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부터 연남동 편집실에서 촬영 수업을 듣는다. 그동안 흔히 써왔던 샷과 구도라는 단어를 기초 개념부터 다시 쌓아가는 과정이다. 단순 이론 수업은 아니다. 강사 리인규님이 기존에 제작하신 영상을 활용해 샷의 특징과 사용 이유를 설명한다.
촬영 초보에게 그리드는 필수다. 그리드는 카메라 사용 시 키는 격자로 화면의 구도를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다. 구도가 안정적이면 시청자는 편안해진다.
타짜 1 마지막의 주요 장면인 고니 vs 아귀 시퀀스가 이 편안한 구도의 마스터피스다. 강사님은 격자를 켜고 이 영상을 틀어주셨다. 출연자의 눈 위치와 화면 내 출연자 구도가 모두 2:1 비율로 일정했다.
인규님은 평범한 16:9 비율의 인터뷰 영상에서 사람을 가운데에 두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주인공이 가운데에 있을 때, 텅 빈 배경을 채우기가 쉽지 않으며 시청자 역시 묘한 위화감과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때 느끼는 불편함은 머리 위에 여유공간 (헤드룸) 없이 찍었을 때 느끼는 답답함과 유사하다.
모두가 편안하게 느끼는 황금비율은 1:1이 아니라 1:1.618이다. 공정해 보이는 1:1이라는 구도에 사람들은 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촬영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중립에 무한한 가치를 두기 시작했다. 차별을 갈등이란 중립적인 단어로 바꾸고 가치판단보다 '중립기어' 내리기에 급급하다. 중립기어가 가치판단을 위한 잠깐의 휴식이면 좋으련만, 필연적으로 판단 보류로 이어진다. 혹은 타인에게 정치적 중립을 강요한다.
2014년 8월에 내한한 교황은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말했다. 권력이 작동하는 사회 속에서 고통 앞에 중립은 강자를 향한 기울임이자 약자에 대한 외면에 불과하다.
시민으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일은 가치 판단의 연속이다. 올바른 가치 판단을 위해서 우리는 한쪽으로 기울어져야 한다. 그 방향은 약자와 공동체를 향해야 한다. 아무 방향 없는 양비론으로 이루어진 평형점에 다가가는 일은 강자와 약자가 그려져 있는 이 사회에서 시민으로서 책임 방기에 불과하다.
피사체는 카메라 프레임 안에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야 안정적이다. 우리의 시선도 마찬가지다. 중립기어를 풀로 박은 중립충의 시선보다 약간 기울어져 있는 시선이 사회를 더 공정하게 그릴 테다.
지역 차별을 지역 갈등으로, 성차별을 젠더 이슈로 그려내는 언론을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