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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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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Dec 15. 2018

가끔 무기력하다.


명일역에 스타벅스가 생겼다. 이 동네에도 스타벅스가 생기다니, 고덕동 이놈 대견하다. 왜 이제 와서 생겼을까 생각해보니, 맞은편 (구) 삼익그린아파트의 재건축이 곧 끝난다. 내가 사는 집은 이 근처에서 가장 난쟁이다. 작지만 착한 아남아파트 파이팅. 집마저 ANAM아파트라니. 




2층짜리 스타벅스는 신축건물에 들어왔다. 2층에 앉았다. 콘센트는 없고, 묘한 새집 냄새가 난다. 자리 적다. 이거 이거 대단지 아파트에 이런 작은 스타벅스라니. 




구석에 앉아서 이런저런 일을 했다. 오늘은 참 게으르게 보냈다. 집에서 치킨을 시켜 먹으며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봤다. 그래, 스페인 여행할 땐 저기 가봐야지. 점심을 먹고, 드라마를 보고 약속 하나를 끝내고 동네에 왔다.




흠, 오며 가며 읽은 기사가 생각난다. 이렇게 고급진 대단지 아파트가 속속 들어오는 서울시에 주거빈곤 아동이 23만 명이라고 한다. 구의역 김 군이 아스라이 기억에서 사라질 때, 충남에서 또 다른 김 군이 사망했다. 일하다가 죽다니. 살기 위해 일하는데, 일하다가 죽다니. 




그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내가 가진 행운을 생각한다. 운이 좋아 위험한 일을 하지 않아도 입에 풀칠을 할 수 있고, 운 좋게 이런저런 여행도 할 수 있고, 운 좋게 이런 글을 쓸 수도 있다. 가끔은 몸도 아프지만 가진 것에 감사할 일이 더 많다.




그만큼, 뉴스를 읽다가 숨이 막힌다. 왜 누구는 일을 하면서 죽어야 하고, 왜 누구의 유년시절은 단칸방에 갇혀야 하는가. 슬픈 만큼 화가 나고, 안타까운 만큼 속이 탄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약간의 기부와, 세금을 성실히 내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는 걸까. 




정치인들의 허울 좋은 헛소리와 가진 사람들의 무책임함 속에서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그 빈곤이 모든 삶의 기억이 된다. 무엇보다 가장 슬프고 가장 부끄러운 건, 내 안온하고 평온한 일상이 누군가의 희생과 피눈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다. 




시간이 갈수록, 뉴스와 멀어진다. 바뀐 건 대통령 하나고, 사람들의 분노는 제도를 바꾸지 못한 게 아닐까. 백날이고 페북과 카톡방에서 화를 내고, 소리쳐봤자 바뀌는 게 무엇일까. 무기력하다는 핑계로 문제를 외면하고 바꾸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시민이 사회에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대체 바뀌는 건 무엇인가. 정부를 탓해도, 사회를 탓해도, 그리고 나를 탓해봤자 느는 건 탓이고, 남는 건 슬픔과 회한이다. 




사람은 바꿔 쓰는 게 아니라는 비아냥엔 '사람은 바뀐다'라고 믿고, 그래 봤자 변하는 거 없다는 조소엔 '사회도 바뀐다'라고 말한다. 근데, 대체 무엇이 바뀐 걸까. 누군가의 지갑은 두꺼워지고, 누군가의 집은 넓어지고, 누군가의 자산은 늘었지만 수많은 김 군과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세월 좋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내 행운은 그들의 불운과 얼마나 연결됐을까. 




내 안온한 삶은 그들의 눈물과 슬픔 그리고 빈곤과 공존한다. 내가 누리는, 내 삶의 출처는 누군가의 희생이다. 사회에 열린 수많은 과실은 그들의 출처에 얼마나 떳떳할 수 있을까. 아아, 삶은 역겨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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