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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모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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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Aug 30. 2019

모든 건 스텝

아님 말고

요즘 자취방 근처에서 킥복싱을 배운다. 최소 주3회 나가려고 (이번주 벌써 3회 완료) 노력한다. 다이어트 + 체력 기를겸 하는 거라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대로 킥복싱 동작을 배운다. 레프트, 라이트, 어퍼, 훅, 오른발, 왼발.


운동을 하다 보면 가지 않은 경지를 가게 된다. 오른 다리와 왼 다리는 오랜만에 허리 위로 올라온다. 라이트를 날릴 땐 상체를 비틀고, 오른 다리 뒷꿈치를 뗀다. 일상에 하지 않을 법한 동작을 하다 보니, 온몸에 새로운 자극이 온다.


별의별 동작이 다 있다. 이게 게임과 같아서 여러 콤보가 있다. 선생님과 미트를 치다 보면 마치 염라대왕 앞에 벌받으러 온 죄인처럼 고개가 숙여지고 예의 차리게 된다. 90도로 숙이고 헥헥대기 마련.


헬스를 다니든 킥복싱을 하든 응암천에서 러닝을 하든 모든 건 스텝과 숨쉬기가 기본이다. 근육 수축에 따라 숨을 쉬고, 팔을 뻗으며 숨을 쉬고, 달리며 숨을 쉬고 내뱉는다.


스텝이 꼬이면 뭐든 안된다. 선생님은 스텝 리듬에 맞춰서 왼손을 날리고, 오른손을 뻗으라신다. 스텝이 꼬이면 기우뚱 넘어지고, 다리가 안 뻗어진다. 달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숨이 흐트러지면, 숨쉬기가 망가지면 가뜩이나 힘든데 더 힘들더라. 아, 요가 때도 마찬가지였다. 주말에 일이 많아서 최근에 나가지 못했는데, 다시 등록해야지.


난 힘이 들거나, 집중해야 하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숨을 참는 버릇이 있다. 종목을 불문하고 모든 선생님들이 내게 꼭 숨을 쉬라고 하는데, 평상시에도 그런 버릇이 있다. 불행한 일이 생기거나 갑작스러운 일이 생기면 꼭 숨을 멈춘다. 그러다보니 크게 한숨을 쉬기 마련이다.


숨을 멈추면, 힘이 더 세게 들어간다. 왠지 모르겠다. 힘을 쓸 때 숨을 멈추는지, 숨을 멈추고 집중해서 힘이 세게 들어가는지. 내 근육은 그대로일텐데. 울버린이 될 것도 아닌데, 수업을 다녀오면 항상 그 부위 - 단어를 까먹었다 - 가 빨갛다.


큰일이 생겼을 때도 숨을 멈춘다. 그런데 숨을 멈추었다가 한숨을 크게 쉬면, 내게 닥쳐온 불행이 더 크게 느껴진다. 심장이 더 빨리 뛰고, 더 긴장되기 마련이다. 한숨이 일종의 심리적 트리거나 마치 온갖 불행이 내게 닥쳐온 것처럼 일종의 공황에 빠지게 만든다. 불행에 몰입하는 셈이다.


쉽게 질리는 성격이라 여러 운동을 거치는데, 그럴 때마다 호흡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어떤 펀치를 내뱉더라도, 어떤 펀치를 밪더랃, 어떤 아사나를 취하더라도 호흡은 그대로일 것. 어떤 상황에 있떠라도 내 흐름을 잊지 말 것. 회사든 사회든 시대든 어디에도 휩쓸리지 않게 내 호흡을 만들 것.


숨을 멈추는 이유는 단순히 그 순간에 세게 치기 위해서다. 근시안적이다. 스텝을 하는 이유는 그 경기를 (지금은 운동이지만), 그 운동 전체를 잘 마치기 위해서다. 더 큰그림을 봐야 한다. 어느 곳에 내 지향점과 목적을 둘 것인지.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내 흐름을 유지할 것. 내 목적을 잊지 말고, 그 순간에 너무 몰입하지 말고 조금 더 멀리서 맥락과 상황을 봐야 한다. 펀치를 내뱉기 위해서 킥복싱 수업을 듣는 게 아니고, 그냥 더 많은 무게를 들기 위해 헬스를 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오래 버티기 위해 요가를 하는 것도 아니다. 더 길게 운동하고, 더 건강해지고, 더 유연해지기 위해서.


그 큰 목표를 위해 필요한 것은 규칙적인 스텝과 숨쉬기고, 꾸준한 기본과 나만의 리듬. 어디에도 휩쓸리지 말 것. 목표를 잊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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