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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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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Feb 04. 2019

세상 모든 부모에게 필요한 새로운 능력

리터러시.


"현모야 저런 거는 다 연기야. 진짜가 아니란다"


지금 와서 생각하는데, 우리 엄마의 성교육은 조금 달랐다. 무조건 보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니라, 포르노는 대부분 연기고 짜고치는 고스톱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심지어 꽤나 일찍 말씀해주셨다.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오기 전이니까 아마 초등학교 1~3학년 내외였던 듯하다. 덕분에 내 사춘기의 뇌는 "대체 어떻게 저런 연기를 펼치지?"라는 지적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중학교 청산학원의 과학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해주셨다. 사춘기의 앳된 성욕과 헛된 치기로 가득했던 우리에게 선생님은 "보통 그런 거는 주사를 맞거나... 그럴 거야" 라고 말씀하셨다. 포르노에 나오는 상황 대부분이 설정이고 거짓이기에 절대 허투루 믿지 말라고 하셨다. 포르노에 나오는 여러 어른들의 사정이 진실이 아니고 허구이기에 그런 것을 바라서도 안되고, 믿어서도 안된다고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 분의 말씀 모두 현실과 허구를 명확히 구분짓고 콘텐츠를 잘 흡수하라는 좋은 뜻이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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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학에 나오는 주요 개념 주 하나가 미디어 리터러시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미디어를 해독 내지 해석하는 능력이다. 쉽게 말해, 독해력이다. 뉴스 리터러시 혹은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단어로도 풀이된다. 당장 최근에 나온 개념은 아니다. 미디어가 킹왕짱이라는 1900년대 초반을 제외하면, 수용자는 항상 '지 꼴리는 대로 받아들인다'라는 게 정설이었기에 수용자가 갖고 있는 필터 혹은 해독 능력은 그때부터 각광받아왔다. 우리가 어릴 때 받아오던 신문읽기 수업도 그 리터러시 교육의 일환이다. 


2014년 이후로 떠오른 '기레기' 사태, 페이스북발 가짜 뉴스 사태, 유튜브의 선정적인 콘텐츠가 부각되면서 리터러시도 다시 주목받았다. 쉽게 말해, 저 놈의 언론 쉐키들을 그대로 믿으면 안되니까 본인이 잘 걸러 듣고 잘 해석해야 한다는 풍토 때문이다 (물론 한국식으로 보면 자기 꼴리는 언론만 그대로 믿자는 이야기다).


물론, 가장 근본은 스마트폰과 유튜브에 있다. 


우리 어릴 때는 부모님이 TV만 잘 간수하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우리가 세상을 접하는 통로는 첫 번째가 TV요, 두 번째가 컴퓨터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모바일 시대가 도래하면서 스마트폰도 막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이라는 놈이 우리 생활의 필수재가 되면서 부모의 통제 바깥에서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소비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모든 기술이 그렇겠지만, 잘 쓰면 이만큼 좋은 친구가 없고 잘못 쓰면 이런 요물이 또 없다. 여러 플랫폼이 활성화되고, 해당 플랫폼이 콘텐츠에 직접 손대지 않는 만큼 무분별하게 콘텐츠가 업로드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가 낳은 철구, 디씨가 낳은 카광과 윾머 그리고 한국이 낳은 일베까지 있으니 말이다. 배울 만큼 배운, 어른들의 사정을 아는 성인도 일베와 윾머에 푹 빠질 만큼, 이런 콘텐츠들의 중독성은 압도적이다. 


아이들에겐 더 치명적이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이게 제일 무서운 법) '삼일한', '운지', '느그XX', '페미 어쩌고저쩌고' 등 온갖 혐오 발언을 따라하기 십상이다. 우리 어릴 때를 생각해보자. 안좋고 자극적인 건 더 빨리 배운다. 


자극적인 콘텐츠가 호환마마처럼 아이들을 물고 저세상으로 끌고 가진 않지만, 부작용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콘텐츠와 현실의 차이를 알려줄 사람이 없다면, 누구나 해당 콘텐츠에 물들고 일생가(일상생활가능?)가 어려워진다. 


특히 이런 콘텐츠들이 개인 사생활 깊숙하게 들어올수록 공론화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시하기도 어려워졌을 테다. 예를 들어, 예전엔 60만 명이 동시에 봤기 때문에 문제 제기가 쉬운 반면에 최근엔 각기 다른 시점에서 조회수를 올리기에 해당 시청 경험이 파편화된다. 공유 경험과 대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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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통제는 헬리콥터맘, 싸커맘도 어렵다.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뒤주 같은 독서실 책상에 가두지 않는 한 답도 없다. 기계적 통제가 어려워서 아이들에게 현실을 분간하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게 최근 리터러시 교육의 골자다. 


그런데, 사실 어렵다. 부모도 인간이고, 생업에 치이다보니 교육할 시간이 없다. 더군다나 어디까지 어떻게 말해줘야 하는지도 모른다. 보통 옆에 딱 붙어서 저건 저거고, 이건 이거다라고 말해줘야 하는데 이게 쉬울까? 스크린이 작아지고 콘텐츠가 개인화되어 더 어려울 테다. 나 때는 말이야~ tv만 조지면 됐는데 이젠 조질 게 너무 많아 버려~


나쁜 콘텐츠와 현실을 분간하는 능력만큼이나 좋은 콘텐츠와 나쁜 콘텐츠를 분간하는 능력도 필요하다. 1) 해당 정보를 어디서 얻는지 2) 어느 경로가 믿을 만한지를 잘 구분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기에 정보 습득 경로를 아는 일도 중요하다. 유료 콘텐츠가 부각되고, 퀄리티 저널리즘이 키워드가 되는 세상에선 더더욱 중요할 테다. 


함정 하나가 있다. 사실 부모도 잘 모른다는 점이다. 뭐가 나쁜 콘텐츠인진 알겠는데, 대체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고 뭐가 좋은 콘텐츠인지 구분하는 일은 그동안 콘텐츠를 고민하지 않은 부모에겐 너무나 어렵기 마련이다. 성인물만 문제이던 시절에서, 다양한 관점에서 문제적인 콘텐츠가 많아진 시절로 넘어왔으니 더욱 그럴 테다 (다양성, 젠더감수성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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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예전엔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아이를 만든다고 했지만 이제는 좀 다르다. 성인된 이후에 요구받던 '세상을 볼 줄 아는 능력' 혹은 '독해력'이 이제 어릴 때부터 요구받는다. 아니, 좀 냉정하게 말해서 콘텐츠에 대한 리터러시가 없다면 이렇게 소음이 많은 세상에서 소리를 골라낼 수가 없다. 


가장 쉬운 방법은 금지다. 하지만, 어차피 볼 애들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본다. 스마트폰을 끼고 살고,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지금에 스마트폰 금지는 답도 없는 방침이다. 스마트폰을, 디지털 콘텐츠를 잘 소화할 수 있게 하는 리터러시를 가르쳐야 한다. 


방법이 문제다. 일단 아이들 옆에 더 있어야 한다. 같이 보고, 말을 꺼내야 한다. 저거는 진짜가 아니라 가짜다. 이런 건 나쁜 거고, 저런 건 좋은 거다 등등. 아이들과 함께 보면서 해주는 한두 마디가 아이들의 평생 리터러시에 큰 영향을 준다. 실제 리터러시 논문과 교육에서도 아이들에게 콘텐츠 비하인드더씬을 알려주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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