이름표만 다르지 모두 ING다. 문화산업에 종사하길 희망하는 학생들은 특히 그렇다. 도제식 문화의 중심지이자, 한국식 착취 문화의 중심지인 그곳에서 ING인 사람들은 ING중의 ING다.  


영화 감독은 시험으로 탄생하지 않는다. 길고 긴 막내 생활과 좆같은 현장을 뚫고 하나를 입봉시켜야 한다. 이 과정은 너무나 소중하지만, 너무나 쓸모없다. 그 어디에도 써먹을 수가 없다. 도전과 실패 자체가 이야기거리가 되는 CPA, 사법고시와 다르다. 실패하면, 진짜 실패다.

영화 관련 학과가 약 150개가 있다. 이 책은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영화 감독 지망생을 인터뷰했다. 좋게 말해 감독 지망생이지, 그냥 ‘막내’들이다.  


영화산업은 꽤나 특이하다. 아니, 콘텐츠를 제작하는 창의노동자 전부가 상징을 생산해 가치를 창출한다. 대중에게 어필하는 영향력이 그들의 생산물이다. 손에 잡히는 제품도 아니고 눈에 보이는 건물도 아니다. 묘한 무형의 상징을 만드는 게 그들 일의 대부분이다. 


막내들의 가장 큰 적은 뭘까?


이 과정에서 특정 기업에 고용되지 않은 사람들은 그냥 ‘백수’다. 수많은 막내와 지망생들은 치열하게 자신과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의 장소는 먹고사니즘과 고인물되지 않기다. 꿈을 타협하라고 말하는 먹고사니즘과 치열하게 협상해야 한다. 가끔은 편의점에서, 가끔은 카페에서, 가끔은 노량진 학원가 촬영알바로 협상한다.  


고인물되지 않기도 문제다.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모의고사로 내가 어디가,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감독지망생은 다르다. 숫자로 측정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입봉과 등단에서 떨어지면, 왜 떨어졌는지 알 수 없다. 그 점에서 본인 스스로에게 갇히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해야 한다.  


책에 나온 이들은 편집은 우울하지만, 즐겁다고도 한다. 현장은 행복하지만, 괴롭다고도 한다. 이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열정이 아니다. 이들은 열정으로 자신을 불태우기보다 의지로 버틴다. 아니, 의지를 만들어 낸다.  


그 전쟁터 바깥에 있는 우리는 그들을 다르게 바라봐야 한다. 열정 대신에 의지를 붙이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 상황을 스스로 개척하고 버티는 사람을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능동적 주체로 봐주는 게 예의다. 그게 인지상정이다.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


이 책은 영화감독지망생을 다뤘지만, 이 곳에 비춰지는 청년들은 한국 사회 다수 20대를 대변할 수 있다. 20대는 미생이고, 미생의 다른 말은 ING니까. ING는 곧 지망생이니까. 우리 모두 어딘가를 지망하니까. 


읽어보니, 영화산업과 유학은 닮았다. 완생까지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고, 중간에 그만두면 뭣도 아니게 된다. 이러다보니 진입에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긴다. 장기적으로 이들이 그리는 예술도 양극단으로 나뉠 듯하다. 보는 시각이 왜곡될 수도 있다. 창의노동은 본인의 시각을 파는 거고, 본인의 시각은 배경에서 나온다. 또이한 배경에서 나오는 또이한 시각은 진부일뿐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며 마무리 해보자. 비생산적인 시간이라고 칭하는 기준은 물적 생산의 기준이다. 반대로, 이 사람들은 그 시간동안 끊임없이 자신과 싸우며 의지를 생산한다. 비생산적이지만, 가장 생산적인 의지가 채우는 시간이다. 


이들의 의지는 어떻게 될까. 이 책 역시 무언가 답을 내리진 않는다. 오히려 물음표의 연속이다. 이들의 삶을 보여주며, 수많은 막내들이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읽다보니 영화판 막내에서 지쳐 다른 곳으로 향한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인내와 끈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언론에선 '미생'이라 묘사할 사람들이 무언가 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담은 책이다. 수많은 무명들을 위한 시스템은 무엇인가 고민할 수 있는 책이다.  


- 이 책은 북저널리즘 홈페이지에서 봤다. 디지털로 책을 본 건 오랜만이다. 묘하게 눈에 안 들어온 것 같지만, 보면서 바로바로 메모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중엔 홈페이지에서 하이라이트 및 메모기능도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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