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세요 ㅊㅊ합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를 드라마로 보면 어떨까. 낯섦이 먼저일까, 반가움이 먼저일까. 이 허무맹랑한 질문에 정답을 낸 드라마가 있다. 바로 ‘기묘한 이야기’다.
한때는 너무나 생경했지만 이제는 너무나 익숙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드라마인 기묘한 이야기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SF+미스터리+어드벤처+소년 성장 드라마다. 10대 소년 소녀를 주인공으로 호킨스라는 마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문자 그대로 기묘한 이야기를 다뤘다. 예전 스티븐 스필버그의 슈퍼 8도 생각나고, 스티븐 킹도 생각나고, 러브크래프트도 생각난다.
원래 드라마를 보는 편이 아니다. 속도감을 중하게 여기고, 긴 거는 쉽게 보지 못한다. 최애 드라마는 몇 년 전에 나온 비밀의 숲 정도고, 그걸 제외하면 최고의 사랑이 생각난다. 아, 물론 내 최고의 드라마는 하이킥 시리즈다.
그럼에도 기묘한 이야기를 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일단 그동안 본 내 미드 취향에 맞는다. 난 미드를 호러와 판타지 위주로 본다. 엑소시스트, 슈퍼내추럴, 페이즈, 워킹데드, 하퍼스 아일랜드 정도. 남들 다 좋아하는 빅뱅이론과 프렌즈는 도저히 재미가 없고, 홈랜드와 하우스 오브 카드도 무언가 물리는 맛이 난다. 빅뱅이론과 프렌즈보다 하이킥이 재밌고, 홈랜드와 하오카보다 비밀의 숲이 재밌는걸?!
하지만 아직까지 SF+미스터리는 미국 드라마가 대체 불가다. 미국의 나와바리다. 자본력과 기술력 그리고 대본까지 완성도가 높아야 하니까 한국 드라마가 쉽게 넘볼 수가 없다. 그나마 최근에 나온 게 아스달인데…읍읍.
기묘한 이야기의 기묘한 매력은 아래와 같다
아빠가 집구석 창고에 두었을 만한, 내가 어릴 때 보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지금까지 있으면 엄마가 “아니 그걸 왜 갖고 있어 안 버리고”라고 잔소리할 만한 아이템이 많다. 너무나 무거워 휴대용이라는 의미가 없는 필름 카메라, 이제는 빌리기도 어려운 VHS, 트렌드가 바뀌는구나를 알 수 있는 패션까지.
기묘한 이야기는 80년대를 참 세련되게 그렸다. 아재 코드도 아니고, 현대적으로 해석한 ‘뉴트로’도 아니다. 영화에 이입이 방해되지 않을 정도로만 재현했다. 너무 도드라져 단순히 80년대 영화로 비치지 않을 만큼 말이다.
영화 설정은 참으로 미래적인데, 그림은 과거스럽다. 과거지만 겪어보지 못한 과거라 지루하기보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과거란 여기에 있다. 나 같은 90년대생과 00년생에겐 흥미로운 그림이고, 그 윗세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장치다. 현실성 없다는 비판보다 ‘와 저거!’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비디오 시대엔 구니스와 나 홀로 집에 가 있었다. 스트리밍 시대엔 기묘한 이야기가 있다. SF와 미스터리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소년 어드벤처와 성장 드라마다.
이미 성장이 끝난 아저씨와 아줌마가 아니라 이제부터 성장해야 하는 10대들이 주인공이다. 근데 그 10대가 뭐 능숙하고 유능하지 않고 딱 봐도 어설프고, 무언가 모자라다. 영화 ‘그것’의 주인공처럼 ‘루저’들이라 불리는 친구들이라 괜히 애처롭고 보다 보면 지질했던 예전의 내가 생각날 정도.
그런 소년들이 모여서 같이 역경을 해쳐나가니 이건 SF와 미스터리의 탈을 쓴 소년 만화다. 미국판 원피스요, 나루토요, 블리치요, 원펀맨이다.
누구나 사춘기에 방황하기에 소년들의 갈등과 로맨스에 공감한다. 심지어 주인공들이 시즌마다 성장하는 게 물리적으로 보이니 마치 내가 키우는 느낌이 나고, 시리즈에 더 몰입하기 마련이다. 마의 16세를 잘 넘을 수 있을지 걱정될 정도.
이게 무슨 의미냐고? 나 홀로 집에를 보면 항상 우리 집에 도둑이 쳐들어오고 내가 무찌르는 상상을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 집은 너무나 좁아 뭐 함정을 설치하기는커녕 그랬다가 내가 함정에 걸려 엄마한테 뒤지게 혼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드라마에 몰입하는 만큼 애정이 생기고, 애정이 생기는 만큼 더 보게 된다. 우리가 무한도전을 보며 과거를 추억하듯, 나중엔 기묘한 이야기를 보며 우리의 20대를 추억할 수도 있는 셈.
아니, 그리고 아역들 얼마나 이쁘고 귀엽습니까. 우리 윌 ㅠㅠ 마이크 ㅠㅠ 일레븐 ㅠㅠ 이러면서 나중에 다 그런다니까요. 이미 기묘한 이야기는 아역배우들에게 대표 프랜차이즈가 되었어요.
SF 하면 떠오르는 미드가 많다. 뭐 많다. 여하튼 많다. 그런데, 그 드라마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시즌이 지나갈수록 설정이 개차반 되고, 완결성의 이응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
그에 반해 기묘한 이야기는 시즌 내적 완결성 (1화~엔딩)과 외적 완결성 (시즌 1 ~ 시즌 3) 이 뛰어나다. 캐릭터 붕괴도 없고, 설정 붕괴도 아직까지 없다. 시즌 1을 보고 팬이 된 사람이나 2를 보고 팬이 된 사람이나 모두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물론 미드가 시즌 3까지는 멀쩡하고 시즌 4부터 귀신 같이 떡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음 시즌까지는 봐야 하겠지만 아직까지는 매 시즌이 준수하다. 블랙 미러가 시즌마다 평가가 들쑥날쑥한 것에 비해 기묘한 이야기의 평가는 매우 준-수하다.
또한 기타 SF+미스터리 드라마와 달리 세계관의 완성도가 뛰어나서 추후 스핀오프가 나올 가능성도 높다. 하다못해 만화책이라도.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타이틀이 퀄리티를 보장하진 않는다. 트레일러로 기대감을 부풀리고 본편으로 실망시킨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브라이트님…
단순히 수를 채우고, 마케팅용으로 허울 좋았던 오리지널이 아니다. 기묘한 이야기는 질적으로 뛰어난 오리지널이다. 단순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타이틀을 빼놓고 봐도 뛰어나다. 이미 게임이 나오고, 주인공들이 인기스타가 되고, 2016년 최고의 드라마로 꼽힐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팬덤이 확고하니까 더 이상 증명할 게 없다. 드라마를 게임으로 만들자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걸 만들 수 있는 드라마는 몇 개 없다. 팬덤이 뛰어나고, 세계관도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메인 플롯이 게임으로 구현해도 재밌어야 한다. 근데 그걸 다 해낸다.
기묘한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까. 콘텐츠 내용뿐만 아니라 넷플릭스 오리지널이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하다. 넷플릭스가 글로벌 플랫폼이 되었기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글로벌 프랜차이즈가 될 수도 있다. 같은 지점에서 완결성이 떨어져 비판받던 왕좌의 게임과 달리 아름다운 엔딩을 맞이하길 바란다. (언제 끝날지는 몰라요)
아, 홍대 기묘한 이야기 팝업스토어는 못 가봤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