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TV만 볼 때, 그 채널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었다. 왠지 모르게 KBS는 고루했고, MBC는 40대 느낌이었고 SBS는 좀 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난 항상 SBS뉴스만 봤고, KBS는 명절이 아니면 보지 않았다. 1박 2일도 안봤고.
근데 좋든싫든 다른 채널을 보기는 했다. 완전히 다른 성향의 콘텐츠 말이다. 어쨌거나 채널은 옆으로 돌려야 하는 놈이었고, 돌리다보면 다른 채널은 걸렸다. TV조선도 좋든싫든 돌리다보면 보게 된다.
난 이메일 계정 하나에 유튜브 계정을 여러 개 달아두었다. 하나는 마구잡이용 (구독을 많이 해둠), 하나는 레퍼런스용 (해외 채널용 구독), 하나는 사적으로 게임채널 + VLOG구독용, 하나는 구독 안하고 아무 거나 보는 용도.
각 계정마다 메인에 뜨는 영상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내 유튜브 세상에 인기 탭을 제외하면 정치 뉴스는 하나도 뜨지 않는다. 전-혀. 진짜. 좌도 그렇고 우도 그렇고 하-나도 뜨지 않는다. 시사영상 자체가 하나도 뜨지 않는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어그로성 진-한 보수 유튜버가 내 유튜브에는 전혀 잡히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그래도 광장이라서 누가 공유해오면 볼 수라도 있었는데, 여긴 전혀.
그냥 드는 생각은, 아예 극단적인 성향의 유튜브를 다각도로 여러 개 만들 것 같다. 왼쪽도 하나, 오른쪽도 하나. 야한 것도 하나, 귀여운 것도 하나, 동물도 하나. 굳이 채널 사이의 시너지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 채널 사이 톤앤매너도 유지할 이유도 딱히 없다. 알고 보니 종교 유튜브 주인장이었던 구현모?!
유튜브의 노란 딱지는 그만큼 광고주 리스크를 신경쓴다는 거고, 이건 이미 작년, 재작년부터 시작된 일이다. 이제 와서 유튜브가 어쩌고 하는 건 솔직히 아무 것도 모르고 정치 빌런들이 하는 거고, 그냥 brand safety 이슈가 유튜브까지 이어진 거지 뭐. 그리고 이는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터지는 것 같고.
이 유튜브란 거대한 바다는 이전에 TV 시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대세'라거나 '트렌드'라거나 '인기'를 철저히 해체했다. 자기네가 만들어놓은 질서가 해체되는 와중에, 신문은 너무나 늙었고, TV도 마찬가지.
또, 유튜브와 페이스북으로 '요즘 세상'을 알기도 어렵다. 더이상 하나의 '세상'을 보기에 유튜브는 너무나 파편화됐기에. 미친 듯이 늘어난 크리에이터의 숫자를 보아도 그렇다 (비즈니스성과 별개로).
콘텐츠라는 게 다 그렇지만, 힘을 준 만큼 성공한다는 보장이 더욱 없어진 세상이다. 기획이 중요하다고 많이들 말하지만, 역으로 굳이 기획을 많이 가져가야하나 싶기도 하고...유튜브는 구글 프로덕트 치프도 모른대요~
해외 기사 보니까 유튜브 씨이오도 "난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올리는 게 우리 정신이라고 생각해 ㅎㅎ"라고 말하니까.
유통업자가 질서를 세우던 시대에서 이제 공급자가 질서를 만든다. 유통업자가 소수이던 과거와 달리, 콘텐츠 공급자는 다수다. 압도적 다수. 그 압도적 다수가 원하는 대로 콘텐츠를 만들고 올리는 시대에 대세, 대중성, 흥행, 이런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뭐, 영화 같이 1)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고 2) 제작 양극화가 더욱 진행되고 3) 소비 경로가 제한적인 시장은 약간 다르지만. 영화는 다른 콘텐츠와 달리 적은 자본으로 빠르게 제작하는 시스템이 아직 도입되지 않았다. 반대로 말하면, 소위 '웹콘텐츠'가 불러온 1) 적은 자본으로 2) 빠르게 만드는 시스템이 침범하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
여튼 그래서 결론은 뭐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 과거의 무한도전이나 개콘 같은 콘텐츠는 TV의 지위를 대체한 유튜브 세상에서 나오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 아 물론 워크맨이 대단하긴 한데, 저건 거의 해프닝이 아닌가 싶고.
여튼 결론은 모다? 알고리즘과 추천으로 무장한 유튜브라는 최강유통업자가 지배하는 시대에 더이상 과거와 같은 광장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 대신 자기네들이 만들어낸 교회가 그 넓은 광장에 각자 서있겟지 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