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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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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an 07. 2019

포르투에서, 외할아버지의 담배 연기


도시 이동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 포르투에 계속 머물기로 했다. 리스본이 땡기지 않아서다. 딱히 큰 이유는 없다. 물론, 이러고서 댓글로 '리스본 존내 좋음'이러면 또 흔들리겠지만. 




오늘은 게을렀다. 여행에도 일요일이 필요하다는 글귀에 흔들렸다. 물론 1만 보는 걸었다. 느즈막히 일어나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숙소에 돌아와 다시 잤다. 에어비엔비 숙소가 나름 힙플 근처라, 괜찮은 카페가 숙소 바로 옆에 있었다. 그곳에 가서 조용히 '어른은 어떻게 돼?'를 완독했다. 카페 주인장이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11일에 있을 에스프레소 이벤트에 오기로 했다. 각기 다른 에스프레소를 먹는 일종의 시음회다. 




유럽은 애연가의 천국이다. 유모차를 끄는 부모는 마치 증기기관차의 증기마냥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유모차를 몬다. 강가엔 와인 한 병을 들고, 담배를 기타마냥 신명나게 빨아대는 형/누나들이 보인다. 




대학 친구들이 전부 흡연자라, 술먹고 한두 대 뺏어펴봤는데 도저히 맛이 안나서 못피겠더라. 집에 흡연자가 없는 내력도 한 몫했고.




아, 아니다. 외가 남자들은 전부 담배를 핀다. 할아버지, 큰삼촌, 작은삼촌 모두 담배를 폈다. 




그래. 내가 비흡연자지만 담배연기가 익숙했던 이유는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외할아버지는 10년 전까지 경비원으로 일하셨다. 젊을 적에 할아버지는 냉동차를 몰았고, 외할머니는 시장통에서 반찬을 팔았다. 뻔한 이야기다. 그 나이대 노인들이 그렇듯 취미라곤 없었다. 상경한 사람이라 친구도 없었다. 담배와 팩소주만이 유일한 벗이었다. 




태어난 이후 외가에 맡겨진 나는, 외할머니 /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삼촌들 장가가는 것도 다보고, 사촌동생들 태어나는 것도 봤다. 하지만, 이제와서 가장 생각나는 건 할아버지가 팩소주를 마시면서 담배피는 모습이다. 




경비원 밤근무를 끝내면, 할아버지는 항상 다음날 늦게까지 안방에서 코를 골며 주무셨다. 부평이었나, 부천이었나 맨날 헷갈리는 그 동네에서 내 나이대의 친구라곤 없었다. 그 빌라 바로 옆엔 공단이 있었다. 외할머니는 어리고 빨빨대는 여섯 살의 운동량을 받쳐주기엔 힘드셨다. 놀아줄 수 있는 거라곤 외할아버지뿐이었고, 난 할아버지가 일어날 때까지 마징가제트 비디오를 보며 티비 앞에 입을 헤벌리고 앉아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장에 갔다오면 항상 할아버지는 팩소주 하나를 사고 발코니에 가셨다. 길다란 담배를 뻐끔뻐끔 피시고 연기를 길게 뿜으시면 난 그 연기를 잡으려고 팔을 뻗었다. 마치 눈밭에서 뛰어다니는 강아지마냥 할아버지의 연기와 춤을 췄다. 나 혼자만의 춤. 




얼굴이 벌개진 할아버지는 남은 팩소주를 다 드시고 다시 누우셨고 난 티비에서마냥 연기를 도너츠로 만들어달라고 떼썼다. 할머니는 그게 보기 싫으셨겠지만 내 유일한 놀이는 그거였다. 




하루에도 팩소주를 세네 개씩 드시고, 담배를 반 갑씩 피우시던 할아버지는 술도 담배도 하지 않으신다. 내가 태어나자 주방이모일을 그만두신 외할머니처럼, 내가 대학에 들어가자 경비일을 그만두셨다. 나 때문은 아니고, 더이상 그럴 체력이 없으셨다. 




팩소주를 시원하게 빠시던 (이 표현만큼 어울리는 게 없다)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 백발의 골골대는 노인이 됐다. 진짜 노인네가 됐다. 안부 전화를 드리면, "현모냐? 그래 잘 지내라. 건강은 하고?" 라며 괄괄하게 답하시지만, 백발은 돌아오지 않는다. 할아버지한테 업혀 크던 손자녀석이 어영부영 사회인의 입구에 섰고, 할아버지의 젊음은 이제 빛바랜 사진 - 너무나 지겨운 표현 - 과 조금씩 옅어져가는 내 기억 속에만 있다. 




엄마는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 를 고생시키던 외할아버지를 미워했고, 나는 어느날 술에 취해 엄마한테 외할머니와 큰삼촌의 목소리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외할아버지 미워하지 말라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생각해보면, 내 지난 유년 시절의 유일한 끈은 외할아버지인데, 할아버지가 피시던 담배연기처럼 사라질까봐 겁나서 그런 게 아닐까. 




서울 돌아가면, 뵈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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