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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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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an 03. 2019

전쟁의 참상은 아이의 얼굴을 했다

세비야에서 쓰는 스윙키즈 후기 : 스포있음. 



방금 세비야 플라멩고 박물관에서 플라멩고를 봤다. 1시간 동안 열정적으로 발을 구르고, 기타 반주에 맞춰 추는 댄서들에게 감탄했다. 내 옆에 있는 외국인 할머니는 "내가 본 남자 댄서 중 최고였어. 뉴욕에서 본 공연보다 더 최고였다구! 이 공연이 첫 플라멩고라고? 오, 그럼 진짜 축복받은 거야!" 라고 하더라. 어디서든 할머니에게 인기 많은 꿀꿀이 스타일.


아이러니하게도, 세비야에서 플라멩고를 보는데 계속 스윙키즈가 생각났다. 희열을 느끼는 표정으로 발을 구르는 남자 댄서에게서 도경수가 보였고, 드레스를 휘날리며 춤추는 여자 댄서한테서 박혜수가 보였다. 


스윙키즈. 다시 봐도 꽤나 잘만들었다. 편집 리듬감은 뛰어나며, 소재를 녹여낸 방식도 맘에 들었다. 음악영화라고 포장한 마케팅 포인트가 함정이었다. 마치 스카우트 느낌. 


단점도 많다. 중간에 긴장이 흩뿌려지고 리듬감이 확 죽는다. 스토리에 텐션이 떨어지니 집중이 안되고 산만해진다. 사람들을 미치게 하는 댄스씬이 생각보다 적다. 의외로 기억에 남을 만한 댄스씬이 없다. 수가 적으니 다 기억은 나는데, 임팩트 쩌는 한 방이 없다. 라라랜드하면 그 언덕의 댄스씬과 오디션 장면이 떠오르고, 비긴 어게인하면 클럽에서 공연장면에서 감동이 느껴지는데 여기는 영.


근데, 의외로 캐릭터들이 재밌다. 무엇보다 재밌는 캐릭터는 그 꼬맹이. 영화에서 꼬맹이는 시작부터 도경수한테 앵기는 주체사상의 선봉자다. 인민영웅의 동생인 도경수한테 앵긴다. 그런데, 애라서 그런지 감화도 쉽게 된다. 초콜릿에 감탄하고, 탭댄스에 녹아내린다. 순수하다.


순수해서 더 쉽게 넘어간다. 그 아이는 북한의 남진통일, 주체사상에 다시 감화되어 미군을 죽이지 않은 도경수를 밀고한다. 해맑은 표정으로 탭댄스를 추던 애가 무표정하게 도경수를 바라보던 장면이 기억난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지만 참상은 아이의 얼굴에 드러난다. 사상과 종교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전쟁은 아무 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의 얼굴을 무표정하게, 혹은 잔인한 얼굴로 만든다. 너무나 순수한 나머지, 너무나 순진무구하게 그 사상의 이름으로 말도 안되는 비윤리적인 행동을 저지른다. 


도경수와 박혜수 그리고 잭슨의 표정은 시시각각 바뀐다. 자신의 친구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를 배반하거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평소라면 안 하는 일을 하고, 팀동료가 무참하게 살해되는 장면을 보는 사람의 표정은 굳건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아이의 표정은 변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소년이, 모든 것을 알고 확고하게 믿는 소년병이 됐다. 전쟁의 참상은 아이들의 얼굴에서 드러난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어른이 죽는다. 그 아이에게 잘못된 믿음을 준 팔다리 없는 그 친구도 죽고, 책임져야 할 도경수도 죽는다. 심지어 박혜수는 동생들에게 한 마디 하지도 못한다. 


남은 아이들의 표정은 어땠을까. 전쟁은, 아이들의 얼굴에 흉을 남기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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