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무언가를 평가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렇다는 성적표를 쓰고 저것은 저래야 하고, 이것은 이래야 한다는 윤리적 판결까지 낸다. 쇼윈도용 동정과 연민을 보이기도 하고, 내가 이만큼 윤리적 사람이라고 증명하기 위해 자의식을 과하게 담은 표현도 쓴다.
그래서 두렵다. 하염없이 정의롭고 선한 문장 속 나의 자아와 현실의 나는 다르다. 한 점 부끄럼 없지도 않고, 백마 타고 오는 초인도 아니다. 문장 바깥의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가끔은 졸렬하고, 가끔은 악하고, 아주 가끔 선하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보다 소소하고 확실한 악행이 가까운 그런 사람. 거악에 분노하기보다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사람. 윤리적이지 못한 내가 윤리적 글을 쓰니 위선적이다.
혹자는 글이 자아의 표상이자 거울이라고 한다. 글을 쓰다 보면 위선적인 내 모습이 보인다. 그 거울을 보기 싫어 글쓰기가 싫다.
글을 쓰다 보면 나를 평가하게 된다. 구현모는 이렇고, 저렇다는 성적표를 쓴다. 구현모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윤리적 판결까지 낸다. 성적표와 판결문엔 위선적이고 언행이 불일치한다는 문장이 있어 난 글을 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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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글터 과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