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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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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May 04. 2019

지금 보면, 학창시절은 부끄러움의 연속이다.





2002년 월드컵 직전에, 나는 전학갔다. 이사간 첫날엔 학교에 어떻게 갈 줄 몰라 그저 단지에서 나와 같은 학교를 다니는 듯한 학생 무리를 따라 등교할 정도로 동네는 어색하고 낯설었다. 다행히, 2002년 월드컵 앞에선 어색함은커녕 위아더월드였기에 난 자연스레 녹아들 수 있었다. 




그렇게 녹아들자 조금씩 보였다. 누가 강자고, 누가 약자고, 누가 외톨이인지. 키가 크고 눈이 조금 작고 말투가 어눌한 친구는 어눌하다고 놀림받고, 약간 누런 티셔츠를 입던 까만 친구는 까맣다고 놀림받았다. 통통했던 여자애는 통통하다고, 운동을 못하는 남자애는 기집애 같다고, 여자애랑 친한 남자애는 여자애랑 친하다고 괄시받았다. 책을 찢는다거나 때리는 왕따는 못 봤지만, 적어도 되도 않는 걸로 놀리고 괴롭히는 행위는 있었다.  




가해자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없는 방관자였다. 피해자기도 했다.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수련회 때 애들이 바지와 속옷을 한 번 벗겼다. 아마 지네끼리 장난치다가, 당시에 자던 내게 저지른 걸로 기억한다. 정색하고 욕했지만, 한동안 그걸로 놀림받았다. 그게 왜 놀림거리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해도, 나쁜 광경에 뭐라 할 수 없는 방관자였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비슷했다. 누구는 공부를 못한다고, 누구는 못생겼다고, 누구는 집이 못산다고 애들이 쉬쉬했고 바보로 몰아가고 멀리했다. 이제 기억이 흐릿해진 초등학교, 중학교와 달리 고등학교는 더 큰 죄책감으로 다가온다. 입시라는 중요한 시기를 앞두어서 그런지 더욱 더. 




외고의 분위기는 조금 치열했다. 생각해보면, 공부밖에 모르던 애들이 외고라는 타이틀에 기대어 기세가 오르니 따돌림도 있었고, 수군댐도 많았다. 누구는 가해자, 누구는 피해자, 누구는 자기 앞에 떨어진 공부에 몰입한 (물론 누군가에겐 그 공부가 도피처였다) 방관자였다. 누구는 적응하지 못해 전학을 갔고, 누구는 그저 혼자 다녔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싸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따돌리는 건 다른 일이다. 그리고 그 따돌림 앞에 가만히 있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부끄러운 일이다. 도망치는 건 도움이 된다지만, 방관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와서 부끄럽다고, 후회한다고 해봤자 무슨 도움이 되려나 싶다. 누군가에겐 너무나 행복했던 소중한 학창시절이 누군가에겐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자 악몽이다. 내가 그 악몽에 관련되지 않았다고 하기도 어렵다. 다시 생각해보니 떳떳하지 못하다. 




복도를 혼자 걷던 친구 옆에 내가 걸었으면 달랐을까. 낄낄대지 말라고, 놀리지 말라고 정색했으면 달랐을까라고 자주 생각한다. 당연히 달랐을 테다. 그래서 더 후회가 되고, 스스로에게 부끄럽다. 




며칠 전 씨리얼 영상은 그래서 아팠다. 부끄러웠다. 이제와서 미안해하고 후회해봤자 뭐가 달라지겠냐만은 내 안의 치사한 소시민성에 대해 끊임없이 반성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 같아서. 부끄러움만큼 반성이 내 몫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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