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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un 24. 2019

거울을 보면, 안보이던 진실이 보여

블랙 미러 에피소드 추천 : 추락, USS 칼리스터 

거울을 보면, 안보이던 게 보여


수염을 뽑거나 옷매무새를 정리하려고 거울을 보면, 못 보던 것들이 보인다. 약간 비대칭인 이목구비와 세수를 너무 세게 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붉어진 얼굴, 삐죽 튀어나온 코털, 곪을락 말락 하는 뾰루지, 어제 보고 오늘 보고 내일 봐도 못생겼을 얼굴까지. 거울이 그렇다. 하나만 보여주지 않는다. 좋든 싫든 모든 풍경을 보여준다.  


블랙 미러가 그렇다. 현대 사회의 검은 면을 보여준다는 블랙 미러는 단순히 현상 하나만 보여주지 않는다. 다소 기괴한 풍경이 주는 놀라움 뒤엔 약간의 씁쓸함이 이어진다. 그리고 그 거울 (블랙 미러) 은 나를 비춘다.  


추락

소셜미디어로 삶이 평가받는다면 어떨까? 얼마나 화려한 사진을 올리고, 이쁘게 삶을 전시하냐가 내 모든 사회생활에 영향을 준다면 어떨까? SNS 포스팅과 온라인 쇼핑 내역으로 개인 신용도를 평가한다는 회사가 있을 정도니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니다.  


소셜미디어로 이뤄지는 사회적 평판이 삶의 질을 결정한다는 이 설정은 황당무계하지만 현실성이 있고, 기괴하지만 나름 현실적이다. 기사에서 왕왕, 아니 현실에서 자주 보이는 남에게 갑질 하고 폭언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삶의 질이 떨어져야 정의구현이다. 반대로 타인에게 친절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은 삶의 질이 높아져야 인지상정이다. 나쁜 사람에게 징벌을 주고, 기계적이라도 선의를 베풀게끔 유인 구조가 짜인 상황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한다.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쾌와 불쾌를 표현할 수 없다. 내가 불쾌를 표하는 순간, 타인은 내 존재가 불쾌하다고 평가해 평점을 낮게 매기기 때문이다. 인간다움을 포기해야만 좋은 삶을 꾸릴 수 있다는 이 역설적 설정이 핵심이다.  


블랙 미러 시즌 3 1화 추락은 우리에게 묻는다. 직접 마주하지 않고 소셜미디어의 평판으로만 평가하는 사회, 사람 냄새는커녕 가식으로만 점철된 비정상적 유토피아에서 살 수 있겠냐고 말이다.  


단순히 소셜미디어, 가식, 평판을 비꼰 드라마가 아니다. 극 중 주인공 레이시는 나오미에게 쩔쩔매는, 속된 말로 무수리이자 빵셔틀이었다. 항상 나오미의 화려한 삶을 부러워했고 바랐기 때문이다. 화려한 파티걸이자, 학교에서 잘 나가고,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빼앗은 나오미처럼 살고 싶어 레이시는 평판에 목매달고 나오미의 폭언에 아무 말 않는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레이시는 에피소드 막바지에 가서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진정한 자유를 얻는다.  

우리는 항상 지금의 내가 아닌 내일의 나를 바란다. 그리고 그 내일의 나는 ‘나’가 아니라 내가 바라고 동경하는 타인과 닮아있기 마련이다. 어릴 때는 엄마 친구 아들이 되고 싶고, 조금 크면 금수저 동기처럼 되고 싶고, 더 크면 아내 친구 남편이 부럽기 마련이다.  


추락에서 말하는 자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평판에서 자유는 아닐 테다. 타인이 매기는 평점에서 자유롭다고 해서 마냥 긍정적이진 아니기 때문이다 (갑질 아저씨들을 보면, 평판이 삶에 영향을 줘야 정신 차릴 테다). 에피소드 마지막에 레이시가 행복해 보이고, 자유로워 보였던 이유는 학창 시절부터 이어진 나오미로부터의 주박에서 벗어났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 되고 싶고,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나를 억압해야만 했던 레이시에서 남들에게 당당하게 ’ㅈ까’를 외칠 수 있는 레이시가 됐으니까 말이다.  


USS 칼리스터 

내가 절대적 조물주가 된다면 어떨까? 심지어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을 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면?  


USS 칼리스터는 초반 5분만 보더라도 감이 온다. “아, 이건 스타트랙을 비틀어놓았구나. 뻔하겠네.”. 근데 5분만 지나면 감이 안 온다. “아니 이건 대체 뭐지?” 


게임 개발자가 사람의 DNA를 채취해 게임 세계의 NPC로 만들 수 있다는 설정으로 진행되는 USS 칼리스터는 스타트랙과 토이스토리를 합해서 비틀어둔 재밌는 에피소드다. 비틀었다고 하지만 어둡지 않다. 곳곳에서 위트 있는 설정과 재치 있는 대사가 나온다. 하지만 꽤나 비장하다. 누군가를 섬기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 주체성을 얻고 여행을 떠난다는 메시지는 주체성과 생명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는 뒤틀린 토이스토리라고 불릴 만하다. 만들어진 생명체가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로버트 데일리에 의해 만들어진 나넷 콜 클론은 타 클론과 달리 주체성이 매우 뚜렷하다.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고, 그것이 막히자 세계 바깥의 자신에게 연락해 탈출 방안을 고안한다.


남성 조물주에게 핍박받던 여성이 그 줄을 끊어내고 새로운 세계로 여행을 간다는 메시지는 어찌 보면 유치하지만, 여전히 큰 떨림을 준다. 납작한 플롯이라 비판할 수 있지만, 여성에 대한 성적 도구화와 그 역경을 극복하고 존재론적 한계 (게임 캐릭터)를 극복하고 인간 플레이어와 동급 아니 그 이상의 여행을 떠난다는 플롯은 충분히 흥미로운 구석이 많다. 너드의 뒤틀린 인정 욕구가 빚어낸 에피소드가 아니라 주체성, 페미니즘, 토이스토리마저 비춰주는 좋은 에피소드다.  

참고로 이 에피소드의 무대가 되는 게임의 이름은 인피니티다. 게임이기 때문에 무한하지 않지만, 무한히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들에게 어울리는 배경 아닌가. 아, 이번 토이스토리 4의 주요 대사에도 이 단어가 들어간다. To the infinity and beyond!  




거울을 보고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머리를 만지고 나면 아주 조금은 정리된 내가 보인다. 조금은 차분해지고, 조금은 깔끔해진 나 말이다. 근데, 이 블랙 미러는 좀 다르다. 거울을 보면 깨끗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마음이 지저분해진다. 생각 없이 웃고 즐길 만한 에피소드가 아니라 생각할 지점이 많아서 그렇다. 그만큼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드라마다.  


블랙 미러를 보지 않았다고 하니 적잖은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그만큼 흥미롭고, 좋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일 거다. 이제 시작하는 만큼 더 재밌는 마음으로 블랙 미러를 볼 테다. To the infinity and bey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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