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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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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Dec 30. 2018

첫 동양인.

우리는 누군가의 처음이었다. 그게 첫사랑일 리는 없다. 그냥 난 누군가의 첫 동양인이었다.


여행하다보면, 그 나라 아기들이 나를 유난히 신기하게 볼 때가 있다. 인도 오르차가 그랬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외국인이 거의 없었다. 거기서 만난 애들은 외국인이 신기해서, 동양인이 신기해서, 내 얼굴이 신기해서 봤다. 왜 얼굴이 신기하냐고? 묻지 말아줘 ㅠㅠ


걔넨 영어를 못하고 난 힌디를 못하다보니 대화가 안됐다. 비슷한 경험은 남미에서도, 바르셀로나에서도 있었다. 글로벌 시다지만 여전히 아이들에게 나는 신기하게 생긴 애다. 마 이게 조선의 을굴이야 인마.


첫날 저녁에 밤거리를 돌아다니는데 매서운 누나가 내 손목을 잡더니 술집에 가자 그랬다. 엄청 진한 향수와 엄청 진한 화장 때문에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다. 미안한 것도 없지만 쏘리라고 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가게 이름을 검색해보니 역시나 매서운 가게였다.


공익 근무를 할 때, 공익들이 회식 이후에 누나들 나오는 술집에 갔었다고 들었다. "형 어제 좋은 데 가셨어요?"라고 말하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전까지도 관계 맺기 귀찮아서 존대했지만, 그 이후로 더 열심히 존대했다. 난 공익 중 핵아싸였다. 그냥, 별로였다. 개중에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괜히 꺼려졌다.


공익 근무 중 좋았던 점 하나는 참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군 복무하다가 암에 걸리신 분, 진짜 분노조절 공익(자기 좋아하는 반찬 못먹었다고 반찬통 들고 날뛰었다), 중졸, 고졸, 매서운 분들까지. 내 세계는 참으로 좁았구나 싶었다.


병원에서 일하는 분들은 대부분 종교가 있었다. 특히 나이 많은 분들일수록. 궁금해서 친한 간호사쌤한테 여쭤보니 아무래도 예전에는 일이 더 험했고 (태움 등), 사람 죽는 걸 보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한다. 내 근무지엔 성당과 불당이 같이 있었고 의료진과 환자 모두 오고 갔다.


그러다보니 나이 많은 분들 중에선 특유의 보수적인 냄새가 많이 났다. 동성애라든지, 마귀라든지. 동성애자가 우리나라 역사에 유구했듯 그들에 대한 혐오도 유구했고 선생님들도 그 문화의 일부였을 뿐이다.


인종차별을 몇번 당해보니 기분이 나빴지만, 결국 그 사람들도 그게 나쁜 건지 몰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나쁜 행위를 조장하는 일은 쉽지만 막기는 어렵다. 그게 나쁜 거라고 말하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매서운 누나들을 피하고, 근무지에서 그 문화를 피하고, 여러 차별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그들보다 운좋은 환경에서 운좋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 운좋게 그거 하지 말라는 사람들 옆에 있어서다.


누구보고 빻았다느니, 혹은 그들이 미개하다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약간의 부채감이 느껴진다. 그냥 내가 운이 좋은 건데, 시쳇말로 따뜻하게 자라나고 좋은 환경에서 화이트칼라가 될 수 있던 먹물이 누구보고 빻았고 미개하다고 말하는 일은 부끄럽다. 유학반 애들의 자랑하듯 혀를 풀고 하는 영어 발음이 재수없게 느낀 감정이 누군가가 내게 느낄 감정이다.


아마 내가 그들의 첫 동양인은 아니었을 거다. 그들을 다시 만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내가 더 용기있었다면 그게 나쁘다고 말하는 첫 동양인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많이 무섭지만. 한국에서라도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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