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 취업하기로 결정했을 때 내 심정은 제발 하나만 걸려라였다. 경쟁 레이스에 들어갔을 땐 앞과 위만 보는 게 수라장을 해쳐갈 도전자의 윤리라 생각했다. 그 도전에 최선을 다하고자 묵묵히 그 개미지옥을 뚫었다. 뚫고 나니 허무했다. 이제 나는 구현모로서가 아니라 어디 기업의 누구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게, 그 명함에 얽매여야 한다는 게 조금은 답답했다. 반팔티를 입어도 회사원이라는 신분이 넥타이였다. 그전까지의 나를 잃는 건가. 내 브런치는. 따봉은. 알트는. 청춘씨는 다 단절되는 건가 싶었다. 새로운 출발인 동시에 도살장에 끌려가는 아니 자발적으로 도축되러 가는 느낌이었다. 과거는 과거대로 내버려두고, 지금에 충실해야 하는데.
정확히 3가지가 날 살렸다. 첫 번째로 선배가 내게 준 프로젝트. 그 프로젝트는 스트레스였다. 퍼포먼스는 좋아야 하는데 내가 관여할 부분이 없었다. 선배가 꿈에 나올 정도니. 대신 이 프로젝트로 내 성질을 조금 알았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의미 있는 난관이 있어야 일한다고 느끼는 것. 피디의 마음일까. 제작자의 마음일까. 기획자의 마음일까. 선배에게 선배로서의 태도, 팀원으로서 태도, 회사원으로서의 태도, 제작자의 태도를 배운 만큼 난 너무나 플레이어가 되고 싶고 업계에 이름을 남기고 싶고 자발적으로 일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변태라는 걸 알았다.
두 번째는 퍼블리와 대학원. 퍼블리 제안은 음 뭐랄까. 두 개를 묶은 이유는 두 가지 모두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걸 느끼게 해 줘서. 퍼블리 프로젝트를 논의하면서 소셜미디어와 해외 미디어를 놓지 않고 팔로우업 한 게 큰 의미가 있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더 잘하고 싶었고. 첫 번째 만남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회사 다니면서, 대학원 선배한테 인공지능 산업조사의뢰를 받아 퇴근하고 했다. 두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첫째로 뇌가 굳었다. 오랜만에 리서치를 하니 잘 감이 안 왔다. 친구는 내가 무언가에 몰입을 잘한다는데 그만큼 쉬이 빠졌나 보다. 둘째로 글로벌은 항상 흥미진진하다는 것.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알 순 없지만 모든 재밌는 것은 알자.
마지막으론 루프. 무언가 마음의 빚이 있었고 아쉬움이 있어서 더 잘하고 싶었다. 특히 내가 관심 갖던 유료 콘텐츠에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우창님이랑 소담 누나와 너무 멋진 아웃스탠딩 준호 님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어 좋았다. 어쩌다 미스핏츠를 하게 된 지가 4년이 지났다. 뉴스에 뛰던 가슴은 콘텐츠와 미디어에 뛰고 치기 어린 정의로움은 조금 차분해졌다. 플레이어가 아니라 자격이 있을까 싶었지만, 오를 수 있어서 너무나 힘이 됐다. 지난 4년 간의 나는 해피엔딩이었다는 걸. 내겐 좋은 사람이 남았고 나도 누군가에겐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너무나 어려운 소원이 조금은 이루어졌길 바라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