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현모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현모 Oct 17. 2019

집에 대한 시선들.


집은 귀찮은 곳.




집안일은 귀찮다. 집 바깥 일도 귀찮은데, 집안일은 더 귀찮다. 사실, 일은 다 귀찮고 재미없다. 쉬어야 하는 곳에서 일을 하려고 하니까 더 귀찮게 느껴진다. 




청소는 귀찮다. 청소기의 역사는 아마 개발자들이 가사를 귀찮아 하는 만큼 빠르게 발전하지 않았을까. 청소를 하고, 깨끗해진 방바닥을 보면서 청르가즘 (유사품 : 설거르가즘) 을 느끼지만, 그럼에도 귀찮은 건 귀찮은 거다. 하고 나면 좋은데, 하기까지가 가장 어려운 일. 




요리도 귀찮다. 혹자는 나를 위한 소중한 한끼라고 하지만, 그 한끼 뒤에는 망할 놈의 설거지가 있다. 먹고 드러누우면 좋지만, 다시 일어나서 설거지 해야 하는 게 이 비극의 끝이다. 여러분, 가장 좋은 한끼는 바깥에서 먹는 맛있는 한끼입니다. 그러니까 돈을 벌어야 합니다, 우리는. 




집은 편한 곳




집은 편하다. 대충 씻고 로션 바르고 방바닥에 누우면 이만한 천국이 없다. 인간은 드러누워 살아가게끔 설계된 동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침대에 퍽 누워도 좋지만, 방바닥에 대자로 뻗어도 좋다. 이 넓디 넓은 지구에서 맘편하게 이렇게 누울 수 있는 곳은 집밖에 없을 테다.




어떤 눈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아무 옷이나 대충 걸치고, 아니면 팬티만 입고 나자빠져있어도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는다. 그래서 편하다. 심사숙고해서 옷을 사고, 매무새를 정리하면서 옷을 입지만, 벗는 일은 간단하다. 대충 훌러덩훌러덩. 그만큼 집이 편하기 때문이다. 




집은 안전한 곳




힘든 일이 생기면 무심코 집에 가고 싶다고 한다. 지.옥.고에 사는 청춘이라도 집에서 얻는 심리적 안락함은 어디에 비교할 수 없을 테다. 침대 위에 전기장판을 키고 이불을 덮으면 세상 모든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집은 우울한 곳




가끔은 우울하다. 하릴없이 주말을 소진했을 때, 인스타그램 스토리즈에서 친구들은 행복해보이는데 난 침대에 누워 등이나 벅벅 긁고 있을 때, 고개를 삐딱하게 뉘이고 페북에 글을 싸지를 때, 이 모든 일이 집에서 일어날 때 퍽이나 우울하다. 




집은 좋은 곳.




집이 좋다. 지금 사는 이 동네가 좋은 게 아니라, 강동구가 좋은 게 아니라, 그냥 집이라는 공간이 좋다. 내 방이 좋다. 전세든 월세든 몸 뉘일 곳이 있는 게 어디냐는 선배의 이야기가 갑자기 떠올랐다.





매거진의 이전글 조커 잡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