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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현모 Jan 26. 2020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읽는일기 #여자둘이살고있습니다 추천 3.5/5 


문장만으로 이 사람의 성격이 드러날 때가 있다. 그만큼 문장에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그렇다. 여유 있고 스스로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멋지다. 알고 보니 내 인생의 에세이스트 김민철 작가님과도 지인이란다. 워낙 글을 잘 쓰는 분들이라 문장이 유려해서 책이 술술 읽힌다. 다만 이 책이 왜 그렇게 화제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림킴이 그 도전성 때문에 한대음 후보에 오른 느낌이랄까. 술, 취향, 새로운 형태, 고양이 등 힙한 키워드는 다 있어서 그런가.  


혼자력은 차고 넘치다 못해 폭주하기 시작했다. 수업, 여행, 음식, 카페, 문화생활 모두 혼자로서 즐겼다. 만나는 사람 여부와 상관없었다. 그냥 혼자 지내고, 혼자 생활하고, 혼자 사는 게 좋았다. 편하잖아. 빠르고. 


나이가 차며 슬슬 함께 살기에 대한 고민이 든다. 결혼은? 주거는? 아파트는? 청약은? 돈은? 노후는? 자녀는? 삶의 시기가 바뀌면서 고민의 종류도 바뀌고 깊이도 달라졌다. 아이에 대한 생각은 거진 없어졌고 회사생활만으로 나를 영위할 수 없단 생각이 들어 어떻게 살아야 하냐라는 고민이 든다. 결혼에 대한 집착은 없으나 내 주위 사람은 다 할 거 같아서 심심해서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너무 나이브한가? 


근데 웃긴 건, 같이 살고 싶지는 않다. 나와 파트너가 각자의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서울 시내 아파트에선 그게 불가하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구매 가능한 서울 시내 아파트에선 말이다. 차라리 지금처럼 난 원룸에 살고, 내 파트너도 근처 내지 같은 건물의 다른 방 원룸에 살면 좋지 않을까 했는데 선배는 그럴 거면 결혼은 왜 하냐고 묻더라. 그러게 말이다.  


난 혼자 있는 시공간이 매우 중요한 사람이다. 설날과 추석 연휴가 좋은 이유는 서울 시내 주요 카페에 혼자 앉아서 내 할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혼자 있는 시간을 위해서 이번 명절에는 집에도 안 갔다.  


하지만 느슨한 연결은 필요하다. 혼자력이 만땅이라도 인간으로서 느끼는 외로움은 있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거나 종종 전화를 걸거나 만나 국밥을 먹는다. 둘 사이에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고 진부한 케-이 뒷담화 이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중요하다.  


책을 읽고 나니 친구와의 동거를 상상한다. 자연스레 같이 여행 간 친구 중에 몇 명과 동거를 그려본다. 서로의 방과 공용 방이 하나 있어 최소 쓰리룸은 필요하다. 난 항상 무한도전을 틀어두거나 롤 경기를 보기 때문에 적당한 소음을 견뎌내고 e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정치 사회에 대한 관심도 있으면 좋겠고 담배는 안 하되 술은 아주 조오금 즐기면 좋겠다. 김형완인데? ㅅㅂ 끔찍하다. 거실에 식탁이 필요하고 가능하면 아파트면 좋겠다. 음. 돈이 안 된다. 서로 풀대출을 땅겨야 하는데.. 여하튼 GG.   


혼자력이 차고 넘치는 인간에게 필요한 건 비슷한 성향과 취향을 가진 이들과의 느슨한 연결과 만남이다. 이 연결과 만남이 굳이 결혼이라는 귀결로 이어지지 않아도 좋다. 출산이 옵션을 넘어서 ‘그걸 왜 해?’라는 물음표가 들 정도의 특이 케이스가 되는 이 시기에 필요한 사람은 부부나 연인이 아니라 동반자일 수 있다.  


동반자. 이 동반자가 굳이 같이 살 이유도 없다. 몇 번의 도전과 창업이 자빠진 이후에 내 결론은 적어도 내 팀원과 동료를 전적으로 믿고 그 사람의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이 교훈을 내 사는 방식에도 접목시킬 수 있다.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바깥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서 꾸준히 연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일하다 만난 사이, 회사 동기, 어쩌다 만난 사이, 독서 모임에서 만난 친구까지. 각자의 상황은 다르고 일하는 분야도 다르지만 따로 만나서 커피를 마시면 즐겁고 시답잖은 카톡이나 디엠을 보내고 이야기 나누는 친구들 말이다. 이 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때때로 어쭙잖은 피로 엮인 저 멀고 먼 이름도 모를 친척들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나만의 일은 아닐 테다.  


인맥에 대한 정의를 바꾸어야 한다. 단순히 아는 사이를 넘어 서로의 안전망이 될 수 있는 네트워크가 인간에게 필요하다. 이 형태는 여자 둘이 살고 있든 남자 둘이 살든 남자와 여자가 살든 크게 중요치 않다. 서로를 얼마나 믿고 의지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와 같은 질문은 나는 너와 왜 친구가 되어 관계를 이어가는가이다. 왜일까? 왜 나는 누구와 깊대(옛날 단어다)를 나누고 관계를 이어갈 수 있을까. 100번 만난 사람보다 1번 만난 너와 편히 이야기 나누는 이유는 무엇일까. 


당신이 가진 개별성과 내가 가진 개별성이 아귀가 맞을 때 그러하다. 지오디는 반대가 끌린다고 했지만 사람이라는 건 필연적으로 본인과 유사하거나 본인이 바라는 부분을 가진 이에게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성향이 비슷해 항상 방안에서만 데이트를 하거나 술을 좋아해 술로 통하는 친구 커플과 친구들을 떠올려보자. 


내가 가진 특수성을 너에게서 발견할 때 나는 이를 우리가 가진 보편성으로 여긴다. 여기에 너만의 개별성은 더 큰 매력으로 보인다. 각자가 가진 개별성을 존중하고 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관계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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