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IMF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글이 국어 교과서 참고 자료로 쓰였고, 유난히 파란색 화살표가 많던 뉴스를 기억한다. 당시만 해도 빨간색보다 파란색을 좋아하던 나는 그 파란색 화살표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통일성에서 짜릿함을 느꼈다. 그 파란색은 어떤 누군가의 피눈물이었겠지.
그 피눈물의 기억이 영화가 됐다. 국가 부도의 날이다. 이제 IMF가 무엇인지 모르는, 00년생이 아이돌이 되는 세상이다. 굳이 이 시기에, 국가 부도의 날이 기획된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많은 이들이 '빅쇼트'를 기대하며 개봉을 손꼽아 기다렸을 테다. 소재를 차치하더라도 김혜수, 유아인, 허준호, 조우진 등등 라인업이 짱짱하다.
까고 보니, 빅쇼트는 아니었다. 오히려 기초적인 사실관계 (한국은행 총장이라든지)마저 틀린 걸 보니 기초 공사가 꽤나 부실하나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사실관계 틀렸다고 욕하지는 않으나, 너무나 기초를 틀려 어떻게 쉴드가 불가하다.
IMF를 모르는 이가 이 영화를 보고 당시를 배우면, 망하기 십상이다. 블록버스터 공식에 따라 감정 과잉이고, 선악 구도에다가 기초 사실마저 틀렸다. 국가 부도의 날은 무당 같은 영화다. 그때를 기억하고, 한풀이하기 좋은 영화다. 누군가는 그 영화를 보고 눈물흘리고, 누군가는 그때를 기억한다. 좋은 영화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훌륭한 감정풀이 무당이다.
국제시장이 그랬다. 노인들을 위로하고, 관객들에겐 적당한 재미를 줬다. 부부싸움하다가 사이렌이 나오자 태극기를 보고 경례하는 나름의 블랙코미디도 넣었다. 625부터 1990년대까지 격동의 근현대를 겪은 많은 사람의 기억을 넣었다. 1987도.
콘텐츠란 무엇인가. 재밌으면 장땡이다. 그래서 어렵다. 투자한 만큼 아웃풋이 예상되는 기타 재화와 달리 콘텐츠의 '재미'는 참으로 주관적이다. 그래서 누구나 재밌게 느낄 수 있게 여러 자극적인 요소를 넣는다. 그래서 조금은 사실과 달라지고, 조금은 과장된다. 올바른 사실 관계를 전달하는 건 뉴스로 충분하다.
하지만, 역사를 소재로 한 콘텐츠한테도 그런 잣대를 들이대도 될까? 산업화, 민주화와 달리 IMF라는 구체적인 일화를 주제로 잡은 국가 부도의 날은 좀 더 진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지만, 많은 이가 여전히 몸으로, 기억으로, 피와 땀과 눈물로 기억하고 전문가가 분석한 IMF가 이렇게 왜곡되어도 되는가. 영화는 영화일뿐이라지만 집단기억이자 많은 이가 그 상처를 공유하는 IMF를 소재로 한 영화라면 그 잣대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국가 부도의 날은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주춤해도 흥행은 될 거다.
빅쇼트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7~8년만에 개봉됐다. 그만큼 공을 많이 들였을 테다. 감독과 배우 그리고 작가들이 어떤 지사적 신념을 가지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만큼 높은 퀄리티를 보였다.
IMF 구제 금융 이후 20년이 지났다. 주류 콘텐츠 제작자들에게 지사적 신념을 바라진 않지만, 겨우 이 정도라는 게 아쉽다. 언론은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 민간 기업이 만든 콘텐츠에 공적 기능을 바라진 않지만, 많은 이가 공유하고 다시 되짚어봐야할 지점을 이렇게 그려내는 건 얼마나 비윤리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