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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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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Nov 18. 2018

요가일기 - 항상, take it easy

타케이테아시. 

어제보다 오늘 더 늙고, 살찐 몸을 이끌고 한강진역에 갔다. 하늘은 흐리고, 기온은 낮았고 사람은 많았다. 개다리춤을 추는 자세로 친구의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 흐린 날씨에 선글라스를 끼고 지나가는 커플, 골목에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는 승용차는 주말 오후 한강진의 변하지 않는 미쟝센이다. 




몸은 비루해졌고, 수업은 빡세졌다. 완전히 무릎을 꿇고, 엉덩이로 발뒷꿈치를 눌러 발목이 땅에 붙었다. 이 자세로 여러 아사나를 하다보니, 시작부터 다리가 벌벌 떨린다. 겨울맞이용으로 120% 충전된 셀룰라이트는 배꼽과 요추를 강제 이별시킨다. 




이번 달의 자세는 까마귀자세다. 강철 복근은 없고, 유연성도 없어 시멘트 같은 몸뚱아리로 까마귀자세를 했다. 다리 안으로 어깨를 집어넣고 고개를 앞으로 쳐들었다. 엉덩이를 하늘 위로 올리니 몸이 기우뚱거린다. 어깨는 허벅지에 기대고, 허벅지는 다시 팔에 기댄다. 팔은 땅에 기댄다. 




아, 내 극세사 팔이 가련한다. 거대 몸뚱아리를 지키는 게 저놈의 극세사 팔이라니. 새벽에 떨어진 인도공항보다, 7시간 연착된 바라나시행 기차보다 더 가련한 운명이었다. 




드렁큰타이거가 말했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마음 안에 있다고. 나는 말한다. 진짜는 머리서기라고. 간지도 머리서기고, 고통도 머리서기다. 까마귀자세는 개길 만했는데, 머리서기는 도통 안됐다. 간지럼 참다가 침 흘리는 박명수 표정으로 열심히 머리서기에 개겼다. 까마귀자세부터 머리서기자세까지 열심히 하라고 채찍질 하시는 선생님이 악마 같았다. 




일단 팔꿈치를 어깨넓이로 벌리고, 깍지를 껴서 삼각형을 만든다. 그 안에 정수리를 갖다대고, 다리를 가슴 쪽으로 당긴다. 조금씩 전진한다. 전진할수록 미쉐린 타이어 뺨치는 내 대뱃살 놈이 걸리지만, 어쩔 수 없다. 스탠바이 웬디처럼, 상황이 어떻든 가장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은 전진이다. 




가장 합리적인 결론이 최대 행복을 가져오진 않는다. 성공은 수많은 시도의 산물이다. 즉, 내 전진은 실패했다. 전진하고, 전진해서 오른 허벅지를 가슴 팍에 갖다댔다. 왼쪽을 당겨야 하는데, 안된다. 당기는 순간 자빠진다. 어깨를 쭉 빼고, 옆구리 힘으로 버티고, 허벅지와 가슴을 밀착시켜야 하는데 딱 2가지가 문제였다. 처음과 끝. 그래 처음부터 끝까지 문제였다. 




"현모님은 너무 조급해서 그래요" 




셔츠의 목자락을 깨물고 땀을 뻘뻘 흘리며 넋놓은 표정으로 숨쉬는 내게 선생님이 말했다. 너무 조급하게 해서 자세 교정이 안 된다고. 다리를 전진시키다가 빠진 어깨를 다시 집어넣고, 한 발자국 전진해야 하는데, 나는 그냥 무턱대고 전진하다 자세가 무너졌다. 




조급하다는 건, 남을 신경 많이 쓴다는 거다. 빠르게, 조급하게 한다는 건 나라는 축을 남에게 두는 일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보다 조금 먼저 하려다가 아예 망가진다. 조금 빠르게 가려다가 훅 가버리는 고속도로 과속처럼, 후딱 하려다가 다 망가진 셈. 




생각해보니, 오늘 계속 인선누나한테 "누나 돼?", "휴 다행이다 ㅎㅎ(누나도 안됐음)" 라고 말했다. 뭔가 나만 뒤쳐지는 기분, 나만 못하는 기분이 싫었다. 




생각해보면, 참 웃긴다. 이 자세가 유독 잘 되는 사람도 있고, 저 자세가 안되는 사람도 있다. 허영만 아저씨가 세상 사람 모두 '꼴'이 다르다고 하듯, 내가 잘하는 거랑 남이 잘하는 거는 다르다. 자꾸 마음의 축을 남에게 두고, 집단 내 경쟁으로 두다보니 몸의 축도 무너진다. 




그래, 조급함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주체적인 시선이 아니라, 객체적인 시선으로 남을 보고 기꺼이 객체가 되어 스스로를 비교했던 지난 태도의 결과들 말이다. 




무릎을 꿇고 엉덩이로 발목을 두르면 하반신 전체가 저릿해온다. 선생님은 그 자극과 불편에 흔들리지 말고,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하라고 했다. 불편하다고 다리를 바로 풀지 않고, 들숨으로 등과 배를 꽉 채웠다. 아주 조금은 편해졌다. 아니, 조금씩 편해졌다. 




28살 하반기에 맞닥뜨린 가장 큰 변화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었다. 대학원생 누구, 제작자 누구, 뭐거시기 어쩌고 누구로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평소에 뭘 좋아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마치 새로 산 레고를 하울링하듯, 아주 조금씩 나를 하울링하고 있다. 




음, 집가서 아주 조금씩, 천천히, 전진해서 머리서기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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