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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pr 16. 2019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많은 분들이 4월 16일을 말씀하시면, 5년 전의 그날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기억해야 하는 날은 그해 여름의 광화문 광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국적인 추모가 조금씩 잦아들자, 누군가는 '폭식'으로 투쟁한다며 광화문 광장에 피자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자유를 논하는 대학생들은 쳐맞을 자유를 논하고 싶은지 너나 할 것 없이 피자를 입에 게걸스럽게 쑤셔 넣었고, 선글라스를 낀 배불뚝 중년들은 그들이 나라의 기둥이라며 추켜세웠습니다.




사실, 그들만의 문제일까요? 익명성 뒤에 숨어 누군가는 어묵이라 조롱하고, 누군가는 유가족분들이 장사를 한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가족이란 보상금 단위로 보이는 존재인가 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1달도 지나지 않았는데, MBC는 보상금과 보험금을 이야기합니다. 보수 단체들은 천안함 장병들을 자기네 도구로 사용해 유가족을 공격합니다.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기 전에 천안함 용사부터 추모하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합니다. 




이제는 유가족의 언행 하나하나를 문제삼습니다. 약자는 항상 예민합니다. 하루하루가 본인을 둘러싼 싸움인 사람들에게 부처 같은 온화함을 바랄 수 없는데, 언론은 그들이 피해자스럽지 않다며 공격합니다. 쓰러지지 않고 당당하게 일어서서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가족에게는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며 공격하고, 집에서 슬퍼하지 않고 해외로 나가는 유가족에게는 아이들로 돈 벌었다며 수군댑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방지하고 타개해야 할지를 논해야 하는 언론은 이제 유병언 가문의 가십을 캐내고, 그의 아들이 어떤 치킨을 먹었는지 파헤치려 듭니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일간지들은 가십에 매몰되었고,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하겠다는 공영방송은 교통사고에 비유하고, 박대통령 기사 전진배치를 지시합니다. 급기야 세월호 참사 때문에 경기가 휘청거린다며, 만물세월호론을 펼칩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이제는 다 지나지 않았냐고, 정부가 보상하고 안전을 외치는데 대체 무엇이 문제냐고요. 진짜 문제는 저기에 있습니다. 




그해 여름 우리가 보여준 처참한 우리 사회의 민낯은 얼마나 나아졌을까요. 희생자와 피해자에게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며 재갈을 물리고, 일어서려는 유가족들에게 도움의 손길은커녕 매몰차게 거절하고 오히려 밀어버리는 이 냉정하고 사회말입니다. 




세월호는 단순히 앞으로 어떻게 제도를 정비하고, 예방대책을 마련해야 하는지 묻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여준 저 추잡한 민낯을 절대 잊지 말라고, 끊임없이 부끄러워하고 다신 그러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저 부끄러움입니다. 피해자를 공격해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정치인들, 진실은커녕 가십거리 보도에 매몰된 언론들, 피해자들에게 자신의 힘듦을 핑계로 핀잔주고 재갈을 물리는 나쁜 사람들에 대한 부끄러움 말입니다. 저 부끄러움에 대한 기억이야 말로, 우리 사회가 조금씩 나아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부끄러움으로 반성하고, 나아져야 합니다. 




5년 전 그날, 우리는 고통스러운 목격자였습니다. 동시에 그 후의 사회를 구축하고 만들어갈 사람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5년 전 그날을 억할 것이 아니라, 당시 우리 사회가 보여준 그 부끄러운 민낯을 기억합시다. 우리 사회가 다시는 피해자들에게 재갈을 물리고, 그들을 조롱하고, 그들을 등떠밀지 않도록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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